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령 구한말 개화기의 정치가 유길준(1856∼1914)의 미국 유럽여행은 「서유견문」에서 보듯 외유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같은 시기의 혁명가 김옥균(18511894)이 갑신정변의 실패로 일본으로 간 것은 망명이었다. 유길준은 국내에서 옥살이를 한 뒤 내무대신까지 오르기도 했지만 김옥균은 청을 꺼리던 일본당국에 체포돼 유배생활을 하다가 중국 상해까지 유인돼 암살당했다. 10년 망명생활 끝에 44세에 명을 다한 때문에 풍운아로도 불린다.
그러나 요즘 와서는 망명과 외유의 구분이 꽤 모호해진 것 같다. 정치인들이 굳이 망명이란 말 대신 「외유」란 말을 즐겨 쓰기 때문이다. 5ㆍ16후 권력다툼 끝에 자의반 타의반 「외유」했던 김종필씨의 행적이 이 말을 아예 정치용어로 둔갑시켰는지 모른다.
아무튼 정치적 소용돌이 후에는 외유가 부쩍 는다. 권력다툼이 그만큼 적나라하고 푹력적이며 보복적이란 증거일 수도 있다. 최근에만도 정호용씨와 박철언 전정무1장관이 정치싸움 끝에 외유길에 올랐다.
이런 외유는 6공출범 이후 특히 「5공비리」에 대한 수사가 본격화하자 러시를 이루었다. 그중에도 권정달 전보안사 정보처장의 미국도피는 가장 약삭빠른 편이었다. 그는 88년6월 출국해 미국에 머물다가 21개월 만에 귀국했다. 그가 없는 동안 열린 국회언론 청문회에서는 80년 언론대학살의 장본인이 바로 권씨였다고 증인들은 입을 모았다.
그런 그가 귀국하자마자 9백명 가까운 언론인을 거리로 몰아낸 언론 통폐합을 두고 『대승적 입장에서 과거의 일로 넘겨야지 「긁어 부스럼」을 만들어서야 되겠느냐』고 말했단다. 21개월이란 시간의 흐름 속에 그 엄청난 「비리」가 망각됐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누가 할 말일지를 모르는 이런 언동을 보면서 그가 외유중 썼을 아까운 달러는 어디서,얼마나 생긴 것일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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