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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바르게]<4>한글 브랜드 실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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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3-11-24 12:20:00 수정 : 2003-11-24 12: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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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어 이름 붙이면 명품되나 명품족과 명품이 사회의 소비문화를 주도하고 있다. 관광 수지의 연이은 적자와 함께 해외 브랜드에 익숙한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순수 국내 명품마저 버젓이 외국어를 붙여 쓰고 있는 실정이다. 소위 명품이라는 품목 중 순수 우리말 상표는 점점 찾아보기가 어려워지고 있다. 고급품을 취급한다는 백화점의 상품과 아파트 이름은 물론이고 아이들이 먹는 과자의 이름에서조차 외래어와 외국어가 넘쳐나고 있다.
특허청에 따르면 올 들어 9월 말까지 상표로 출원된 11만35건 중 순수한 우리말 상표는 1만6989건으로 15.4%에 불과했다. 이는 지난한해 동안 출원된 2만3354건(16.1%)보다도 줄어든 수치다. 우리말 상표가 줄어드는 데는 소비자들의 책임도 크다는 주장도 나온다. 우리 것에 대한 관심이 시들해지고 해외 명품을 선호하는 사회 분위기가 확산되면서 패션과 가전제품 등을 중심으로 고유어 브랜드가 갈수록 설자리를 잃어간다는 분석이다. 상표를 출원하는 업체들은 순수 우리말로는 시장경쟁에서 도태된다며 그 책임을 소비자들에게 돌린다. 고객들이 우리말 상표를 고급 상표로 인정해 주지 않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다는 것이다. 세계적 브랜드와 내수시장을 놓고 격돌하는 상황에서 고유어 상표는 경쟁력 약화를 초래한다는 주장이다. 최근에는 순수 우리말 상표로 인지도를 높였던 업체들도 고급 이미지를 위해 상표를 외국어로 바꾸고 있다. 김치냉장고인 ‘김장독’과 ‘다맛’은 ‘하우젠’과 ‘1124’로 바꿔 인지도를 높였다.
외환위기 당시 급팽창하던 우리말 상표의 위상이 어느새 초라한 모습으로 추락했다. 잡화매장에서 높은 매출 순위를 기록했던 ‘놈’과 ‘가파치’ 등 한글 브랜드의 매출이 부진하고 외국계 브랜드가 매장을 넓혀 나가고 있다. 심지어 우리말 브랜드로 알려진 ‘쌈지’도 정식 상표는 영어인 SSAMZIE를 사용하고 있다. 특히 어린이들이 주요 소비자인 과자류·빙과류의 상품명에 외래어나 외국어를 사용하는 것은 다음 세대의 정체성을 훼손하는 심각한 문제다.
그러나 우리말 상표 사용으로 국민들의 정서를 파고들며 시장에서 좋은 평가를 받는 상품들에서 배울 점을 찾을 수 있다. 스낵의 황제인 ‘새우깡’이 교훈을 준다. 새우깡의 어원은 꽁보리밥의 사투리인 ‘깡-보리밥’에서 나왔다. ‘순박하고 투박한 이미지를 살려 국민들의 지속적인 사랑을 받고 있다. 기업 이름 중에는 ‘햇살이 가득 찬 들녘’이란 말을 축약한 ‘해찬들’이 순수한 우리말로 사랑을 받고 있다.
이 외에도 ‘풀무원’ ‘참그루’ ‘옹가네’ ‘산내들’ 등의 식품류와 ‘뿌셔 뿌셔’ ‘뿌요 뿌요’ ‘짱구’ ‘오잉’ 등 과자류가 우리말 상표로 인기를 끌고 있다. 최근에는 희나리(마르지 않은 장작), 에움길(굽은 길), 둥우리(짚으로 만든 그릇), 꽃다지(오이 열매) 등 전통문화와 특산물을 나타내는 명품에는 우리말로 표현된 상표 출원이 늘고 있다.
전문가들은 소비자의 인식이 달라져야 하며, 맹목적인 국수주의는 아니더라도 우리말 상표를 쓰는 제품을 사랑하는 사회적인 공감대가 형성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국립국어연구원의 최용기 연구관은 “국민 모두가 생각을 바꿔야 가장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며 “우리 스스로 우리것을 아끼고 관심을 갖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박종현기자
/bali@segye.com

[전문가 진단]박용찬 국립국어연구원 학예연구관

영어광풍에 설자리 잃은 우리말 안타깝다

최근 들어 세계화, 국제화 추세로 일상 언어생활에 외래어나 외국어가 무분별하게 널리 쓰이고 있다. 반대로 우리말의 쓰임은 크게 축소되어 우리 언어생활의 주객(主客)이 전도된 느낌이다. 특히, 우리가 길거리에서 흔하게 접하는 가게 이름이나 상품 이름은 외래어나 외국어 일색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가 되었다.

방송의 프로그램 이름이나 신문의 기사 제목도 그러하고 회사나 기관의 이름 따위도 그러하다. ‘해피 투게더’, ‘신비한 TV 서프라이즈’, ‘올인’ 따위와 같이 외국어로 된 프로그램의 제목이 비일비재하고 ‘포스코’, ‘INI 스틸’, ‘에스원’ 따위처럼 외국어로 된 회사의 이름이 부지기수다.
얼마 전에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공기업이라 할 수 있는 ‘한국 통신’, ‘국민은행’까지도 줄곧 사용해 왔던 우리말 이름을 버리고 ‘케이티(KT←Korea Telecom)’, ‘케이비(KB←Kookmin Bank)’라는 로마자로 이루어진 두자어로 된 이름으로 간판을 바꾸어 내걸었다. 이는 우리나라에서 일고 있는 영어 광풍(狂風)으로 서울 일부 지역의 젊은 부모들 사이에서 아이의 혀를 잘라 주고 이름조차 영어식으로 지어 주는 기현상과 맥이 닿아 있다. 영어 지상주의가 우리의 일상생활을 크게 병들게 하고 있는 것이다.
‘새콤달콤’, ‘맛동산’, ‘한아름’, ‘꿀꽈배기’(이상 상품 이름), ‘빙그레’, ‘하나은행’, ‘우리증권’, ‘한미르’, ‘하나로 통신’, ‘다음’, ‘한샘’(이상 회사 이름) 따위와 같은 순수 고유어로 된 이름은 가물에 콩 나듯 극히 적어 오히려 신선하게 우리의 마음을 끌고 있다. 그러나 그마저도 ‘부푸러(→부풀어)’, ‘오브시(→오붓이)’, ‘상크미(→상큼이)’(이상 상품 이름), ‘마니커(→많이 커)’(회사 이름) 따위처럼 의도적으로 잘못 적어 외국어인 양 가장한 것들이 많아 이제 우리말은 외래어나 외국어에 제자리를 내주고 뒷방마누라 신세가 되었다. 최근 현상은 도를 넘어선 것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이러한 현상 밑바닥에는 외국어를 중시하고 우리말인 한국어를 경시하는 우리나라 사람의 사고가 자리 잡고 있는데 이는 크게 잘못된 것이다.
우리말에는 정서와 얼까지 고스란히 담겨 있어 우리는 우리말을 소중히 여기고 이를 보전하고 발전시켜 후손에게 남겨 주어야 할 의무를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처럼 우리 스스로 우리말을 돌아보지 않고서는 우리말의 발전은커녕 보전도 기대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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