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세기 무렵부터 유럽의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았던 네덜란드 사람들은 간척사업과 해양진출밖에는 살 길이 없었다.그들은 유럽에서 동아프리카∼희망봉∼고아(인도)∼말라카해협∼마카오∼나가사키로 이어지는 먼 항로에 무수한 배를 띄웠다.그래서 오늘날에도 해사관계의 용어에는 「네덜란드인」이란 뜻인 「더치」가 흔히 따라 붙는다.
많은 네덜란드사람들이 해외무역과 관련된 일에 종사하다 보니 계산에 밝은 인색한 그들 국민성을 이웃나라 국민들이 멸시하게 된다.그래서 영어 속어에 인색한 사람을 가리켜 『에브리 타임 히 가트 인 「더치」(Every time he got in Dutch』라 한다.또 바다에 떠다니는 유령선이나 난파당한 선원을 보면 누구나 기겁을 하게 마련인데,그것을 가리켜 「플라잉 더치맨」이라 부르는 것도 네덜란드사람을 얕보는 데서 나온 말이다.
제주도에 표착했다가 1628년 서울로 압송된 벨테브레(한국명 박연)나 그보다 25년 뒤에 같은 장소에서 붙잡힌 하멜 일행은 모두 플라잉 더치맨이다.
17일자 본지 1면에 실린 기사를 보면 네덜란드는 1622년 이래 「은자의 나라」와 교역을 트고자 여러차례 무력함대를 파견했다가 번번이 실패로 끝났다고 한다.모두 플라잉 더치맨이 되고 만 것이다.
하나의 우화같은 얘기지만,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국제관계의 기본원칙이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똑똑히 보여주는 사례다.네덜란드가 조선정복을 시도한지 2백여년 후에 영국은 중국에 아편을 팔려고 함포와 군대까지 동원했었다.
우리나라까지 정복하려고 든 제국주의의 선두주자(?)인 네덜란드라고는 해도,세계도처에 발자취를 남긴 화란(=네덜란드)인의 개척정신과 구두쇠정신만은 우리가 본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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