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세계타워]기회주의

관련이슈 세계타워

입력 : 2004-05-26 14:17:00 수정 : 2004-05-26 14:17:00

인쇄 메일 url 공유 - +

1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경찰청사 1층 현관에는 세로 3m 가로 2m 크기의 대리석이 벽면에 부착돼 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1986년 경찰청의 옛 이름인 치안본부 청사 준공을 기념해서 세운 돌이다. 그 돌엔 護國警察(호국경찰)이라고 새겨져 있다. 나라를 지키는 경찰이라는 말뜻이 의미심장하다. 그 글 바로 왼쪽 아래에 大統領 全斗煥(대통령 전두환)이라는 글자가 박혀 있다.
김영삼 김대중 정권에서 대통령 전두환이라는 그 여섯글자는 살아남았다. 참여정부 1년 동안에도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런데 갑작스레 타도 대상이 됐다.
지난주 초 노무현 대통령은 5·18기념식장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의 권력장악 과정을 ‘반역의 범죄’라고 규정했다. 최기문 경찰청장이 이 말에 깜짝 놀랐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다만 최 청장의 반응은 며칠 후 한 신문에 1단기사로 반영됐다. “역사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존경받을 수 없는 사람의 글을 그대로 둘 수는 없다. 예리한 도구로 흔적을 남기지 않고 떼어버리거나 글씨를 아예 메워서 지우라고 지시했다.” 이 신문은 최 청장이 그렇게 말했다고 보도했다.
요즘 경찰청사 현관엔 큰 화분이 눈길을 끈다. 화분에 심어진 제법 큰 나무는 대통령 전두환이라고 쓰여진 그 부분을 가리고 있다.
로마시대엔 기록말살형이 있었다. 독재자이거나 반역죄를 저지르거나 원로원에 의해 탄핵되면 지도자의 모든 활동은 역사에서 지워졌다. 전두환이라는 이름 석자를 없애자는 것은 로마시대로 돌아가자는 얘기인지 뭔지 헷갈린다. 아무리 미워도 전두환은 우리의 역사다.
2 미국에서 가방장사를 해 큰 돈을 번 김혁규 전 경남지사는 1986년부터 YS를 도왔다. 민추협 활동을 할 때 유력한 재정후원자였다. 그는 92년 대선 때 김영삼캠프의 일등공신이었다. 청와대에서 민정비서관과 공직기강비서관을 지낸 뒤 때맞춰 관선 경남지사로 내려갔다. 이어 지방자치가 실시돼 민선 경남지사를 3선했다. 2002년 선거 때는 공천이 위태로웠지만 특유의 정치력으로 거뜬히 한나라당 공천을 따냈다. 그는 지난 10여년간 누가 봐도 지금 여당과는 반대쪽에 서있었다.
그런 김 전 지사가 여당으로 옮겨 노무현 정부의 새 총리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노 대통령은 해양수산부 장관 시절 “기회주의자는 포섭의 대상이지 지도자로서 존경의 대상이 아니다”고 말했다. 김 전 지사는 포섭이 됐기 때문에 일인지하 만인지상인 국무총리로선 괜찮다는 것인지, 기회주의자가 아니기에 무리가 없다는 것인지 뭐가 뭔지 헷갈린다.
3 최기문 경찰청장은 최초로 국회 임명동의를 받았다. 임기가 2년이다. 임기 동안 의연하게 법질서를 바로세우는 일에 매진하면 박수받을 것이다. 김혁규 전 지사는 어려운 처지에 빠졌다. 변신의 귀재라는 비난과 철새 총리라는 지탄을 받고 있다. 상생의 정치를 해치는 상징이 돼버렸다. 재산이 100억원이 넘고 도백을 몇 차례나 지내 출세했다는 소리를 듣는 그가 당을 바꿔 총리까지 하는 것은 국민 교육에 좋지 않을 것 같다. 이쯤에서 멈춰서야 하지 않을까.
4 촛불집회 앞에서 법의 보루인 헌법재판소는 너무 쉽게 무너졌다. 소수의견자를 뒤로 감추는 순간 헌재의 권위는 사라졌다. 보수색 숨기기와 당명 바꾸기에 나서는 한나라당은 얼굴에 분을 떡칠한 작부의 모습이다. 비겁자들은 설 자리가 없다.
기회주의는 원칙을 내팽개치고 세력관계에 따라 편의적으로 행동하는 행태를 말한다. 시류에 편승해 눈치보기를 일삼는 자들, 그들이 기회주의자들이다. 출세한 사람치고 기회주의자 아닌 자 없다지만 그들이 활개치는 사회는 건강하지 못하다.
반칙사회가 도래하고 있다. 우직한 원칙주의자들은 모두 어디 갔는가. 그들이 대우받는 세상을 보고 싶다./백영철사회부장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있지 유나 '완벽한 미모'
  • 있지 유나 '완벽한 미모'
  • 박주현 '깜찍한 손하트'
  • 있지 예지 '매력적인 미소'
  • 예쁜하트와 미소, 박규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