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과 이집트인 부부. 국제결혼이 흔해졌다고는 하지만 이슬람권과의 결혼은 희귀하다는 생각 때문에 자연히 궁금한 것을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남편을 언제 어떻게 만났나?
▲국내에서 간호전문대를 졸업한 뒤 2년간 병원 간호사로 일했고 1985년부터 4년간 한국 근로자들이 많이 파송된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근무했다. 귀국할 무렵 선후배 간호사들과 함께 지중해 여행에 나섰는데, 중간에 이집트에서 우연히 파라그씨를 만났다. 여행객인 우리를 무척 친절하게 도와줘 호감을 갖게 됐다. 귀국 후 가끔 편지를 주고 받다 사랑하는 사이가 됐다.
-언어와 문화가 달라 사랑을 키워가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결혼 전 몇년간은 양가의 반대가 완강해 갈등과 고민의 나날을 보냈다. 남편은 3남매중 장남이었다. 이집트 사회에서는 아들이 일곱살 연상의 외국인 여자와 결혼한다는 것은 도저히 용납될 수 없었다.
시아버님께서 눈물을 흘리면서 만류했지만 결국 아들의 뜻을 꺾을 수 없었다. 남편은 한국에 와서 우리 부모에게도 간절히 청혼해 승락을 받아냈다. 요즘 한국에는 아이들과 2년에 한번 정도 들르는데, 친정 부모님이나 조카들도 무척 좋아한다.
-이슬람의 일부다처제와 관련해 견해차는 없었나.
▲결혼 전 남편은 이미 나만을 사랑하기로 마음을 정하고 있었다. 이슬람 국가에서는 부인을 여럿 두는 남자가 더러 있지만 이런 경향은 많이 줄었다. 절대다수 여성들이 이를 원치 않기 때문이다.
-시집생활에 어려움은 없었는가.
▲살림을 해본 경험이 없어 처음엔 부담감이 컸다. 조리법이나 식생활이 우리와 전혀 다른 시댁에서 부엌일이라곤 음식준비에 바쁜 시어머니 옆에서 그저 시중들고 설겆이를 하는 게 고작이었다. 그래도 시어머님께서는 무척 대견해 하고 친척들에게 늘 며느리 자랑을 하셨다. 아마도 아랍 여성들보다 조금은 부지런했던 게 시어머님의 사랑을 받은 이유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아랍 사회에서는 아들을 선호하지만 장남이라고 하여 한국처럼 부모를 모시지는 않는다. 결혼 후 6개월만에 시부모께서 마련해준 집으로 분가를 했다.
-종교는?
▲남편과 결혼하면서 이슬람을 믿게 됐다. 한국인으로 여기 살면서 서방과 이슬람권을 편견없이 바라보게 됐다고 생각한다. 자기 종교의 우월성을 내세우면서 남을 배척한다면 갈등과 투쟁을 자초할 수밖에 없다. 이점에서 기독교인이든 이슬람교인이든 일부 종교인의 자성이 필요한 것 같다.
-관광가이드 생활은 언제부터 해왔나.
▲첫애를 낳은 뒤 94년부터 8년쯤 했다. 이집트는 세계 4대문명의 발상지인데다 모세가 성장한 곳이어서 한국의 성지 순례객도 많다. 유적이 많고 역사도 워낙 방대해 사실 관광가이드는 쉽지 않은 직업이다. 그간 이집트를 공부하고 체험하면서 찾아오는 한국인들에게 이를 전하는 게 큰 보람이었다.
이씨처럼 이집트인과 가정을 이루고 사는 한국인은 10여명. 대체로 이곳에 나와 살다가 결혼해 다들 열심히 산다고 한다.
이씨는 지난해 영국 런던으로 이주해 또 다른 타향살이를 하고 있다. 남편은 이집트 항공의 런던지사에 근무하면서 승객-승무원의 식음료품의 예약-납품 등을 관리 감독하고 있다. 이씨 자신은 요즘 집안 일에 전념하며 초등학교 4학년인 아들과 다섯살난 딸을 키우고 있다.
정들면 고향이라 했던가. 이젠 이집트가 고향처럼 느껴진다. 가끔 고국의 옛 친구들과 산천이 가슴에 저리도록 그리워질 땐 그만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한다. 그래도 어쩌랴. 여기에 피붙이가 있고 이곳이 땀흘려 가꿔온 삶의 보금자리인데…. 이젠 세상이 한마을이라는 생각으로 모국에의 그리움을 달래본다.
조만간 다시 카이로에 돌아가면 한국인에게 이집트를 소개하는 가교역을 더 멋지게 해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상념에 젖어보기도 한다.
/차준영기자 jych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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