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 공약은 선거 때마다 쟁점으로 떠오른다. 유권자의 호주머니 사정을 돕는 직접 지원 공약인 만큼 ‘파괴력’이 큰 탓이다. ‘복지공약=표’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고령화시대에 접어들면서 노인을 위한 공약은 흡입력이 더욱 강하다. 이 때문에 각 후보 진영은 공약 개발에 사활을 건다. ‘퍼주기’식 공약이 남발되면서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국가 재정을 파탄으로 몰아넣는 ‘위험한 게임’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18대 대선 주자들의 공약에도 표를 잡기 위한 경쟁의 성격이 짙게 드러난다.

박 후보는 주로 세출구조 조정, 조세·복지행정 개혁을 통해 재원을 확보하겠다고 강조한다. 문 후보는 재정개혁과 대기업에게 집중된 비과세감면 폐지, 추가 재정 자금 조달을 통해 마련하겠다는 계획이다.
◆‘선택적 복지’ 대 ‘보편적 복지’
복지 확대에는 모두 동의한다. 가장 큰 차이를 드러내는 정책은 의료 정책을 놓고서다. 박 후보는 ‘선택적 의료’, 문 후보는 ‘보편적 의료’에 가깝다.
박 후보의 공약에는 특정 질병과 계층에 의료지원을 확대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 가운데 암·심혈관·뇌혈관·희귀난치성 4대 중증질환에 대한 건강보험을 100% 책임지는 내용이 핵심이다. 반면 문 후보는 환자 본인 부담을 연간 100만원 이내로 줄이는 ‘100만원 상한제’ 와 간병 서비스를 건보 적용 대상에 포함시켜 ‘보호자 없는 병원’을 실현하겠다고 했다.
박 후보는 현재 63% 수준인 건보 보장률을 장기적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80%까지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문 후보는 여기에 더해 입원 진료비 보장률은 90% 수준까지 높이겠다고 했다. ‘포퓰리즘’이라는 비난을 피하기 위해 ‘무상’이라는 이름만 뺀 것이다.
이를 모두 시행하기 위해선 연간 6조원 이상의 재원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건보재정은 현재 ‘자립’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건보 전문가들은 “대부분 건보료를 올리거나 세금을 더 걷어 획기적으로 재원을 확충하지 않으면 실현하기 어려운 꿈같은 이야기”라고 지적했다.
박 후보의 중증질환자 의료비 100% 보장에 대해서는 “결국 무료라는 뜻인데 문제점을 제대로 알고 공약으로 내건 건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문 후보 공약에 대해서도 “의료급여(기초수급자) 지원금과 간병료를 감안하면 연간 최소 13조원이 필요하다”며 “부담이 줄면 의료 이용이 늘어 돈이 두세 배 더 들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무상보육은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에게 최대의 관심사다. 이를 반영하듯 올해 인터넷을 가장 뜨겁게 달군 것 중 하나가 ‘0∼5세 무상보육’ 번복 논란이었다.
정부는 올해 0∼5세 무상보육을 시행했다가 7개월 만에 ‘소득하위 70% 가구 전액지원, 상위 30%는 월 10만∼20만원의 본인부담금’을 내는 것으로 후퇴했다. 졸속으로 시행하다 ‘돈’에 막힌 것이다. 이 여파는 아직 가시지 않고 있다. 서울 24개 구청장은 최근 후퇴한 무상보육도 감당할 수 없다며 내년 보육예산을 올해(2470억원)만큼만 반영하고 추가 분담금(930억원)은 짜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또다시 보육대란이 우려되는 이유다.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두 후보는 총선 공약이었던 무상보육을 다시 복지정책의 주요 공약으로 내걸었다. 내용은 거의 비슷하다. 박 후보는 1년에 어린이집 1000개씩 늘려나가겠다고 다짐한다. 문 후보는 국공립어린이집을 대폭 확충해 이용아동기준으로 40%까지 늘리겠다고 한다. 이들은 또 보육교사 처우 개선, 시간제 보육, 사후관리 강화를 내세우고 있다. 유력 후보들이 0∼5세 무상보육을 약속한 만큼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실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열악한 재정여건이 개선되지 않는 한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지자체의 한 관계자는 박 후보의 공약대로라면 자치단체 부담이 연간 7100억원이 증가하고, 문 후보의 경우에는 훨씬 더 많이 들 것이라고 지적한다.
◆같은 듯 다른 노인복지 공약
젊은층에 비해 공약 내용에 따라 표심을 좌우하는 경향을 보이는 노인을 위한 공약은 구체성이 떨어진다.
박 후보는 월 20만원의 ‘노인연금’ 도입을 내세우고 있다. 문 후보는 65세 이상 노인에게 지급하는 현행 기초노령연금(단독가구 9만4600원)의 2배 인상을 약속했다. 대상자 또한 소득하위 70%에서 80%까지 늘려 노인 대부분이 연금을 받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방법론상 차이가 있을 뿐 거의 비슷한 공약이다. 올해 386만명에게 지급되는 기초노령연금액이 3조9000억원인 점을 감안하면 막대한 재원이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박 후보는 또 60세 정년의 법적 의무화에 따른 기업의 인건비 증가를 막기 위해 ‘임금피크제’를 연계해 추진하겠다고 약속했다. 일정 연령을 넘기면 급여를 깎는 대신 고용을 보장하는 임금피크제를 통해 기업의 부담을 줄이겠다는 것이다. 문 후보 역시 법적 정년을 60세로 올리겠다고 강조했다. 2033년까지 단계적으로 65세까지 정년을 연장해 국민연금 수령 연령이 늦어지는 것에 대비하겠다는 구상이다.
두 후보의 같은 듯 다른 공약에 대해 전문가들은 구체성이 부족하다고 분석한다. 정말로 노인들에게 도움이 되는 복지에 대한 깊은 고민보다 선심성 정책을 경쟁하듯이 내놓는 것은 별 도움이 안 된다고도 했다.
문준식 기자 mjsi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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