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작가 김옥영(51). 1989년 5월 아직 어느 누구도 ‘80년 광주’의 진상을 드러내놓고 말하기 힘들었던 때 공영방송 KBS를 통해 ‘광주는 말한다’를 내보낸, 그래서 유언비어로만 나돌았던 광주의 참상을 세상에 알린 여성작가다.
“다큐멘터리가 ‘이제는 말할 수 있는 때’를 기다려선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정작 ‘말할 수 없는 때’ 말을 해야 진짜 다큐멘터리 정신이죠.” 1982년 KBS ‘문학기행’을 통해 방송 구성작가로 입문한 이후 20여년을 방송국과 현장에서 보내면서 ‘다큐멘터리 구성작가 1세대’로 분류되는 그를 경기도 고양시 일산 자택에서 만났다.
김 작가를 빼놓고는 한국 TV다큐멘터리사에 대한 설명이 어려울 만큼 그의 발자취는 크고 선명하다. ‘광주는 말한다’를 비롯해 ‘진도’ 3부작(89년) ‘도시의 새’ 2부작(91년) ‘역사의 라이벌’(94년) ‘KBS 10대문화유산시리즈’(96∼97·이하 KBS 방송), ‘이제는 말할 수 있다’(2000∼2001년) ‘인간의 도시’ 2부작(2002년·이하 MBC 방송) 등이 모두 김 작가의 손에서 나왔다. 특히 소설가 고원정이 진행을 맡아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TV 역사강의’를 펼쳤던 ‘다큐멘터리 극장’(1993∼94년·KBS)은 당시만 해도 금기시됐던 현대사까지 조명, 방송 성역을 깨뜨린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다큐멘터리 구성작가로 정상에 선 그지만, 80년대 온 가족이 모인 안방을 더욱 정겹게 만들어준 ‘사랑방중계’(KBS)의 구성작가를 맡은 적(83∼90년)도 있다. “‘보통사람들의 작은 얘기’를 슬로건으로 내세웠죠. 아나운서 원종배가 사회를 맡고 ‘오리선생’ 전택부, 영화평론가 정영일, 황필호 전 동국대 교수 등이 나와 구수한 입담을 과시한 ‘원조 서민 토크쇼’쯤 됩니다.” 김 작가는 본래 시인 출신이다. 1973년 월간문학 신인상 시부분에 당선된 그는 80년 시집 ‘어둠에 갇힌 불빛은 뜨겁다’를 펴낸 바 있다. 시인 오규원씨의 부인이기도 하다. “태생이 그쪽이어선지 다큐멘터리에도 영상미와 이미지 효과를 강조하는 ‘서정적 접근’을 시도할 때가 많다”고 한다.
김 작가는 이제 후진 양성에 힘을 쏟고 있다. “후배들을 가르치고 있긴 하지만, 아직 제대로 된 다큐 현장이론서 하나 없는 현실이 참 안타까워요.” 그는 다큐 구성작가로서의 실무 경험과 이론을 묶어 ‘제대로 된’ 다큐멘터리 입문서 한 권 펴내는 게 소박한 꿈이라고 말했다.
글 김형구, 사진 김창규기자/julyend@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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