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빠진 남자를 죽음에 이르게 할 만큼 치명적인 매력을 지닌 여인, 팜므 파탈(femme fatale). 프랑스 시인 보들레르는 시집 '악의 꽃'에서 사랑을 가학자와 피학자가 펼치는 악마적인 게임으로 노래했다. 자신을 웃음거리로, 파멸로 이끌리란 것을 알면서도 남성들은 유혹을 거부할 수 없다. 팜므 파탈에는 사랑과 공포, 숭배와 혐오라는 상반된 감정들이 교차한다.
'팜므 파탈-치명적 유혹, 매혹당한 영혼들'(이명옥 지음.다빈치)은 예술가들에게 끊임없는 모티프가 돼왔던 팜므 파탈이 미술 작품 속에서 어떻게 구현됐는 지를 보여준다. 살로메와 이브, 유디트, 데릴라 같은 성서 속 여성들과 비너스, 헬레네, 세이렌, 스핑크스 같은 신화 속 인물, 클레오파트라와 마를린 먼로 같은 당대의 히로인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뇌쇄적이고 관능적인 춤으로 의붓아버지 헤로데를 유혹, 세례 요한의 목을 요구한 살로메. "귀스타브 모로의 '현현'은 여자와 남자의 팽팽한 힘겨루기와 성과 죽음의 극명한 대조를 보여준다. 성적 주도권을 쥔 쪽은 여자다. 악마적인 힘으로 충만한 여인의 매력은 남자를 압도한다."
유대신화에 등장하는 첫번째 여인 릴리트. 아담이 음탕한 릴리트의 유혹에 넘어가 악에 빠질 염려가 높아지자 신들은 릴리트를 제거했다. 단테 가브리엘 로제티는 머리를 빗으며 자기 도취에 빠져 있는 릴리트의 모습을 눈부시게 재현했다.
유디트는 조국을 구하기 위해 적장을 유혹해서 잠자리를 가진 후 남자의 목을 베어버렸다. 예술가들은 유디트의 영웅적인 행동보다 섹스로 남자를 유혹해 살해한 에로틱한 부분에 흥미를 느꼈다. 특히 구스타프 클림트는 강렬한 성적 매력을 발산하는 유디트를 창조해냈다.
팜므 파탈이란 단어가 본격적으로 쓰인 것은 19세기말. 이전 시대에도 예술가들은 아름다운 여성들을 다뤘지만 남성을 파멸로 이끄는 여성형은 19세기가 돼서야 등장했다. 길게 늘어뜨린 머리카락에 밀랍처럼 흰 피부, 피처럼 선연한 입술, 게슴츠레한 눈빛으로 성적 매력이 넘치는 미인은 세기말 탐미주의와 상징주의 문학과 미술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지은이 이명옥씨는 "급속한 산업화와 도시화로 전통적인 성 가치관이 무너지고 여성들이 자의식에 눈을 뜨게 되면서 남성들은 여성들에 두려움과 경계심을 느꼈다"고 말한다. 그러나 남성들은 자신을 지배하는 존재로 돌변한 여성에게 매혹당하지 않을 수 없는 딜레마에 빠져버렸다고 풀이한다.
130여컷에 이르는 에로틱하고 아름다운 그림들은 책 읽는 내내 눈을 즐겁게 한다. /이보연기자 byabl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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