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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의 넷제로 선언… 그린워싱에 안 속으려면? [뉴스 인사이드]

입력 : 2021-01-24 11:00:00 수정 : 2021-01-24 14: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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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천연가스 사용 온실가스의 주범
화석연료 사용 땐 목표달성 갈길 멀어
伊 ENI·英 BP 등 대표적인 동참 기업

저탄소 사업 투자액, 총자본 1%도 안돼
일부 배출량 정보 제대로 공개 안하기도
기업들 세부대책 등 점검 목소리 높아

감축범위 ‘스코프 단계’ 활용 확인 가능
전략 공개 플랫폼 CDP 등 감시조직 중요
투자자들의 탈탄소 목소리도 변화 일조
‘탄소를 태우면 이산화탄소(온실가스)가 발생한다’. 화학식으론 ‘C + O₂→ CO₂’. 웬만한 초등학생도 아는 화학반응식이다. 석유, 석탄 같은 화석연료는 탄소와 수소로 이뤄졌기 때문에 우리가 화석연료를 태워 에너지를 얻을 때 이산화탄소가 나온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지금까지 에너지 분야는 전적으로 이 화학 반응에 기대어 산업을 일궈왔고, 그렇기에 기후변화 주범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글로벌 석유 기업들이 줄줄이 ‘넷제로(net zero·온실가스 순배출량 0)’를 선언하기 시작했다.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한 이산화탄소가 발생하는 화학법칙을 거스를 수는 없을 텐데 도대체 어떻게 넷제로를 달성한다는 것일까. 과연 이들 기업의 선언을 믿어도 될까. 이에 대한 대답은 선언의 구체적인 내용, 즉 ‘디테일’에 있다.

 

◆줄 잇는 선언, 내용은?

주요 석유 기업 가운데 제일 먼저 넷제로 선언을 한 건 이탈리아의 ENI다. ENI는 2018년 넷제로를 선언한 뒤 여러 차례에 걸쳐 계획을 업데이트했다. 홈페이지를 보면 ENI는 2030년까지 생산설비와 전력 계통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의 순배출량(배출량-흡수량)을 0으로 낮출 계획이다.

영국의 BP는 지난해 2월 넷제로 선언을 했다. 2025년까지 BP 설비에서 나오는 배출량이 더는 늘지 않도록 조치하고, 2050년 이전 순배출량 0을 달성하겠다는 내용이다. 석유 회사라면 어디든 지구 환경에 빚을 지고 있지만 BP는 더욱 고개를 들 수 없는 과거가 있다. BP는 20년 전 회사 이름을 ‘브리티시 페트롤리엄’에서 ‘비욘드 페트롤리엄’(석유를 넘어서)으로 바꿔 이미지 개선에 나섰다. 그러나 2010년 미국 멕시코만에서 시추선이 폭발하는 ‘딥워터 호라이즌’ 사건이 벌어지면서 수포로 돌아갔다. 사상 최악의 해상 기름 유출로 기록된 이 사건을 수습하느라 그간 투자했던 태양광·풍력 사업을 모두 접었다.

이랬던 BP가 넷제로 선언을 하자 경쟁사들도 마음이 급해졌다. BP 선언 석 달도 안 돼 토탈과 로열더치셸이 잇따라 2050 넷제로 선언을 했고, 최근에는 미국의 엑손모빌과 셰브론도 동참하기로 했다.

탄소정보공개 프로젝트(CDP)에 따르면 온실가스의 73%가 에너지 부문에서 나온다. 그 절반이 석유와 천연가스 사용 때문이다. 석유 기업의 넷제로 선언은 기후위기와의 전쟁에서 가장 화려한 전투력을 자랑하던 적군이 아군으로 돌아섰다는 의미다. 그렇지만 석유에서 손을 떼지 않는 한 ‘화석연료를 태우면 이산화탄소가 생긴다’는 원리에서 벗어나긴 어렵다. 어떤 비책이 있는 걸까.

◆디테일에 숨은 악마, 그 이름은 ‘그린워싱’

석유 기업의 넷제로 선언이 그린워싱(친환경으로 눈속임하는 것)인지 아닌지 알아보려면 ‘어느 범위까지’ 탄소를 줄이겠다는 것인지 확인해야 한다. 여기에 활용되는 게 ‘스코프(scope·범위)’라는 개념이다. 스코프는 1∼3단계로 구성된다. 예를 들어 ‘대한에너지’라고 하는 석유 회사가 있다고 치자.

스코프1은 대한에너지 사업장에서 발생하는 ‘직접 배출량’을 뜻한다. 스코프2는 대한에너지가 사용하는 전기와 관련있다. 전기를 만들 때 온실가스는 발전소 굴뚝에서 나오지만, 결국 대한에너지가 이 전기를 사서 생산활동을 하기 때문에 대한에너지의 배출량으로 잡는다.

스코프3는 범위가 훨씬 넓다. 대한에너지가 만든 기름이 사용되는 분야(수송, 석유화학 등)의 배출량까지 모두 포함한다. 그런데 이렇게 광의의 배출량까지 포함하게 되면 기업 간에 서로 겹치는 부분도 발생하지 않을까.

세계일보 질문에 페드로 파리아 CDP 전략고문은 “스코프3는 의도적으로 중복 계산되게끔 디자인됐다”고 했다. 그는 “한 기업이 스코프3 배출량을 줄이려면 또 다른 기업의 스코프1 배출량도 같이 줄어야 하기 때문에 서로 협업할 기회가 된다”며 “한 기업의 비즈니스 모델에서 파생되는 효과를 모두 고려한다는 의미도 있다”고 설명했다. 배출량 산정 범위를 일부러 겹치게 함으로써 한 기업의 밸류체인(가치 사슬)에 놓인 여러 기업이 동시에 넷제로를 추구하도록 했다는 얘기다.

스코프는 한국에선 생소한 개념이지만, 미국과 유럽에서는 기업의 넷제로 소식을 전할 때 이 부분을 비중있게 전한다.

석유 회사에서 스코프3는 전체 배출량의 90%를 차지한다. 따라서 이들 기업의 넷제로 선언이 정말 유의미한 것인지 알려면 스코프3가 포함됐는지를 보면 된다.

외신 보도를 종합하면 BP와 ENI·에퀴노르·토탈·셸은 스코프3가 포함된 탄소 감축 선언을 했고, 셰브론은 스코프1, 코노코필립스와 엑손은 스코프1∼2까지만 언급했다.

하지만 스코프3가 포함됐다고 해서 정말 배출량이 줄어들지는 다시 한 번 짚어봐야 한다. 용어에도 함정이 있다.

석유 기업의 선언을 보면 탄소 ‘배출량’이 아닌 ‘집약도’를 언급하는 경우가 있다. 2050년까지 탄소 집약도를 2016년의 65%로 낮추겠다고 한 셸의 경우가 그렇다.

탄소 집약도는 배출량을 생산량으로 나눈 값이다. 배출량보다 빠른 속도로 생산량이 늘어나면 탄소 집약도는 감소하기 마련이다. 지난해 전환경로이니셔티브(TPI) 보고서에 나온 토탈이 그랬다. 토탈은 2014년에서 2018년 사이 탄소 집약도를 75.6tCO₂e(이산화탄소 환산 t)/TJ에서 71.4tCO₂e/TJ로 낮췄다. 그러나 실제 배출량은 514MtCO₂e에서 554MtCO₂e로 8% 늘었다.

배출량을 줄이려면 결국 화석연료에서 재생에너지로 사업 영역을 옮겨가야 한다. 그런데 지금까지 석유 회사의 저탄소 사업 투자액은 총 자본지출의 1%에도 못 미친다.

또 넷제로 선언을 하고도 정작 배출량 정보는 제대로 공개하지 않는다거나 아직 실용화되지 않은 탄소포집저장(CCS) 기술에 지나치게 의존한다든가 하는 것 역시 디테일에 숨은 ‘악마’다.

◆매의 눈으로 감시한다

이렇듯 기업의 탈탄소 선언은 말잔치로 끝날 우려가 있기 때문에 이를 감시하기 위한 다양한 글로벌 조직이 있다. CDP는 온실가스를 포함한 기후변화 관련 지배구조, 전략 등을 공개하는 플랫폼이다. 기업이 온실가스 저감 목표를 세울 때 파리협정 목표를 충족할 수 있도록 기술적인 방법론을 제공하는 ‘과학기반감축목표 이니셔티브(SBTi)’도 있다. ‘온실가스(GHG) 프로토콜’은 기업이 표준화된 방식으로 온실가스를 줄일 수 있도록 관리하는 곳이다.

이 외에도 다양한 조직이 있는데 서로 별개의 조직이지만, 씨줄과 날줄이 되어 협력한다. GHG 프로토콜의 온실가스 산정 체계가 CDP와 SBTi에도 활용되는 식이다.

이런 감시활동을 지지하는 건 환경단체나 기후 전문가들만이 아니다. 최근에는 투자자들이 누구보다 큰 목소리로 탈탄소를 주장한다. 재생에너지로 대세가 기운 마당에 화석연료에 연연해서는 미래 안정적인 수익을 낼 수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유행처럼 번지는 석유 메이저의 넷제로 선언에도 꿈쩍 않던 엑손을 움직인 것도 ‘엔진 넘버1’이나 ‘캘리포니아 교직원 퇴직연금’ 같은 투자자였다.

김태한 CDP 한국위원회 책임연구원은 “기업의 온실가스 감축은 배출권 거래제나 탄소세 같은 의무규제가 아닌 이상 자발적으로 이뤄져왔다”며 “그러나 이제는 기업 외부에서 압력이 강하게 들어오고 있기 때문에 꼭 자발적이라고 보기만은 어렵다”고 했다.

 

윤지로 기자 kornya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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