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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그런스’란 용어 마뜩잖은 이유 [박영순의 커피 언어]

입력 : 2022-05-14 10:00:00 수정 : 2022-05-13 20:3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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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향을 다룰 때 활용되는 단어는 ‘센트’(scent) ‘프레그런스’(fragrance) ‘퍼퓸’(perfume) 등 다양하다. 서구 국가들이 커피 문화를 선점하다 보니 테이스팅 영역에서 영어 단어들이 ‘링구아 프랑카’가 됐다. 향미 묘사에 아름다운 우리말이 많지만, 글로벌 커피 시장의 흐름에 맞추기 위해서 세계적으로 커피애호가들 사이에 약속된 용어를 잘 구사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향이 정서에 미치는 섬세한 지점들을 차별적으로 나타내기 위해서는 그 사정에 맞는 단어들이 필요하다. 센트는 동식물이 발산하는 체취라는 뜻이 앞선다. 알 파치노가 열연한 영화 ‘여인의 향기’의 원제가 ‘Scent of a Woman’이다. 퍼퓸은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소설 제목이기도 한데, 영화에서 묘사되는 것처럼 ‘액체에서 발산하는 향’이라는 의미가 강하다.

 

한 잔으로 완성된 커피의 향미를 통해 품질을 평가하고 묘사하는 ‘5대 지표’

‘오더’(odor)와 ‘스팅크’(stink)는 나쁜 냄새를 가리키는 반면 ‘아로마’(aroma)와 프레그런스는 긍정적인 표현이다. 두 단어는 라틴어에 뿌리를 두고 프랑스를 거쳐 영국에서는 문학작품에 흔적을 남겼다. 아로마는 18세기 기록에서 향수나 향료의 원료로 사용된 몰약을 지칭했다. 프레그런스는 17세기 존 밀턴이 실낙원에 ‘향기로운 구름이 드리워져’(Veiled in a Cloud of Fragrance)라고 적은 것처럼 ‘좋은 감성을 들게 하는 냄새’일 때 쓰인다.

하지만 프레그런스는 커피에서 ‘볶은 원두를 곱게 간 가루 향’을 특정해 지칭하는 것으로 굳어지고 있다. 가루가 물을 만난 뒤 생성되거나 한 잔에 담겼을 때 발산하는 향은 ‘젖은 향’(wet aroma)이라고 따로 부른다. 미국과 영국이 주도하는 스페셜티커피협회가 커핑(cupping)의 한 평가항목으로 프레그런스를 넣음으로써 커피전문용어로 만들었고, 커피 관련 학술논문에서만 프레그런스를 가루 향으로 정의하는 사례가 가끔 보인다. 일반 명사를 커피전문 렉시콘(lexicon)으로 만든 것은 가히 ‘거대 커피기구의 권력’이라 하겠다. 굳이 혼란을 부추기고 개념도 모호한 프레그런스를 쓰기보다는 명료하게 ‘마른 향’(dry aroma)라고 하는 게 좋겠다.

더욱이 프레그런스가 커피의 품질을 평가하는 항목으로서 적절하지 않다는 문제도 있다. 가루 향은 짧은 시간에 휘발되는 데다 좋아 보여도 추출한 뒤에는 정반대로 평가되는 상황이 잦다. 이 때문에 브라질을 비롯한 커피생산국가들이 주도하는 컵오브엑설런스(COE)의 향미 평가에는 프레그런스가 빠졌다. 대신 ‘Aroma-Dry’란 항목이 있지만 100점 만점의 평가 외에 2점을 가산하는 정도에 그친다. 성분을 추출하기 전 가루 상태에서 발산하는 향을 품질 평가에서 큰 몫을 차지하도록 두어서는 안 된다는 전문가들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다.

가루 향은 ‘커피가 추출되는 공간과 그 시간에 머물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축복’이라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한 잔의 커피가 탄생하는 찰나를 함께한 사람들의 마음에 남는 정서다. 좋은 커피가 지닌 속성 중에 장미, 신선한 버터, 캐러멜 향은 물로 추출된 후에 더 두드러진다. 그러나 초콜릿과 헤이즐넛, 허니, 블랙커런트와 같은 포근한 향들은 가루일 때 더 부각된다. 번거롭더라도 직접 원두를 갈아 추출해 즐기는 사람들에게는 가루 향을 알아볼 수 있는 안목이 생긴다. 그만큼 더 행복해지는 무엇. 그것이 커피 드라이 아로마의 진가다.


박영순 커피인문학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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