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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와 정치권에 경종 울린 두 의사의 죽음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입력 : 2019-02-08 16:52:07 수정 : 2019-02-08 16: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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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세원 정신의학과 교수, 윤한덕 중앙응급의료센터장 하늘로…의료계뿐 아니라 국가적으로도 큰 불행…의료 환경 예산에 인색했던 정치권 '제대로' 각성해야
정신적으로 고통받는 환자를 치료하며 자살예방에 힘썼던 임세원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를 잃은 지 불과 한 달여 만에 응급의료 분야의 중추였던 윤한덕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응급의료센터장을 갑작스레 하늘로 보내게 됐습니다.

임 교수는 새해를 앞둔 지난해 12월 31일 병원에서 상담하던 환자가 휘두른 흉기에 찔려 숨졌고, 윤 센터장은 설 연휴기간이던 지난 4일 자신의 사무실 책상 앞 의자에서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서로 전공은 달랐으나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위해서는 제몸도 아끼지 않은 채 누구보다 헌신했던 점은 꼭 닮았습니다. 유족과 고인들의 동료, 지인, 환자 등이 전하는 얘기도 한결같이 그렇네요.
◆참다웠던 의사들의 잇단 죽음···의료계는 물론 국가적으로도 큰 불행

임 교수 유족은 조의금으로 마련한 1억원을 대한정신건강재단에 기부하며 “임세원 의사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의료진의 안전이 지켜지고, 정신적으로 고통받는 환자 역시 적절한 치료와 지원을 받는 환경이 조성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며 “안전한 진료환경, 마음이 아픈 사람들이 편견과 차별 없이 도움받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고인의 뜻”이라고 했답니다.

생전에 허리통증으로 극단적 생각도 했다가 극복한 경험이 있는 임 교수 본인은 2016년 출간한 저서 ‘죽고 싶은 사람은 없다’에서 우울증 극복기를 소개하며 “이 책이 절망에 빠진 분들, 마음이 아픈 이들을 가족으로 두고 있는 분들, 무엇보다 삶의 순간순간을 행복으로 채워 나가고 싶어 하는 분들에게 작은 도움이나마 될 수 있다면, 그것이 내 희망의 근거가 될 것이라 굳게 믿는다”라고 썼습니다. 의사이기 전에 같은 인간으로서 정신적으로 힘든 상황에 놓인 사람들에 대한 그의 애정과 진정성이 어땠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고 임세원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연합뉴스
국립중앙의료원 고(故) 윤한덕 중앙응급의료센터장 빈소
윤 센터장도 마찬가지입니다. 2017년 10월 추석과 개천절, 한글날이 이어지며 10일 간의 연휴를 앞두고 페이스북에 “연휴가 열흘! 응급의료는 그것(장기 연휴)만으로도 재난이다!”라고 썼습니다. 대다수 병원이 문을 닫는 기간에는 증세와 상관없이 응급실로 환자가 몰리고 인력과 빈자리가 부족해 정작 응급 환자가 왔을 때 ‘골든타임’을 놓치는 딱한 현실을 전한 것입니다. 이후 그는 며칠 뒤 올린 글에선 “오늘은 몸이 세 개, 머리가 두 개였어야 했다. 내일은 몇 개가 필요할까?”라며 응급 의료 인력 부족 등에 따른 한계를 토로했지요.

소말리아 해적에게 납치돼 생사를 헤매던 석해균 선장의 치료를 맡아 유명해진 아주대병원 권역외상센터장 이국종 교수가 윤 센터장의 죽음에 “어깻죽지가 떨어져 나간 것 같다”고 한 게 괜한 얘기가 아닙니다. 이 교수는 윤 센터장에 대해 “‘황무지에서 숲을 일구겠다’는 선택을 한 인물, 대한민국 응급 의료 체계에 대한 생각 외에는 어떤 다른 것도 머릿 속에 넣고 있지 않고, 출세에는 무관심한 채 응급의료 업무만을 보고 걸어온 사람”으로 기억합니다.

실제 윤 센터장은 응급 의료 전용 헬기 도입과 응급 진료 정보망 시스템 구축 등 국내 응급·외상·재난의료 체계의 토대를 다진 주인공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이런 의사들을 황망하게 잃은 건 국내 의료계뿐 아니라 국가적으로도 큰 불행인 셈입니다. 
◆고인 추모 확산···정부와 정치권은 느끼는 거 없나

임 교수와 윤 센터장을 추모하는 분위기가 확산하고 빈소에 일반인 조문객의 발길이 이어진 게 낯설지 않은 까닭입니다. 예의 정부와 정치권에서도 주요 인사들의 조문 행렬이 줄을 이었습니다. 정부여당, 야당 인사 할 것 없이 모두 침통한 표정을 지으며 조문하고 유족들을 위로하며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하겠다”, “고인의 뜻이 헛되지 않도록 총력을 기울이겠다”는 등 판에 박힌 말들을 하고 사라집니다. 생전 임 교수와 윤 센터장을 비롯해 많은 전문가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돌보는 의료진을 위해 의료 현장의 부조리와 열악환 업무 환경 등의 개선을 줄기차게 요구할 때는 귀담아 듣지도 않다가 꼭 누가 죽어나가고 언론과 여론의 조명을 받으면 그런 목소리를 높입니다. 이는 태안 화력발전소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다 숨진 김용균씨 사례에서 보듯 모든 분야에서 비슷한 장면이 반복됩니다.

애꿎은 국민들이 허망하게 희생되거나 숨지지 않도록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고 챙겨야 하는 게 정부와 정치권의 기본 책무 아닌가요. 입만 열면 그렇게 하겠다는 사람들의 실상은 어떻습니까. 물론 박수쳐줄 만한 일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닙니다만 그마저도 만시지탄일 때가 많지요. 허구한 날 권력 다툼과 제밥그릇 챙기기에만 몰두하느라 바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지역개발 명목으로 수십조원 규모의 토목사업에는 국민 혈세를 마구 퍼부으면서 의료 환경 개선에 들어갈 예산 확보에는 인색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던 것 아닐까요.

임 교수와 윤 센터장 등 안타깝게 숨진 분들의 뜻이 헛되지 않도록 정부와 정치권은 ‘제대로’ 각성했으면 합니다.

이강은 기자 kele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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