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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타워] ‘두더지 잡기’, 결국 증세 때문이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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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11-25 23:57:05 수정 : 2020-11-25 23:5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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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설픈 부동산 ‘핀셋 규제’… 선량한 국민 지갑만 털어

수도권의 대도시에 거주하는 지인은 몇해 전 마당을 헤집고 다닌 두더지에 골치를 앓았다. 두더지가 다닌 길 위의 잔디가 말라 죽기 때문이다. 그는 집 뒷산에서 담벼락 밑으로 들어온 통로를 찾아 시멘트를 부어 막은 뒤 여러 방법을 시도하다 결국 약을 뿌려 두더지를 잡았다.

느닷없는 두더지 얘기는 집값 때문이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두더지 같은 집값을 ‘핀셋’으로 잡으려는 정부의 의도가 궁금해져서다.

나기천 산업부 차장

과도한 규제 논란에 그동안 정부는 집값 불안 지역을 ‘정밀타격’해 급등의 불씨를 끄고 주변 지역 피해는 막는다는 이른바 ‘핀셋 규제’를 강조해 왔다. 그러면서 정부는 현재까지 크게는 24번에 걸쳐 주요 지역의 부동산 규제를 조였다 풀었다 했다.

결과는 대실패였다. 규제지역 집값도 못 잡고, 주변의 비규제지역 집값을 들쑤시기만 했다는 게 국민의 냉정한 평가다.

지난 19일에도 정부는 경기 김포와 부산, 대구 일부 지역을 조정대상지역으로 묶었다. 그러자 바로 파주, 창원, 경산 등 인근 지역 집값이 들썩였다. ‘풍선효과’만 양산한 꼴이다. 부산은 1년 전 규제지역에서 해제됐다가 이번에 다시 묶였다. 엄중해야 할 정부 정책이 이런 식이다.

전문가들은 이런 시도 자체가 어설프다는 반응이다. 시중에 유동성이 넘쳐나는데 몇몇 지역 ‘뒷북치기’식으로 규제해 봤자 그 돈이 흐름을 멈추겠냐는 것이다. 돈은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는 물처럼 다른 곳을 찾아 스며든다.

애초 정부가 두더지 잡기가 아니라 두더지 잡기 ‘게임’에만 관심을 둔 것 아니냐는 의문이 든다. 두더지 잡기 게임은 그냥 구멍에서 튀어나온 두더지를 때리면 된다. 실제로는 야행성인 두더지가 구멍에서 튀어나오는 모습을 거의 보이지 않는데도 말이다.

정부는 왜 이런 게임을 즐길까. 정부가 정말 집값을 안정시키겠다는 의지는 있는가.

국민은 “결국은 증세 때문이었다”라고 그 질문에 답하고 있다. 김포나 부산 해운대구 등은 이제 대출액이 줄고, 집 살 때 여러 번거로운 절차가 생겨 당분간 집값이 오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기존 주민이나 신규 입주자 등은 규제로 묶이기 전까지 급등한 만큼의 재산세를 내년에 더 내야 한다.

이전부터 정부는 차곡차곡 부동산 세금을 올려왔다. 2018년에는 2%였던 다주택자의 종합부동산세 최고세율을 3.2%로 올렸다. 내년에는 6%까지 인상된다. 23일부터는 역대 최대 고지세액 4조2687억원이 담긴 종부세 고지서가 발송됐다. 내년에는 공시가격 현실화율 로드맵에 따라 또 오른 종부세를 준비해야 한다.

다주택자는 전월세 가격 인상으로 부담을 전가하고, 소득이 없거나 적은 은퇴자나 1주택 서민은 살던 집을 팔아야 할 판이다. 집을 팔려 해도 이번엔 감당하지 못할 수준의 거래세가 목을 조인다.

‘핀셋 증세’에 퇴로가 없다. 두더지를 잡을 때 가장 기본은 퇴로를 차단하는 것이라고 한다. 두더지 굴이 미로처럼 진행한 흔적을 찾아 일단 삽 같은 것을 꽂아 도망갈 길을 막은 뒤 그 앞에 갇힌 두더지를 퇴치하는 식이다. 이제는 정부가 국민을 퇴치 대상 두더지로 보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한 대학교수는 “이 정부는 ‘국민은 안중에도 없는 정부’”라고 말했다. 투기꾼은 놓치고, 어설픈 규제로 집값에 불을 지른 정부가 대다수 선량한 유주택·실수요자 지갑만 털고 있다는 얘기였다.

 

나기천 산업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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