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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병’ 최극씨‘펀치볼 전투’ 현장을 가다

관련이슈 6·25전쟁 발발 60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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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지 뺏고 빼앗기길 여섯차례… 수많은 전우 비명속 스러져가”
조국위기 때 목숨 던진 이름없는 사병 많아… 정부 각별한 관심 필요
“이젠 전투 현장을 찾는 것도 힘에 부쳐. 이번이 마지막이지 않을까 싶네. 다시는 이 땅에 비극적인 전쟁이 일어나지 않아야 해.” 23일 짙은 연무가 산등성이를 에워싼 강원 양구군 해안면 해안분지. 6·25전쟁 당시 최대 격전지 중 하나로 꼽히는 ‘펀치볼 전투’ 현장이다. 남과 북이 여섯 번을 뺏고 빼앗기는 치열한 공방을 벌인 곳이다.

녹음이 우거진 산을 둘러보는 최극(78) 외교국방연구소 이사는 먹먹한 표정이었다.

그는 젊음을 꽃피우지 못하고 산화한 전우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매년 이곳을 찾았다.

“전사자와 참전용사들의 넋을 위로하는 길은 오로지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되는 것이야. 남북이 다시는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누는 일이 없어야지.”

전쟁이 끝나고 강산이 6번 바뀌는 새 포연이 자욱했던 전투의 흔적을 이제 찾을 수 없다. 움푹 파인 곳은 포 진지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될 뿐 어떠한 표지도 없었다.

최 이사의 기억에는 아직도 당시 전투 상황이 뚜렷하게 남아 있다. 펀치볼 가칠봉(1242고지) 정상에 선 그는 자신이 소대장으로 지휘한 110박격포대 진지가 있던 곳을 가리켰다. ‘펀치볼’(Punch Bowl·화채그릇)이란 지명이 유래된 것처럼 발 아래로 둥근 사발 모양의 분지가 한눈에 들어왔다.

최 이사는 “전쟁으로 꽃다운 남북한의 젊은이들이 불귀의 객이 됐다”며 “시신을 수습하지 못한 채 이곳에 묻힌 수많은 영혼이 슬피 우는 것 같아 마음이 무겁다”고 말을 잇지 못했다.

◇최극 외교국방연구소 이사가 지난 23일 강원 인제군 서화면 평촌 부근을 찾아 언제 파놓은지 모르는 참호에서 6·25전쟁 당시를 회고하며 상념에 젖어 있다.
인제=송원영 기자
그는 대전중 6학년에 재학 중인 1950년 전쟁이 발발하자 배광석(예비역 소장)·송석인(국가유공자)·박찬문(예비역 대령) 등과 함께 위기에 처한 조국을 구하자면서 태극기에 혈서를 쓰고 학도의용군으로 나섰다. 이후 육군종합학교에 입교해 51년 4월 소위로 임관한 뒤 제110박격포대 소대장을 맡았다.

110박격포대는 중부전선 요충지인 강원 홍천에 위치한 미 해병1사단에 배속돼 인제군 서화면 부근 평촌에 주둔했다. 110박격포대는 인민군 제1사단과 소규모 전투를 벌이다 8월31일 전면전에 들어갔다. 오전 5시30분 110박격포대에서 12문의 106㎜ 박격포가 불을 뿜는 것을 시작으로 치열한 교전이 벌어졌다. 적도 맹렬한 포격으로 응수했다. 110박격포대 진지에 10여발의 포탄이 날아들었다. 폭발로 부대원 1명이 숨지고 5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다음날에도 고지를 점령하기 위한 전투가 재개됐다. 110박격포대는 발사판에 금이 가고 포신이 뜨겁게 달아올라 손을 대지 못할 정도로 맹포격을 가했다. 박격포를 쏘기 위해 병사들이 걸레에 물을 적셔 포신을 식혀야 할 정도였다. 펀치볼 전투 중 하나인 ‘펀치볼 지구전투’는 3일째 되는 날 판가름 났다. 국군은 516고지, 666고지 등에 이어 천혜의 요새로 불린 924고지(김일성고지), 1026고지(모택동고지)를 차례로 점령했다.

“수많은 희생자를 낸 이곳에 위령비 하나 없어 우리가 사비를 털어 세웠어. 정부는 6·25전쟁 60주년이라고 해서 장군이나 장교만 챙길 게 아니라 조국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목숨을 아까워하지 않고 전쟁에 참여한 이름 없는 사병 출신들을 예우해 줬으면 해.” 한참 동안 자리를 뜨지 못하다가 어렵게 뗀 그의 발걸음이 무거워 보였다.

양구·인제·홍천=장원주 기자 stru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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