代 끊긴 전통기법 추구하다 정부도 속아 국새 전통제작 기술은 애초 없었다.
전 4대 국새제작단장 민홍규(54)씨를 1일 소환해 17시간 가까이 강도 높게 조사한 경찰 수사팀은 연이어 쏟아진 그의 자백에 할 말을 잃었다.
'600년 전통의 비전(秘傳)'을 물려받았다는 처음 주장과 달리 조사 결과 민씨는 뒷산에서 굴을 파서 주물 연습을 해볼 정도로 전통 주물 방면에는 문외한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처음부터 끝까지 거짓말 = 경찰은 수사 초기 민씨와 국새 제작 실무를 맡은 이창수씨의 진술이 팽팽하게 맞선 점을 고려해 민씨가 스승으로 모셨다고 주장한 석불(石佛) 정기호 선생(1899~1989)의 다른 제자 등 주변 인물과 전문가들을 상대로 저인망식 조사를 진행했다.
수학 과정과 행적을 모아본 결과 민씨는 석불에게서 실제 주물 기술을 배운 적도 없고, 석불에게 물려받았다는 '영세부' 등도 모두 위조한 것으로 드러났다.
민씨는 2005년 석불 선생의 수제자라며 전수한 기술을 담았다는 '옥새'라는 책을 펴낸 적이 있다.
경찰 관계자는 "민씨가 '미아리 뒷산에서 굴을 파놓고 (주물 연습을) 했다'고 진술하는 등 주물 기술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 전문가 입장에서 보면 주물 분야에서 민씨는 '초등학생' 수준의 기술자"라고 말했다.
민씨는 또 횡령한 금의 용도를 묻자 자신의 금 2kg을 더 넣어 주물 제작을 하는 데 사용했지만, 의도대로 물건이 만들어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경찰은 국가기록원에서 국새 관련 문서 30만 장을 분석한 결과 초대 국새제작자가 석불이 아닌 다른 사람이라는 점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경찰 관계자는 "애초 알려진 것과 달리 초대 국새는 은으로 만들었고 제작자도 석불 선생이 아니었다"며 "석불은 주물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석불의 아들인 목불 정민조 선생은 연합뉴스와 전화 통화에서 "아버지가 초대 국새를 제작했는지 분명하지는 않지만 원본 기록이 있다면 보고 싶다"고 말했다.
◇'놋쇠'로 대담한 사기행각 = 민씨의 행적은 거짓말에서 끝나지 않고 횡령, 사기 시도로 이어졌다.
그는 국새를 제작하고 남은 금 1.2kg을 빼돌려 개인적으로 유용한 혐의를 받고 있다.
민씨는 4대 국새를 놓고 찍은 사진으로 잡지 광고까지 하며 개인, 법인용 금장을 비싼 가격에 판매했다. 금장 판매에 '국새의 권위'를 빌려왔던 셈이다.
작년 초에는 한 술 더 떠 서울 소공동 롯데백화점에서 백금과 다이아몬드로 만든 국새라며 무려 40억원으로 가격을 매겨 전시를 하기도 했다.
경찰은 이 '국새'를 지난달 27일 민씨의 경기도 이천 공방에서 찾아냈다.
민씨의 주장과 달리 40억원 짜리 국새는 황동(놋쇠)과 니켈, 인조다이아몬드를 사용해 만든 것으로 원가가 200만 원 정도에 불과했다.
경찰 관계자는 "민씨가 장인으로서 무형문화재였다면 부르는 게 가격일 수도 있지만, 백금과 다이아몬드를 사용하지도 않았는데 귀금속으로 만들었다며 40억원이라고 가격을 정한 것은 사기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백금은 녹는점이 1천700도로 높아 큰 주물을 만들 수 없다.
구리와 아연의 합금인 황동에 소량의 납을 섞으면 금빛을 띠는데, 이렇게 만든 합금은 주로 금단추, 휘장 등 금 빛깔 장식에 쓰인다. 물론 오래되면 색이 변한다.
백금으로 만들었다는 주장은 주물 전문가라면 눈치 챌 수도 있었고, 그게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금박'이 벗겨지고 색이 변해 드러날 수밖에 없는 사기 행각이었던 셈이다.
◇무리하게 전통방식 고수 = 경찰은 국내에 전통 방식의 주물 기법으로 국새를 만들 수 있는 장인이 없다고 단언했다.
경찰 관계자는 "대(代)가 끊긴 데다 수요도 거의 없어 우리나라에서는 전통 방식으로 국새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이 현재는 없다"며 "민씨가 할 수 있다고 여기저기 얘기를 하고 다녀도 검증할 수 있는 사람이 없어 결국 정부도 속았다"고 말했다.
전통 방식으로 주물을 만들면 기포가 생기기 쉽고 밀도를 균일하게 맞추는 것도 어려워 실력을 갖춘 장인이 아니면 제대로 된 물건을 만들 수 없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반면 현대식 실리콘 거푸집을 사용해 주물을 만들면 밀도도 균일하고 기포도 생기지 않는다.
정부의 의도야 어쨌든 검증도 되지 않은 전통 방식을 고수할 필요는 없었던 셈이다.
행정안전부는 한 사람의 사기극으로 얼룩진 제4대 국새와 관련해 여론 수렴과 각계 전문가의 조언을 거쳐 계속 사용할지를 신중하게 결정한다는 방침을 세워 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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