험준한 산줄기·절벽 병풍 두른듯
산악열차 타고 피오르 거슬러 오르면
삼켜버릴 듯 쏟아내리는 폭포수 장쾌 에드바르 뭉크(1863∼1944)가 노르웨이 동부에 있는 뢰텐에서 태어난 건 천만다행이다. 노르웨이 서쪽의 한적한 마을에 앉아 대자연이 빚어낸 피오르를 보고 있노라면 찌들고 음울한 인생이 그려냈던 ‘절규’와 같은 작품은 나오지 못했을 터다. 하루하루 절규 같은 인생을 살아내는 사람들이 한번은 가봐야 할 곳이다. 굽이치는 산줄기, 그 속에 고즈넉이 바닷물을 담고 있는 피오르는 ‘빙하가 할퀸 상처’라기엔 지나치게 아름답다. 등에 지고 온 짐을 다 벗어 던져도 군말 없이 받아줄 것만 같은 곳. 노르웨이 피오르는 인간을 보잘것없게 만드는 위압적인 자연이기보다는 인간을 품어주는 자연의 선물에 가깝다.
![]() |
에우를란스 피오르의 전경. 스키점프대 모습을 본뜬 스테가스테인 전망대에서 조금만 더 올라가면 에우를란스 피오르가 한눈에 펼쳐진다. |
노르웨이에서 긴 시간을 보낼 수 없을 때는 요점만 쏙쏙 볼 수 있는 ‘노르웨이 인 어 넛셀’을 따라가면 된다. 베르겐에서 시작해 세계에서 가장 큰 피오르인 송네 피오르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풍광을 자랑하는 네뢰위·에우를란스 피오르, 플롬을 거쳐 오슬로까지 이르는 구간이다.
피오르 여행길은 산골짜기에 있는 마을 구드방엔에서 시작한다. 차를 타고 피오르를 따라가다 보면 산 속에 느닷없는 바다와 크루즈가 나타난다. 네뢰위 피오르의 시작점이다. 네뢰위 피오르는 유럽에서 가장 좁은 피오르로 2005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됐다. 크루즈 갑판에 서면 갈지자 모양으로 서로 겹쳐진 짙푸른 피오르가 한눈에 담긴다. 미리 짜인 계획대로, 신이 날카로운 손톱으로 지그재그 긁어내 만들어 놓은 듯하다.
![]() |
크루즈에서 바라본 네뢰위 피오르. 유럽에서 가장 좁은 피오르가 갈지자 모양으로 겹겹이 겹쳐 보인다. |
◆피오르의 마을, 플롬
네뢰위 피오르에서 에우를란스 피오르로 방향을 틀어 가다 보면 알록달록 성냥갑 같은 건물이 모여있는 마을이 눈에 들어온다. 피오르 여행자들이 놓치지 말아야 할 피오르의 ‘수도’ 플롬이다. 산으로 연결된 기찻길과 빨간 기차역이 눈에 띈다. 플롬에서 짐을 푼 뒤에는 차를 타고 20분 정도 산 위로 올라가자. 에우를란스 피오르를 내려다볼 수 있는 스테가스테인 전망대가 나온다. 스키 점프대를 본뜬 모습이 그 자체로 볼거리다. 점프대 위에 서면 발 아래 유리 너머 펼쳐지는 절벽에 눈앞이 아찔하다. 전망대라고 해서 사진 몇 번 찍고 바로 내려가면 곤란하다. 닦인 길을 따라 산을 더 오르면 산꼭대기 ‘진짜’ 전망대가 나온다. 거기서 내려다보는 피오르가 일품이다.
깎아지른 절벽과 산맥은 굽이친다. 그 속에 담긴 물은 놀랍도록 고요하다. 빙하가 할퀴고 내려간 자리에 바닷물이 ‘침입’해서 생겼다는 피오르. 그 치열한 자연의 역사가 언제 있었느냐는 듯 여행자의 눈에 담긴 피오르는 고고하기만 하다. 바닷물에 비치는 피오르와 구름의 그림자까지, 신은 혼신의 힘을 다해서 이 피오르를 만들어 냈을 것만 같다. 지금 이곳에 서서 위안받는 사람들을 위해서.
고개를 조금만 돌리면 손바닥 안에 플롬도 들어온다. 피오르 곳곳에 서 있는 원목주택은 저마다 페인트 옷을 입고 있지만 어디에 서 있어도 어색함이 없다. 자연을 거스르는 인간의 교만이 없어 마치 처음부터 피오르와 함께 있었다는 듯 시치미를 떼고 있다. 시멘트로 만든 아파트로 메워진 한국의 도시가 겹쳐지면서 살짝 시샘이 났다.
![]() |
에우를란스 피오르 끝에 형성된 피오르의 ‘수도’ 플롬. 플롬의 명물 산악기찻길과 브루어리, 1870년에 문을 연 프레테임 호텔까지 볼거리가 가득하다. |
유럽에서 견줄 데가 없다는 아름다운 산악기찻길 플롬바나. 산악열차가 플롬에서 뮈르달까지 1시간 정도 가파른 협곡을 오르내린다. 해발고도 800m까지 올라간다. 20개의 터널과 다리를 지나다 보면 아득한 피오르 아래 산골짜기 마을이 보인다. 탄성이 나오는 창밖 풍경에 카메라를 들라치면 이내 깜깜한 터널 속으로 들어가버리니 아예 카메라를 내려놓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플롬에서의 짙푸른 피오르가 아니라 눈 덮인 설원이 나타난다. 출발할 땐 여름이었는데 이 산악기차 안에서 겨울을 맞이했다.
갑작스러운 굉음과 함께 기찻길 바로 옆에서 쏟아지는 쇼스 폭포와 만났다. 플롬바나의 명물 중의 명물. 친절한 기관사가 잠시 문을 열어줄 테니 급하게 셔터를 누를 필요는 없다. 기차까지 삼켜버릴 듯이 퍼붓는 폭포수 탓일까. 기차는 채 2분을 서 있지 않고 뮈르달로 후다닥 출발한다.
뮈르달에서 오슬로로 가는 미끈한 기차를 갈아타면 피오르와의 작별을 고해야 한다. 기차 안 여행자들의 눈빛에 아쉬움이 묻어난다. 그러나 편안해 보인다. 뭉크의 ‘절규’가 마치 내 모습 같아질 때면 노르웨이 피오르를 기억하며 스스로를 달랠 수 있을 테니까.
노르웨이=글·사진 이유진 기자 heyday@segye.com
■ 여행정보
노르웨이 여행은 대개 피오르의 관문인 베르겐에서 시작해 송네피오르를 거쳐 오슬로에 이른다. 한국에서 베르겐까지 직항은 없고, 네덜란드(KLM)항공이 인천∼암스테르담∼베르겐을 운항한다. 인천∼암스테르담은 10시간, 암스테르담∼베르겐은 1시간30분쯤 걸린다. 여름은 해가 지지 않는 백야 덕분에 야경을 보려면 오후 11시 정도까지 기다려야 하지만 여행자에겐 시간을 꽉꽉 채워 쓸 수 있는 계절이다. 겨울은 그 반대여서 여행기간을 늘려야 한다. 낮에는 내리쬐는 햇볕이 강해 선글라스를 챙기는 게 좋고, 저녁이면 금세 쌀쌀해져 도톰한 옷도 잊으면 안 된다. 유럽연합(EU)에 가입하지 않은 노르웨이는 자국 화폐 크로네(kr)를 쓴다. 1크로네는 190원 정도. 호텔이나 공항의 일반 상점조차 유로를 받지 않는 곳이 많으니 환전은 필수다. 베르겐·오슬로에서는 관광안내소로 가서 각 도시에서 나오는 패스카드를 사면 좋다. 대중교통은 물론 주요 박물관과 유명 식당 등에서 할인받을 수 있다. 노르웨이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 상품인 ‘노르웨이 인 어 넛셀’은 베르겐∼보스∼구드방엔∼플롬∼뮈르달을 거쳐 오슬로에 이른다. 왕복 1430크로네(약 30만원). 더 자세한 정보는 노르웨이 관광청(www.visitnorway.com·02-773-6422)에서 찾을 수 있다.
노르웨이 여행은 대개 피오르의 관문인 베르겐에서 시작해 송네피오르를 거쳐 오슬로에 이른다. 한국에서 베르겐까지 직항은 없고, 네덜란드(KLM)항공이 인천∼암스테르담∼베르겐을 운항한다. 인천∼암스테르담은 10시간, 암스테르담∼베르겐은 1시간30분쯤 걸린다. 여름은 해가 지지 않는 백야 덕분에 야경을 보려면 오후 11시 정도까지 기다려야 하지만 여행자에겐 시간을 꽉꽉 채워 쓸 수 있는 계절이다. 겨울은 그 반대여서 여행기간을 늘려야 한다. 낮에는 내리쬐는 햇볕이 강해 선글라스를 챙기는 게 좋고, 저녁이면 금세 쌀쌀해져 도톰한 옷도 잊으면 안 된다. 유럽연합(EU)에 가입하지 않은 노르웨이는 자국 화폐 크로네(kr)를 쓴다. 1크로네는 190원 정도. 호텔이나 공항의 일반 상점조차 유로를 받지 않는 곳이 많으니 환전은 필수다. 베르겐·오슬로에서는 관광안내소로 가서 각 도시에서 나오는 패스카드를 사면 좋다. 대중교통은 물론 주요 박물관과 유명 식당 등에서 할인받을 수 있다. 노르웨이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 상품인 ‘노르웨이 인 어 넛셀’은 베르겐∼보스∼구드방엔∼플롬∼뮈르달을 거쳐 오슬로에 이른다. 왕복 1430크로네(약 30만원). 더 자세한 정보는 노르웨이 관광청(www.visitnorway.com·02-773-6422)에서 찾을 수 있다.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