다니엘 월러스의 장편소설 ‘큰 물고기’는 우리 시대 아버지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세일즈맨으로 평생을 밖으로만 떠돌다가 죽음을 앞두고서야 집으로 돌아온 아버지 에드워드 블룸. 그는 거인을 정복하고, 아름다운 인어와 사귀었으며, 진실을 꿰뚫어보는 유리 눈의 노파를 만나고, 홍수를 잠재우고, 전장에 나가 수많은 사람들을 구한, 모든 이의 영웅이었다. 하지만 집에만 돌아오면 왠지 왜소하고 낯설어 보이는 아버지였다. 그 허풍쟁이 영웅의 병상을 아들 윌리엄이 지키고 있다. 윌리엄은 영원으로 가져갈 얼굴을 바라보며 아버지가 어렸을 때부터 들려준 이야기를 근거로 그의 삶을 더듬는다.
책을 만들면서 “과연 나의 아버지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이 떠나질 않았다. 여러 번 기억 속 아버지를 불러내보았다. 그러면 이내 마음은 커다란 원을 그린다. 돌멩이 하나가 호수에 작은 동심원들을 그려내듯 파문은 쉬이 사라지지 않는다. 번역을 해주신 장영희 선생님과 만날 때에도 화제는 자연스레 선생님의 아버지, 고(故) 장왕록 박사 이야기로 이어지곤 했다. 선생님의 말처럼 매일 아침 머리 셋 달린 용과 싸우러 나가는 아버지란 존재는 어쩌면 그렇게 메타포를 통해서만 파악할 수 있는지도 모른다.
여기서, 그 이야기가 어디까지 진실이고 어디까지 허구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소설 속 윌리엄도 거짓말 같은 아버지의 이야기들이 결국은 삶을 돌아보고 세계를 바라보게 하는 작은 창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를 통해 그는 아버지의 위대함과 실패를 이해한다. 아들의 삶의 무대에서는 오직 ‘조연’이었던 아버지, 그 아버지도 한때는 청년이었고 소년이었고, ‘아버지’라는 이름에 가려졌던 한 인간이었다는 것을 새롭게 발견하는 것이다.
‘큰 물고기’의 출간을 기념하며, 한 포털사이트에서 아버지 혹은 가족과 함께한 사진과 사연을 나누는 이벤트를 진행하였다. 생각보다 독자들의 반응이 좋았다. 어떤 직장인은 며칠 지나지도 않았는데 감상문을 올려주기도 했고, 한 여고생은 아버지의 학창 시절 흑백사진을 올려놓고 ‘얼짱’이라며 자랑을 늘어놓기도 했다. 그리고 그 중 한 분의 말씀. “가족이란, 세상에서 가장 큰 절망과 세상에서 가장 작은 희망에도 기꺼이 동참하는 사람들.
죽을병에 걸려도, 큰 빚을 져도, 원래 진지한 대화란 게 어색해도 선선히 아랫목을 내어주고 얼굴을 만져주는 사람들…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절망을 되돌리고, 소박한 기쁨도 큰 행복으로 믿어버리는 바보 같은 사람들”이란 진한 사연은 아직도 생생하다. 술자리는 어느덧 자정을 넘겼다. 그날 밤 집에 들어가 비틀거리며, 잠자는 두 딸아이의 볼에 까칠한 수염을 비벼댔을 그 선배의 마음에도 차마 개봉하지 못한 마음의 편지가 그득하겠지? 기억 속 아버지를 다시금 불러내본다. |
김영주(도서출판 동아시아 편집1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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