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은 유장한 흐름이기에 모든 수순은 오직 강물이 흐르듯 자연스러워야 한다. 묘수가 필요한 것은 이미 흐름이 비틀렸거나 막혔다는 뜻이다. 그것도 세번씩이나 막혔으니 그 판을 어찌 이기길 바라겠느냐는 뜻이다. 이 말에는 잔재주로 승리를 낚으려는 얄팍함을 경계하는 교훈이 담겨있다.
일본엔 「고래의 3묘수」란 것이 바둑계의 신화처럼 전해진다. 기성 수책의 「이적의 수」가 첫째요,원장의 「공배의 묘수」가 둘째요,장화의 「사석의 묘수」가 세번째다.
그런데 이들 묘수의 특징은 전혀 기묘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특히 수책의 「이적의 수」는 너무도 평범했으므로 좌중의 아무도 느끼지 못했다. 다만 상대방인 대국수 환암만이 그 수의 뼈져린 압력을 받고 귓부리가 붉게 변했다해서 이적이란 이름이 붙었을 뿐이다.
이처럼 진정한 묘수는 전판을 관조하는 안목속에서만 탄생한다. 묘수는 유유한 흐름의 일부이며 미래를 여는 비전으로 충만하지만 겉으로는 한없이 평범할 뿐이다.
요즘 우리나라의 정치는 바둑의 「묘수필패론」을 새삼 음미하게 만든다. 발등의 불만 끄며 무위무책으로 있다가 꽉 막히면 황급히 묘수를 만들어 낸다. 예전에 비슷한 이름을 수없이 들어본 공무원 기강쇄신이 그렇고 재벌의 부동산강제매각도 그 가운데 하나다. 가만히 놓아두거나 눈감아주기까지 하다가 흐름이 막혔다 싶으니까 도끼날로 장작패듯 강수를 던진 형국이다.
다시 바둑쪽을 돌아보면 『하수일수록 묘수를 밝힌다』는 격언이 있다. 하찮은 잔재주에 스스로 도취하고 자만하는 정치인들이 이 나라를 이끌고 있으니 제법 비전을 지녔던 진정한 묘수들마저 금방 타락해 버리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식이라면 총체적 난국은 매번 되풀이 될 뿐이다. 정치인들이 사이비묘수의 탐닉에서 벗어나 시대를 관류하는 진정한 묘수로 눈을 돌릴 날은 언제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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