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개 기관은 부지·규모 등 못 정해 승인도 못 받아 정부가 지역균형발전을 위해 2012년까지 지방의 10개 혁신도시에 수도권 소재 124개 공공기관을 옮기는 사업을 실시하고 있지만 지지부진하다. 올해부터 이전할 청사의 건설공사가 시작돼야 하지만 혁신도시 4만5000여㎡의 부지 조성 공정률은 겨우 20%를 넘었다. 이전 대상 공공기관의 지방이전계획 승인은 그나마 속도를 내고 있지만 아직도 10개 기관은 승인을 받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지난달 11일 정부가 발표한 세종시 수정안이 혁신도시에 악영향을 줄 것이란 지방자치단체의 우려도 분출하고 있다.
◆더딘 속도=지난달 31일 국토해양부에 따르면 정부는 2005년 공공기관 지방이전계획에 따라 민간자본 10조6900여억원(사업시행자)과 국비 7500여억원 등 모두 11조4400여억원을 들여 부산, 대구, 광주·전남, 울산, 강원, 전북, 경북, 충북, 경남, 제주 등 10개 혁신도시를 건설하기로 결정했다.
이곳에는 2012년까지 이주하는 124개 기관의 직원 3만9000여명을 포함해 총 27만4000여명이 거주하게 된다.
정부는 혁신도시의 산학연 클러스터에 녹색산업을 적극 유치해 광역경제권을 선도할 녹색성장 도시기반을 구축할 계획이다.
아울러 바람길·물길·녹지축을 고려한 건축물 배치와 쓰레기 자원화, 보행자·자전거 위주의 교통체계 등으로 녹색도시를 만들고, 이전 공공기관 청사를 ‘저탄소 에너지 자립형’ 모델로 지을 방침이다.
그러나 2007년 9월 혁신도시 공사가 첫 삽을 뜬 이래 지금까지 부지조성공사 추진율은 지난해 말 기준으로 부산(78.6%)과 제주(49.5%)를 제외한 8곳이 3∼20%대로 평균 22.6%에 머물고 있다.
지역발전위는 2007년 12월14일부터 지난달 21일까지 7차례에 걸쳐 심의를 벌여 110개 공공기관의 지방이전계획을 승인했다.
정부는 나머지 14개 기관은 지난해 말까지 승인을 받도록 하겠다고 했지만 이들 기관은 아직도 이전 인원과 시기, 부지·시설 규모 등을 논의하고 있다.
승인을 받은 기관도 발걸음이 더디다. 소유한 부동산을 매각해 이전재원을 조달하는 ‘종전부동산 처리계획’을 확정한 곳은 40여개 기관에 불과하다.
이렇다 보니 한국도로공사와 국토해양인재개발원 등 27개 기관만 청사 설계에 착수했거나, 기본계획 수립 또는 설계공모를 진행 중이다.
농수산물유통공사와 사립학교교직원연금관리공단, 한국전력공사, 한국전력거래소, 한전KPS㈜, 한국가스공사, 한국감정원, 한국사학진흥재단, 한국관광공사, 대한지적공사 등 고작 10개 기관이 옮겨갈 혁신도시에 부지를 매입했다.
토지공사와 주택공사가 통합한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전북의 ‘분할 이전’과 경남의 ‘일괄 이전’ 힘겨루기에 끼어서 갈 곳을 정하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애초 전북혁신도시에 토지공사, 경남혁신도시에 주택공사를 옮기기로 했다. 그러나 새 정부 들어 공기업 선진화 방안에 따라 토공과 주공이 통폐합 대상으로 선정돼 지난해 10월1일 통합법인인 LH가 출범했다. 두 지역은 이미 혁신도시 건설이 시작된 데다 토공과 주공이 이전 대상기관 가운데 가장 비중이 크고 선도기관이어서 양보가 불가능하며 서로 자기 지역으로 토지주택공사 본사가 와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전북도는 지난해 11월 LH 사장을 포함한 직원 24.2%를 전주·완주에 건설 중인 혁신도시에 배치하는 것을 뼈대로 한 분산 배치안을 국토부에 제출했다.
이 안은 2012년 LH의 정원 조정 후 직원 수를 기준으로 했다. 사장(총괄, 홍보실, 감사실 포함)과 기획조정본부, 경영지원부문이 전북에 오고 경남혁신도시에는 사업부서인 보금자리본부와 녹색도시본부, 서민주거본부 등 직원 1138명(75.8%)을 배치하는 것이다.
이에 반해 경남도는 LH 본사가 진주에 건설될 혁신도시에 일괄 이전해야 하며 LH가 이전하지 않는 지역엔 정부 차원에서 다른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경남도는 “애초 통합 전 주공 직원 수는 진주혁신도시 전체 이전기관의 40.4%를 차지할 정도로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해 LH가 일괄이전하지 않으면 혁신도시 건설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정부는 양 도와 LH 측 의견을 모두 취합해 합리적인 결론을 내릴 방침이지만 지역 간 이해관계가 첨예해 쉽지 않을 전망이다.
국토부 공공기관이전추진단의 한 관계자는 “미승인 기관의 지방이전계획과 통폐합 기관의 이전방안을 조속히 확정하도록 하고, 이전기관별로 부지매입과 청사 설계, 착공, 부동산 매각 등에 대한 체크리스트를 마련해 분기별로 점검하겠다”고 말했다.
◆혁신도시 영향은=정부가 혁신도시의 분양가 인하, 자족용지 및 원형지(原形地) 공급 확대 등을 제시하며 세종시 수정 추진에 따른 역차별 논란을 차단하고 나섰지만 지방자치단체의 걱정은 여전히 크다.
지난달 11일 세종시 수정안이 발표되자 혁신도시가 조성 중인 지자체의 국회의원들로 구성된 ‘국회 혁신도시건설촉진국회의원 모임’은 “혁신도시는 공공기관과 연관된 민간기업, 대학, 연구소 등이 동반 이주해 시너지 효과를 거둠으로써 광역경제권의 성장거점으로 발전할 수 있는데, 세종시로 이전하는 기업과 연구소, 대학에 값싼 토지와 무차별적인 세제혜택으로 10개 혁신도시와 기업도시 등의 건설은 차질이 불가피하게 됐다”는 성명서를 발표하기도 했다.
이런 반발에 정부는 지난달 22일 국가정책조정회의를 열어 혁신도시에도 기업들이 용도에 맞게 조성해 쓰도록 주·간선도로, 상·하수도 등 기초 인프라 외에 부지조성 공사를 하지 않고 미개발 상태인 원형지 공급을 확대하고, 분양가를 14% 인하하며 세종시와 동일한 수준의 세제를 지원하기로 했다.
그러나 혁신도시에는 원형지로 공급할 만한 땅이 적다.
광주·전남혁신도시의 골프장 부지(82만㎡)와 전북혁신도시에 들어설 농촌진흥청 산하 연구기관의 시험포(673㎡) 등이 전부다. 그나마 작물재배의 성과를 높이기 위한 시험포는 공공기관에 공급하는 것이어서 기업유치와는 상관이 없다.
원형지는 규모가 커야만 효과가 있는데 혁신도시는 이렇게 물량이 적고 조성 중인 부지 대부분이 이미 세팅이 돼 있어 새로운 물량을 발굴하기도 쉽지 않다.
또 정부가 국가정책조정회의에서 혁신도시의 자족용지를 244만㎡에서 338만㎡로 38% 확대해 분양가를 14% 낮추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는 정부가 지난해 9월 지자체와 함께 마련한 혁신도시 발전방안을 확정한 요식행위에 불과할 뿐 추가적인 인하조치가 아니다.
이 자족시설용지가 원형지 가능 부지로 검토될 수도 있지만, 혁신도시별로는 33만8000㎡에 불과한 데다 주변지역과의 조화나 도시개발계획, 입주할 기업의 특성 등을 고려하면 대부분 검토대상에서 배제될 수밖에 없다.
지자체들은 혁신도시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분양가를 더 낮춰야 한다며 도로와 상하수도 등 사업비 1조1700여억원의 국고지원을 요구하고 있으나 정부는 수용하기 곤란하다는 입장이다. 정부가 2007년부터 2011년까지 혁신도시 진입도로와 상수도 설치비로 세운 예산은 7501억원에 불과하다.
이에 대해 국토부 공공기관지방이전추진단의 한 관계자는 “특목고 등 우수학교 유치와 선진도시기법 도입, 정주여건·기업환경 개선 등을 통해 혁신도시가 차질 없이 추진되도록 적극 지원할 계획”이라며 “혁신도시 이전 공기업의 토지매입을 최대한 신속히 완료하고, 이전하는 공기업과 협력관계가 많은 민간기업의 동반 이전을 유도하는 등 기업투자 유치대책을 적극 강구하겠다”고 말했다.
박찬준 기자 skyland@segye.com
■혁신도시 부지조성 추진현황 (2009년 기준) (단위:억원,%) | |||
구 분 | 총 사업비 | 공사 추진율 | 토지 보상률 |
부 산 | 4,121 | 78.6 | 93.4 |
대 구 | 15,347 | 26.1 | 98.6 |
광주·전남 | 14,161 | 15.1 | 99.4 |
울 산 | 10,807 | 27.8 | 95.3 |
강 원 | 9,284 | 21.8 | 99.2 |
전 북 | 15,423 | 19.2 | 99.6 |
경 북 | 9,185 | 29.2 | 99.6 |
충 북 | 13,503 | 3 | 100 |
경 남 | 11,656 | 21.7 | 99.1 |
제 주 | 3,465 | 49.5 | 100 |
총 계 | 10,6972 | 22.6 | 99.2 |
※국토해양부 공공기관 이전추진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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