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사학계 "안 의사 재판 부당론 힘 받을 것" 안중근 의사의 의거 당시 일제 수뇌부가 재러 한국인에 대한 재판권 행사가 부당하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사료가 공개돼 안 의사 재판의 정당성을 둘러싼 한일 양국의 논쟁이 새 국면을 맞을 전망이다.
안 의사는 감옥에서 집필한 `안응칠 역사'에서 "왜 오늘 일본 감옥에 갇혀 있는 것인가. 더욱이 일본 법률의 재판을 받는 까닭은 무엇인가. 내가 언제 일본에 귀화한 사람인가"라며 재판의 부당함을 강조하고 "나는 군인으로서 행동한 것이므로 국제법에 따라 포로로 대우해 달라"라고 요구했다.
한국 역사학자들도 그동안 "안 의사의 재판은 러시아가 주관했어야 하며, 일본으로 신병을 인도하려면 한국 정부와 협의해야 했다"며 재판의 불법성을 지적해 왔다.
반면 일본은 "러시아가 스스로 안 의사의 신병을 우리 영사관으로 인계한 것이기에 문제가 없다"고 맞서 왔다.
그러나 18일 공개된 당시 일본 수뇌부들의 전문은 일본 측의 그간 주장과 철저하게 모순된다.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 신운용 연구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의거 2년전 하얼빈에서 한국인의 일본인 살해사건이 벌어지자 하얼빈 주재 일본 총영사는 "(피고인의) 신병을 인도받지 않는 것이 지당하다고 사료된다"는 전문을 보냈다.
이토 히로부미 역시 나중에 보낸 전문에서 "(재러한인 재판에 대해) 한국 정부와 협의할 당위성이 인정된다"고 말했다.
신 연구원은 "이번에 나온 사료에서 일제는 스스로 재러 한인을 일본법에 의해 재판하는 것은 국제법에 어긋나지만 `편의'를 위한 행위였음을 인정했다"며 "이는 안 의사 재판이 정당했다는 일본 측 주장이 설득력이 없음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번에 발굴된 사료에 대해 역사학계는 비상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한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고려대 한국사학과 조광 교수는 "절차에 어긋나더라도 일본 법정에서 재판을 강행하려는 일본의 의도가 문건 형태로 드러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안 의사 재판이 부당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증명해 줄 수 있는 뜻 깊은 자료"라고 평가했다.
그는 "이 사료 발견으로 안 의사 재판 관할권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학자들의 주장이 더욱 힘을 받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서울시립대 국사학과 정재정 교수도 "이번에 발견된 이토 히로부미의 전문 내용 등은 일본 학자들 논리의 한계를 잘 보여주는 것"이라고 평했다.
이어 "일본은 안 의사 재판뿐 아니라 한일간 모든 조약이 국제법상 문제가 없는 것처럼 절묘하게 꾸며왔다"면서 "일본의 위법성 문제를 재조명할 수 있는 자료를 많이 발굴해 계속 문제제기를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연세대학교 오영섭 연구교수는 의거 2년 전 사건이 안 의사 재판에 선례로 작용했다는 점에 주목해 "안 의사의 신병이 러시아에서 일본으로 넘어가는 과정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사료"라며 "의거 100주년을 앞두고 많은 토론회가 열리는데, 재판 과정에 대한 논의도 많이 이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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