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초네 선율 곁들인 30년 伊거주 한인 성악가의 ‘와인 예찬’ [마이 라이프]

‘이탈리아 와인 여행’ 펴낸 황충연 대표

이탈리아 와인·칸초네·오페라 접목 소개
여행·전문적 식견으로 생생 정보 가득
와인 감정사 1·2코스 자격증까지 취득
이탈리아 문화 즐기는데 포커스 맞춰

대학에서 성악 전공… 졸업후 伊 유학길
밀라노 베르디 국립음악원 성악과 졸업
베르디 오케스트라 합창단서 음악활동
무역·여행·유통업체 ‘노빌레’ 설립 운영

이탈리아 한인경제연합회 회장 등 역임
한국 중소기업의 이탈리아 진출 지원도
유럽 거주 교포 2∼3세 창업교육 진행
伊와이너리 소개하는 두 번째 책 구상 중

이탈리아 밀라노 베르디 오케스트라 합창단 단원으로 활동 중인 황충연 노빌레 대표가 와인잔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세계한인무역협회 이탈리아 지회장 등을 지낸 황 대표는 식품관리사와 와인감정사 자격증을 취득했으며 최근 이탈리아 와인을 지역·품종별로 총망라하고 어울리는 음식, 칸초네, 성악곡을 페어링한 책 ‘이탈리아 와인 여행’을 펴냈다. 황충연 대표 제공

베르디, 푸치니, 로시니, 도니체티, 벨리니. 이런 오페라의 거장들을 빼놓고 이탈리아 문화를 얘기할 수 있을까. 언뜻 떠오르는 이탈리아 오페라 작곡가들이 넘쳐나니 말이다. 대학시절, 도니체티 오페라 ‘사랑의 묘약’ 중 남자 주인공 네모리노가 부르는 테너 아리아 ‘남몰래 흘리는 눈물’에 푹 빠져 성악 전공하는 친구에게 밥을 사줘 가며 노래를 배운 기억이 난다. 그만큼 이탈리아 국민이 아니더라도 오페라 하면 이탈리아가 연상될 정도로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이탈리아 대중가요 ‘칸초네(canzone)’도 마찬가지. 노래를 잘 모르는 이들도 ‘오 나의 태양(O Sole Mio)’과 ‘돌아오라 소렌토로(Torna A Surriento)’가 어디선가 흘러나오면 자신도 모르게 흥얼거리게 된다. 또 하나, 와인도 칸초네와 함께 이탈리아 문화를 대표한다. 와인 생산량과 소비량 모두 전 세계 1위를 이탈리아가 차지한다는 사실이 이를 말해준다.

최근 흥미로운 책 한 권이 소비자들에게 찾아왔다. 바로 와인을 음식, 칸초네, 오페라 아리아와 접목해 이탈리아 문화를 전하는 ‘이탈리아 와인 여행’(출판사 휴앤스토리)이다. 저자는 이탈리아에서 30년 넘게 살고 있는 성악가이자 무역·여행업체 노빌레(Nobile)를 운영하는 황충연(57) 대표. 이탈리아 한인경제인협회 회장과 세계한인무역협회(World-OKTA) 이탈리아 지회장을 지낼 정도로 현지에서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그를 따라 와인의 향기와 칸초네의 선율에 푹 빠져본다.

#칸초네, 오페라 아리아, 그리고 와인

이탈리아 와인과 칸초네라니. 아주 신선한 접목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밀라노에 거주하는 황 대표를 16일 줌으로 만나 화상 인터뷰를 하며 그의 이탈리아 생활 30년을 함께 따라갔다. 와인과 칸초네, 오페라는 어떤 점이 닮았을까.

“이탈리아에서는 와인을 비노(vino)라고 해요. 일반적인 술은 리큐르(liquor)로 분류하지만 비노는 리큐르에 속하지 않고 그냥 비노예요. 이탈리아 사람들은 와인을 음료수로 여길 정도로 늘 곁에 두고 편하게 접하죠. 숙성시킬 필요가 없이 바로 먹는 와인은 보통 와이너리에서 1년 동안 마실 와인을 대량 구매해요. ‘다미지아나(damigiana)’로 부르는 55ℓ짜리 커다란 병에 와인을 담는데 많게는 10통가량 집으로 실어온 뒤 1.5ℓ짜리 매그넘 병에 나눠 지하실에 보관하면서 물처럼 마신답니다. 그만큼 이곳에서 와인은 음식과 뗄 수 없을 정도로 생활에 녹아 있어요. 칸초네와 오페라 아리아도 마찬가지입니다. 이탈리아 언어 자체가 음악에 녹아 있어 억양이 그대로 살아 있답니다. 이탈리아에서 음악과 와인은 한몸인 셈이죠.”

황 대표는 이런 와인을 마시면서 그때그때 떠오르는 와인의 느낌과 잘 어울리는 칸초네, 오페라 아리아를 매칭하는 작업을 오랫동안 진행했다. 또 이탈리아 전역을 여행하면서 맛본 음식 중 와인과 궁합이 아주 좋은 메뉴까지 선별했다. 칸초네가 흐르는 레스토랑에서 셰프의 손맛이 한껏 발휘된 이탈리아 음식을 와인과 함께 맛보는 풍경이라니. 상상만 해도 당장 이탈리아로 날아가고 싶어진다.

“경쾌한 버블이 기분을 상쾌하게 만드는 스파클링 프로세코는 1982년 산레모 가요제 2위곡으로 우리에게도 익숙한 ‘펠리치타(Felicita)’를 추천합니다. 또 프로세코가 건배를 위한 와인인 만큼 베르디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La Traviata)’ 중 축제의 노래로 유명한 ‘브린디시(Brindisi)’를 들으면서 프로세코를 마셔보면 좋을 것 같네요. 넙치 오븐구이(Rombo al Forno)와 해물모둠튀김(Fritto Misoto)을 곁들이면 완벽한 저녁식사가 될 거예요.”

황 대표는 이처럼 60개 챕터를 통해 이탈리아의 거의 모든 와인 생산지역과 품종, 그 지역 음식을 소개하면서 칸초네와 오페라 이야기를 풀어간다. 놀라운 것은 ‘이탈리아 와인의 교과서’라고 불러도 무방할 정도로 내용이 전문적이고 방대하다는 점이다. 와인 초보자는 물론 소믈리에, 와인강사, 와인 저널리스트 입장에서도 도움이 많이 될 정도로 현지에서 오랫동안 경험하지 못하면 절대 알 수 없는 생생한 정보가 가득 담겨 있다. 그럼에도 글을 쉽게 써 와인과 음식 초보자도 쉽게 다가갈 수 있다. 이는 오랫동안 음악활동을 하는 틈틈이 이탈리아 전역을 여행하면서 발로 뛰어 정보를 차곡차곡 수집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여기에 음식과 와인 자격증까지 확보해 전문적인 식견을 더했다. 황 대표는 2002년 이탈리아 롬바르디아주 식품관리사 자격증과 2005~2007년 이탈리아 와인 감정사(ONAV·Organizzazione Nazionale Assaggiatori del Vino) 1, 2코스 자격증을 취득했다. ONAV는 양조과정에도 직접 참여하는 와인 전문가를 배출하는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와인교육기관이다.

“이탈리아 와인을 음식은 물론, 칸초네, 오페라 아리아와 접목한 것은 아마 세계 최초일 겁니다. 음식은 지역에 따라 현지인들이 많이 즐기는 전형적인 이탈리아 음식을 골랐고 오페라도 이탈리아 작곡가만 선별해 온전하게 이탈리아 문화를 즐기는 데 포커스를 맞췄답니다.”

#동네 교회 성가대 대원에서 밀라노 베르디 합창단 단원으로

황 대표는 어린 시절부터 ‘성악 DNA’가 뛰어났다. 성가대에서 활동해 ‘노래 잘 부르는 훈남 교회 오빠’로 인기가 높았단다. 학교 음악시간에 배우는 노래로는 만족하지 못해 중학생 시절 두꺼운 세계 명곡 책을 직접 사서 노래를 익힐 정도로 노래에 푹 빠져 지냈다. 경기 의정부 중·고교를 다닌 황 대표는 경기도 대회 독창대회 등 많은 콩쿠르에서 상도 받았다. 결국 고등학생 때부터 성악을 본격적으로 시작, 경희대 성악과에 진학해 성악가의 길을 걷게 된다. 대학시절 축제 때 씨름대회에서 천하장사에 올랐고 1년 동안 유도반에서 활동할 정도로 스포츠를 좋아했는데 성악에 필수적인 체력을 기르는 데 큰 도움이 됐단다. 대학 졸업 후 1년 동안 안양시립합창단 단원으로 활동한 뒤 이탈리아 유학을 선택했는데 당시로서는 자연스러운 과정이었다.

“오페라의 가창 양식 중 하나인 벨칸토 창법이 이탈리아 오페라에서 나왔기에 오페라 가수가 되기 위해서는 이탈리아 유학을 선택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겨지던 시절이었죠. 성악 전공을 한 아내를 만나 결혼한 뒤 함께 신혼여행 겸 이탈리아 유학길에 올랐어요. 그때만 해도 한 5∼6년 정도 공부하고 아이 한명 낳아서 한국으로 돌아가려고 했는데 벌써 30년 넘게 신혼여행중이네요. 하하.”

200년 전통의 유명한 밀라노 주세페 베르디 국립음악원 성악과를 졸업한 황 대표는 에르바 아카데미아(Erba Academia) 합창지휘 전문가과정까지 성악 공부를 마치는 데 무려 10년이나 걸렸다. 이를 발판으로 1998년부터 현재 밀라노 베르디 오케스트라 합창단(Orchestra Sinfinia e Coro Sinfonico di Milano Giuseppe Verdi) 단원으로 음악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베르디 합창단은 라 스칼라 합창단과 함께 이탈리아에서 손꼽히는 합창단으로, 황 대표는 창단 멤버이자 현재까지 남아 있는 유일한 한국인 단원이다. 창단 초기 오케스트라 상임 지휘자로 활동한 리카르도 샤이는 현재 라 스칼라의 상임지휘를 맡고 있다. 초대 합창단 지휘자는 바로 합창 지휘의 세계적인 거장인 마에스토로 로마노 간돌피다.

“간돌피가 합창단을 지휘한다는 얘기를 듣고 무조건 시험을 보러 갔죠. 합창 지휘를 깊게 공부하던 시절이었는데 간돌피가 자신에게 와서 배우라고 권유하더군요. 당시 한국인 성악가들이 7∼8명 있었는데 다 한국으로 돌아가고 지금 혼자 남았네요. ‘베토벤 9번 교향곡’은 지금도 연말연초에 5일 동안 공연하는데 전석 매진될 정도로 밀라노에서 가장 중요한 음악회가 됐답니다.”

특히 베르디 레퀴엠은 ‘이탈리아 클래식계 최고의 듀엣이 만들어낸 최고의 베르디 레퀴엠’이라는 언론의 찬사를 받았고 2000~2005년에 많은 무대에 올랐다. 황 대표는 일본 NHK 50주년 기념음악회, 오스트리아 비엔나 신년음악회가 열리는 극장 등에서 공연했고 많을 때는 유럽을 돌며 한 달에 1∼2회씩 무대에 섰다. 지금도 매년 스위스에서 베토벤 9번 교향곡으로 합창단 공연무대를 펼치고 있다.

#한국 중소기업 이탈리아 진출 지원도 발 벗고 나서

하지만 합창단원으로 생계를 이어가기는 턱없이 부족했기에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식당 접시닦이에서 관광가이드까지 안 해본 일이 없네요. 그러나 보니 좋은 보수가 통역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죠. 페루자 언어학교에서 이탈리아어를 공부한 뒤 밀라노시에서 외국인을 상대로 무료로 제공하는 어학수업을 3년 동안 쫓아다니며 이탈리아어를 열심히 공부했는데 덕분에 이곳 문화도 빨리 익혔고 사업이나 와인 공부를 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됐답니다.”

황 대표가 와인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게 된 것은 한국 정부의 고위관료나 기업 오너들의 이탈리아 방문 때 가이드로 활동하게 되면서부터다. 여행 스케줄을 짜고 현지를 미리 답사하다 보니 고객에게 추천할 다양한 음식과 와인 등을 테이스팅하면서 점점 이탈리아 와인과 음식의 매력에 푹 빠져들게 됐다. 결국 그는 음식과 와인을 더 깊게 공부하기 위해 식품관리사와 와인감정사 자격까지 취득하고 무역·여행·와인유통판매를 아우르는 업체 ‘노빌레’를 설립해 사업가로서의 삶도 병행하게 됐다.

그는 현재 밀라노 남쪽 도시 오페라에서 와인·식품·주방명품·스카프 등을 판매하는 노빌레 샵을 운영 중이며 다양한 유럽 명품을 한국 편집샵 등에 유통하는 사업을 하고 있다. 황 대표는 이런 경력을 바탕으로 2018∼2019년 이탈리아 한인경제인협회 회장과 세계한인무역협회 이탈리아 지회장을 지냈고 현재는 상임이사로 활동 중이다. 세계한인무역협회는 이탈리아에 진출하려는 한국 중소기업들에게 가장 중요한 현지 마켓을 조사해 정보를 지원하며 유럽에 거주하는 교포 2∼3세들을 상대로 창업교육도 진행한다.

황 대표가 그동안 방문한 와이너리는 100곳이 훌쩍 넘는다. 그는 이를 토대로 와이너리를 소개하는 두 번째 책을 구상 중이다. 그가 강추하는 이탈리아 여행지는 피렌체와 친퀘테레. “피렌체는 티본스테이크가 유명한데 수입산, 이탈리아산, 피오렌티나(피렌체 옛 이름)산 키아니나 등 3가지 등급이 있어요. 키아니아 스테이크에 토스카나 레드 와인을 곁들여 보세요. 친퀘테레에선 엔초비에 화이트 와인을 마시면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겁니다.”

황 대표는… ●1965년 경기 김포 출생 ●의정부고·경희대학교 음악대학 성악과 졸업 ●이탈리아 밀라노 주세페 베르디 국립음악원 성악과 졸업 ●에르바 아카데미아(Erba Academia) 합창지휘 전문가과정 졸업 ●1998년~현재 밀라노 베르디 오케스트라 합창단(Orchestra Sinfinia e Coro Sinfonico di Milano Giuseppe Verdi) 단원 ●베토벤 9번 교향곡·베르디 레퀴엠 등 공연 ●밀라노 노빌레(Nobile) 대표 ●2002년 이탈리아 롬바르디아주 식품관리사 자격증 취득 ●2005~2007년 이탈리아 와인 감정사(ONAV·Organizzazione Nazionale Assaggiatori del Vino) 1, 2코스 자격증 취득 ●2018~2019년 이탈리아 한인경제인협회 회장 역임 ●2018~2019년 세계한인무역협회(World-OKTA) 이탈리아 지회장 역임·현 상임이사 ●현 안중근의사숭모회 유럽본부 이탈리아 지회장 ●현 제20기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유중아 남유럽협의회 이탈리아지회장

최현태 선임기자 [e-m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