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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바르게]<13>어문규범 현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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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4-01-26 15:19:00 수정 : 2004-01-26 15: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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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자-외래어 표기 교통정리 시급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단어가 생겨나고 없어진다. 체계적으로 교통정리를 하지 않고는 말의 홍수에 매몰될 정도다. 이 때문에 교통정리라고 할 수 있는 말의 표준화가 중요하고, 이를 규정할 어문 규범이 필요하다.
로마자 표기법과 외래어 표기법은 말의 무질서를 바로잡아 정보의 소통을 원활하게 하려는 노력의 일부분이다. 로마자 표기법은 로마자를 사용해 자국어와 문자를 표기하는 방법이다. 세계 대부분의 나라들이 자국 사정에 맞게 다양한 방식으로 로마자 표기법을 따르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는 국어의 표준 발음법에 따라 적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지만, 국어의 경우 표기와 발음 특성상 많은 표기체계가 이용돼 왔다. 1980년대 초반까지도 한글의 로마자화는 일원적인 체계를 갖추지 못했다.
한 예로 공문서나 한글의 로마자화는 1959년 공포된 문교부안을 따르면서도 외국인 상대의 신문, 잡지에서의 표기는 1930년 고안된 매쿤·라이샤워 체계(G. M. 매쿤과 에드위 라이샤워가 고안한 표기체계로 한글을 한자씩 라틴 자모로 전사·轉寫하는 방법이 아니라, 한글이 발음될 때 겪는 활음적 변화·滑音的變化를 고려하는 방법)를 따랐다. 1978년부터 여론 수렴을 거친 문교부는 1984년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을 고시했다.
그러나 반달표와 어깻점 등 표기법 자체에 문제가 많아 국민이 표기법을 제대로 따르기는 힘들었다. 또 발음이 올바로 전달되지 않는 등 우리말의 특성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 모순이 지속됐다. 로마자 표기법이 현실 생활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에 따라 90년대 중반부터 또다시 개정 작업에 나서 2000년 7월 7일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을 최종 고시했다.
당시 새 표기법을 고시한 문화관광부는 “서양인의 시각에만 의존한다면 우리말의 특성을 반영하기 어렵고, 한국인의 편의만 고려하면 외국인이 불편해지기 때문에 외국인의 편의를 최대한 고려하면서 한국어의 특성을 반영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로마자 표기법 역시 우리말을 로마자로 완벽하게 적도록 만들지는 못했으며, 정확한 표기법인지에 대한 논란은 여전했다.
로마자 표기법과 달리 외래어 표기법은 외래어를 한국 자모(한글)로 표기하는 방법으로 국어의 음운체계에 동화된 대로 적는 것이 원칙이다. 외래어 표기에 대한 원칙이 제정된 것은 조선어학회가 1941년 1월 15일 공포한 ‘외래어 표기법 통일안’이 시초이다.
현행 외래어 표기법에서는 외래어는 국어의 현재 24개 자모만으로 적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12개 언어를 제외하고 나머지를 기타언어로 묶어 표시하는 것을 규범으로 정한 것은 무리라는 지적도 나온다. 단적인 예로 복자음을 자주 사용하는 아랍어의 경우 기타 언어 규정에 묶여 제대로 표기할 수 없다. 이는 제대로 된 아랍어 표기를 하지 못하는 원인이 된다. 다른 언어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언론이 쾨체, 쿳시, 쿠체 등으로 표기해 혼선을 일으킨 것도 개별 언어들을 기타언어로 뭉뚱그려 놓은 규정상의 문제점과 무관치 않다.
더 큰 문제는 각 언어의 규정이 어렵다는 데 있다. 각 언어의 외래어 표기법 규정이 어려워 일반인들이 규정을 따르는 것은 무리라는 것이다. 중국어만 해도 그렇다. 인명과 지명은 원음을 따른다는 원칙으로 표기의 어려움이 가중됐다. 일례로 모택동은 마오쩌둥으로, 주은래는 저우라이로 표기되는 규정에 적응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더구나 외래어 표기법을 따르지 않는 각종 단어들을 일반 언어 대중이 인식하게 되면서 외래어 표기법이 사장되는 현상까지 벌어지고 있다.
이 때문에 어문 규정과 현실 언어 간의 괴리감이 여전하므로 계속 말을 조사하고 심의해 말의 표준화 작업을 좀 더 정치하게 진행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전문가들은 대중의 언어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방송언어를 엄격히 심의하는 기구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피력하고 있다.
남기심 국립국어연구원 원장은 “어문규범은 의사소통을 가장 효과적으로 하기 위한 약속이므로 이를 지키도록 힘써야 한다”며 ”현실과 동떨어진 규정들이 있다면 이를 다듬어 국민이 약속을 지키기 편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종현기자/bali@segye.com

기고 - 약속된 표기법은 일단 지키자

정희원 국어연구원학예연구관

글을 쓸 때 일부러 맞춤법에 어긋난 표기를 하는 사람은 흔치 않다. 실수로 틀리게 적는 경우는 있지만, 그것이 잘못된 것임을 알게 되면 다시는 틀리게 적지 않으려고 애를 쓴다.
외래어 표기법은 외국어에서 온 말을 한글로 적는 방법을, 로마자 표기법은 우리말을 로마자로 적는 방식을 규정한 것이다. 결국 둘다 외국어의 소리를 다른 문자를 빌려 적는 방식과 관련된다. 그런데 어느 한 언어를 다른 언어의 문자로 정확하게 표기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저 비슷하게 적을 수 있을 뿐이다.
이런 한계를 인정하지 않고 어떻게 적어야 외국어 발음을 똑같이 나타낼 수 있는지, 또 우리말을 로마자로 정확하게 적을 수 있는지를 논의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부산’을 Pusan으로 적든 Busan으로 적든 이 표기만 보고 외국인들이 정확하게 발음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마찬가지로 [f] 소리는 ‘ㅍ’이나 ‘ㅎ’ 어느 것으로 적어도 영어의 소릿값과는 거리가 멀다. 그런데도 현행 외래어 표기법이 외국어 발음을 정확하게 반영하지 못한다거나 영어권 사람들이 우리말 로마자 표기를 쉽게 이해하지 못한다는 이유를 들어 표준 표기법과는 다르게 적기를 고집하는 사람들이 있다. 예를 들어 프랑스의 수도 Paris는 ‘파리’로 적어야 하는데, 프랑스 어 발음과 멀다는 이유로 굳이 ‘빠리’로 적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파리’로 적든 ‘빠리’로 적든 프랑스어 소리를 똑같이 나타낼 수는 없으며, 오히려 같은 도시 이름이 다른 방식으로 적히게 되어 언어생활에 혼란만 가중된다.
그러나 전문가들이 많은 연구와 토론을 통해 사회적으로 합의한, 그래서 이미 수년간 사용해 온 표기법이 개인의 견해와 다르다고 해서 따르지 않는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다. 이미 정해진 약속은 충실히 지켜 가는 가운데 정당한 경로를 통해서 자기 주장을 펴나가는 성숙한 태도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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