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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포럼] 다시, 타는 목마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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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11-25 23:58:34 수정 : 2020-11-25 23:5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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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 항거·민주주의 갈망하던
70, 80년대 지식인들 읊던 애창 詩
현정부 내로남불·反인권 행태 가관
역사 의식해 反민주 폭정 중단을

‘신 새벽 뒷골목에/ 네 이름을 쓴다 민주주의여/ 내 머리는 너를 잊은 지 오래/ 내 발길은 너를 잊은 지 너무도 너무도 오래/ 오직 한 가닥 있어/ 타는 가슴속 목마름의 기억이/ 네 이름을 남 몰래 쓴다 민주주의여.’

김지하의 시 ‘타는 목마름으로’를 다시 읊는다. 민주주의가 실종돼 암울하던 시대, 시인 김영일(英一)은 ‘꽃부리’가 들어간 아름다운 본명을 뒤로하고 ‘지하’라는 필명으로 독재에 항거했다. 지하다방 입간판을 보고 지었다. 햇볕이라곤 눈곱만큼도 들어오지 않는 어두컴컴한 동굴 속 질식할 것 같은 시대상을 체화한 것이다.

조정진 논설위원 겸 통일연구위원

1975년 발표된 ‘타는 목마름으로’는 민주주의를 갈망하던 대학생 등 지식인들에게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유신헌법 제정과 긴급조치 등 권력의 횡포가 극에 달했던 시절이다. 정부 정책을 비판하거나 민주주의를 외치면 탄압이 자행됐다. 그럴수록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은 하늘을 찔렀다. 국회의원, 고급공무원 등 탐관오리들의 부정부패를 풍자한 그의 담시(譚詩) ‘오적(五賊)’도 국민의 분노를 대변했다.

‘타는 목마름으로’는 군사정부가 판을 치던 1980년대 초 노래로 만들어졌다. 청년들은 온몸이 자욱한 최루탄 가루에 뒤덮여 콜록대면서 전투경찰에 두들겨 맞고 사복경찰에 쫓기면서도 ‘독재 타도! 민주 회복!’을 외치며 ‘타는 목마름으로’를 목 놓아 불렀다. 당시 반국가사범으로 몰려 사형을 선고받은 김지하는 옥중에서 최후의 양심선언을 한다.

“내가 요구하고 내가 쟁취하려고 싸우는 것은 철저한 민주주의, 철저한 말의 자유, 그 이하도 그 이상도 아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나는 기본적으로 민주주의자, 자유주의자이다. 내가 특권, 부패, 독재 권력을 철저히 증오하는 한 젊은이라는 사실 이외에 나 자신을 굳이 무슨 주의자로 규정하려고 한다면, 나는 이 대답밖에 할 수 없다. 민주주의는 백성을 사랑하는 위정자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시민의 피와 시민의 칼을 두려워하는 권력을 바란다.”

40여년이 흐른 요즘 ‘타는 목마름으로’가 다시 불리고 있다. 최근 모처에서 열린 4·15부정선거 진상 규명 모임에서 50, 60대 중년남성들이 이 노래를 불렀다. 한 사람이 선창하자 대여섯 명이 따라 불렀다. 대학생이 된 환희도 공부도 낭만도 뒤로한 채 독재 타도와 민주 회복을 외치던 그 시절을 회상하며 주먹을 불끈 쥐는 모습이 보였다. 세계가 부러워하는 산업화와 민주화를 달성하는 데 청춘을 바친 분들이다. 누가 이들에게 ‘타는 목마름으로’를 다시 부르게 했을까.

지금 대한민국은 1970, 80년대 ‘타는 목마름으로’를 부르던 자들이 권력을 차지했다. 자칭 민주화 세력이다. 하지만 권력을 장악한 이들이 자행하는 행태를 보라. 유신시절, 5공시절과 뭐가 다른가. 이미 사자성어로 굳어진 ‘내로남불’은 물론이고, 대놓고 하는 대중국 사대와 사이비 신앙 수준의 친북 행태는 도저히 눈 뜨고 못 봐줄 정도이다. 삼권분립과 사법정의도 실종됐다. 학창시절의 이념 편향에서 깨어나지 못한 미몽환자들을 보는 듯하다.

이들은 애써 가꾸어온 대한민국의 서사를 지우는 데 혈안이다. 초대 대통령 이승만을 부인하고, 반만년 가난을 해결한 박정희의 업적을 지우기에 바쁘다. 그러면서 6·25전범인 김일성과 그 후계자인 김정일, 김정은 정권과 대를 이어 평화쇼를 벌이고 있다. 탈북 청년들을 안대와 포박 차림으로 북송시켰고, 실종된 자국 공무원이 화형당하는데도 집권세력은 모르쇠로 일관했다. 국민이 핵·미사일로 협박받고 있는데도 오매불망 평화타령만 하고 있다. 북한 인권을 외면하다 유엔 등 국제사회의 비아냥까지 받고 있다. 국격 하락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역사는 기록되고 있다. 2020년 대한민국 위정자들의 반민주주의적 행태도 낱낱이 기록되고 있다. 코로나19를 핑계로 집회시위를 원천 차단하고 있는 정치방역의 시효도 얼마 남지 않았다. 자유와 민주주의를 억압하는 독재체제는 결국 심판받게 돼 있다. ‘떨리는 손 떨리는 가슴/ 떨리는 치 떨리는 노여움으로 나무판자에/ 백묵으로 서툰 솜씨로 쓴다/ 숨죽여 흐느끼며/ 네 이름 남 몰래 쓴다/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

 

조정진 논설위원 겸 통일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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