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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속의 작가들]무등산에 둥지 튼 시인 나희덕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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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4-01-13 13:39:00 수정 : 2004-01-13 13: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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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의 울음소리 시로 담고파" “해가 질 무렵 산책을 겸하여 한 손에 호미를, 다른 한 손에 물통을 들고 천천히 걸어가는 것은 차로 쌩 하고 다녀올 때와는 다른 맛이 있다. …잘 익어서 떨어지는 해를 바라보며 내 얼굴도 조금은 붉어져서 걷다보면 그 풍경과 함께 어떤 심연 속으로 천천히 가라앉을 것만 같다”(‘반 통의 물’).
둥지를 서너 번 옮겨 다닐 때마다 집 인근에 텃밭을 일굴 수 있었던 것은 나희덕(羅喜德·38) 시인에겐 행운이었다. 보육원 총무를 지낸 어머니와 필경사였던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나 아홉 살 때까지 충남 논산의 한 보육원에서 자란 시인의 밭과의 인연은 서울에서 학교를 다닐 때와 수원에서 3년 동안 국어교사 생활을 한 잠깐을 제외하고는 줄곧 이어졌다. 특히 경기 일산에서 살 땐 주말농장을 가꾸며 마음의 여유를 만들었다.
섬초롱꽃, 매발톱꽃 등 몇 종의 꽃을 비롯해 부추 아욱 당근 등 채소를 심었다. 처음 심어 보는 당근씨는 혹시나 해서 듬뿍 뿌렸다. 밭 주변을 종종거리는 참새 서너 마리가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농부들이 씨를 뿌릴 때 적어도 세 알 이상씩 심는 이유를 시인은 이미 알고 있었다. 한 알은 새를 위해, 한 알은 벌레를 위해, 그리고 나머지 한 알은 사람을 위해….
“밭을 일구는 동안 얻은 것은 바로 비어 있는 손이다. 밭에 쪼그리고 앉아 일하는 동안만이라도 무엇이든 덜 움켜쥘 수 있었으니까. 밭을 처음 고르기 시작할 때부터 손으로 돌멩이를 수없이 골라내어 고랑 밖으로 던졌지만, 실은 내 마음속에 그렇게 내던질 것들이 많았던 탓이다. 그러는 동안 내 안에도 어느새 푸른 것들이 자라날 수 있는 작은 공간이 생겨나기 시작했다.”(‘반 통의 물’).
시인은 밭에서 돌멩이를 골라내며 학창 시절 차마 던지지 못한 채 움켜쥐고 있었던 ‘돌’을 비로소 내던질 수 있었다.
“내 스무 살 때 쥐어진 돌 하나/ 어디로도 굴러가지 못하고/ 아직 그 안에 남아 있는 걸 보네/ 누구에도 그 돌 끝내 던지지 못했네/ …/ 던지지 못한 그 돌/ 오래된 질문처럼 내 손에 박혀 있네”(‘뜨거운 돌’).
3년 전 새 직장이 된 조선대가 있는 ‘빛고을’ 광주로 둥지를 옮긴 시인은 다시 텃밭을 찾아 헤맸다. 집도 일부러 무등산 겨드랑이께인 운림동 구석에 구했다. 증심사를 오르는 길목이다. 퇴근할 땐 남광주네거리의 재래시장을 거쳐 무등산의 명물 ‘배고푼다리’를 지난다. 시인이 즐겨 찾는 곳은 ‘의재미술관’. 동양화의 일가를 이뤘던 허백련(許百鍊·1891∼1977)이 ‘춘설헌’을 짓고 말년을 보낸 곳이다. 유리로 된 커다란 창을 가진 미술관의 찻집은 꽤 운치 있는 곳이다.
시인은 광주 생활 첫해엔 출근도 산길로 했다. 야트막한 야산을 두 개 넘어 30∼40분 걷다 보면 어느새 연구실 뒷산이 나온다. 산길엔 겨울철에도 푸르게 자라는 덩굴식물 ‘마삭줄’과 나무그늘 아래 숨은 춘란이 늘 같은 자리에서 반겼다. 노란 솔잎이 만들어 낸 가을길을 시인은 특히 좋아한다. 시인이 길을 낸 무등산 오솔길은 시상을 얻는 황금길. 학창 시절 시심을 키우던 연세대 뒷산의 청송대가 따로 없다. 편한 게 뭔지, 자가용이 산길을 잃어버리게 한 것이 시인은 못내 아쉽다.
“그는 어쩌자고 내게 말을 거는 것일까. 산길을 내려오는데 울음소리가 내내 나를 따라왔다. …가을이었다. 아무하고도 말을 주고받을 수 없는 가을이었다. …낯선 산 아래서 지낸 첫 가을이었다”(‘가을이었다’).
“벌거벗은 육체가 아름다운 건/ 주머니가 없어서일 것이다”(‘열대야’).
“내가 넘는 건 정작 산이 아니라/ 산속에 갇힌 시간일 거라고/ 오히려 산 아래서 밥을 끓여 먹고 살던/ 그 하루 하루가/ 더 가파른 고비였을 거라고, 고백했다”(‘속리산에서’).
시인이 용케도 찾은 텃밭은 무등산 너머, 광주호 건너편에 있었다. 송강 정철(鄭澈·1536∼1593)의 후손들이 사는 담양 지실마을. 유배 중이던 송강이 ‘성산별곡’을 지은 ‘성산’을 뒤로한 옛 정취가 그대로 남아 있는 양지바른 마을이다. 남도의 대표적 조선조 정원 ‘소쇄원’과 정자 ‘환벽당’, 황지우 시인이 거했던 ‘명옥헌’, 가사문학관도 이웃한다. 시인은 이곳 다기공방 옆 20∼30평 남짓한 공터에 텃밭을 꾸몄다.
시인의 발은 툭하면 지실마을로 옮겨간다. 그동안 심어본 채소 가짓수만 해도 열 손가락 가지곤 모자랄 정도. 가지 호박 토마토 오이 고추 배추 열무 무 파 아욱 근대 갓 등을 심었다. 누군가 심어 보라고 건넨 도라지와 더덕도 텃밭 한 귀퉁이를 차지했다. 무등산에서 발동한 시인의 시심은 채소밭에서 소담스레 피어난다. 다만, 지난해는 장마와 게으름으로 발길을 잊어 쑥밭으로 만든 게 민망하다.
“‘왜 문학을 하는가’라고 물으면, 먼저 세상의 모든 소리를 잘 듣기 위해서라고 대답하고 싶습니다. 특히 살아 있는 존재들이 내는 울음소리를 나는 좀 더 가까이 다가가 듣고 싶습니다. …시인이 가장 충실하게 살아 있는 순간은 만물의 울음소리를 자신의 몸으로 가장 온전하게 실어낼 수 있는 때입니다.”
시인이 번잡한 서울을 떠난 것도, 장보기 편한 대형 할인마트를 멀리하고 동네시장을 찾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래서였을까. 우주를 품은 어머니와 같은 모성성이 시인에게 물씬 풍기는 이유가….
“세상의 모든 어린 것들은/ 내 앞에 눈부신 꼬리를 쳐들고/ 나를 어미라 부른다/ 괜히 가슴이 저릿저릿한 게/ 핑그르르 굳었던 젖이 돈다”(‘어린 것’).
광주=글 조정진, 사진 김창규기자
/jjj@segye.com
■연보 ▲1966년 충남 논산 출생 ▲1988년 연세대 국문과 졸업 ▲조선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198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시집 ‘뿌리에게’ ‘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 ‘그 곳이 멀지 않다’ ‘어두워진다는 것’, 산문집 ‘반 통의 물’, 시론집 ‘보랏빛은 어디에서 오는가’ 등 ▲김수영문학상(1998) 김달진문학상(2001) 젊은예술가상(2001) 현대문학상(2003)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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