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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망(설왕설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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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1991-12-20 07:30:00 수정 : 1991-12-20 07: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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갚을 말이 있고 안갚을 말이 있다.정신 없는 사람을 상대로 책임을 따지면 자신도 미친사람 밖에 될것이 없다.「길이 아니면 가지 말고 말이 아니면 갚지 말라」는 속담이 그래서 생겼다.
정도에 벗어난 노인의 말 역시 그러한 범주에 속한다.억척스럽게 허욕을 부렸거나 여색을 탐한 사람일수록 늙으면 보통사람보다 한층더 건망증이 심하고 주의력이 없어지며 성을 잘내고 엉뚱한 말을 조작하여 주위를 놀라게 한다.
뇌의 퇴행변성 때문에 생기는 노인성치매의 일종인데,오래전 기억은 비교적 그대로 되살리면서도 최근의 일은 전혀 모르는 경우가 적지 않다.아침에 한일을 저녁에 잊어버리고 어젯밤 한 말을 오늘에 뒤집는 등 기억세포가 혼란을 일으켜 이해력 판단력등 사고가 느려지고 못된 성깔만 되살아나 아무나 걸고 넘어지며 다투려든다.
조선조 효종때도 그런 사람이 있었다.중추부사까지 지낸 조형중이 바로 그다.여든이 가까워지자 혼미해지던 정신은 마침내 헛것을 보고 헛소리를 하기에 이르렀다.멀쩡한 사람을 잡귀라며 쫓아내라고 닦달도 했다.재상 반열에 있던 아들이 시중을 들자 허연 머리를 보고 형제뻘 쯤 되는 사람인 줄 알고 『사촌! 나한테 잘해줘 고마워.아까 문간에 왔던 거지들이 사촌네 애들이라며』했다는 기록이다.
이른바 「노망」현상임을 모를 사람은 없다.이쯤 되면 「사람의 말은 믿을 수 있다」는 뜻의 「인+언=신」의 공식은 성립되지 않는다.「개가 짖는다」는 「견+언=운」과 다를 것이 없다.
요즘도 그런 백일몽 속에 사는 노인네가 사회지도층으로 있어 걱정이다.「이 나라 경제는 내가 세웠다,돈없어 세금은 못낸다,서울시장을 맡겠다」는 등 노욕을 부풀리고 「대권에 도전하겠다」고까지 밝혔다가 또 언제 그랬느냐고 잡아떼는등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헛소리를 앞뒤도 모르고 남발,말썽을 빚더니 이제는 종교문제까지도 재판장노릇을 하고 나선다.날이 갈수록 증상이 심해지는 것같아 주변에서 뒤치다꺼리를 감당해야 하는 사람들의 고심은 얼마나 클지 자못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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