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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식민지에서 벗어나는 일, 삼성이 나서야"… 꿈 이루고 떠난 '거인'

, 이건희 별세

입력 : 2020-10-26 06:00:00 수정 : 2020-10-25 23: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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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일류 삼성’ 일구고 여정 마침표
끊임없는 도전정신·혁신의 승부사
반도체 불모지에서 ‘세계1위’ 신화
재임 중 매출 39배·시총 396배로
1993년 이건희 회장이 독일 프랑트푸르트에서 신경영을 선언하고 있다. 삼성 제공

대한민국 재계의 거목이 스러졌다.

 

‘반도체 신화’를 통해 삼성을 세계 초일류 기업으로 이끈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25일 새벽 삼성서울병원에서 별세했다. 향년 78세. 2014년 5월 급성 심근경색증으로 서울 이태원동 자택에서 쓰러진 뒤 6년5개월 만이다. 그는 삼성을 대표하는 기업인이자, 국내 산업발전과 기술혁신에 영감을 준 정신적 지주였다.

 

삼성전자는 이날 이 회장의 별세 소식을 전하면서 “장례를 간소하게 가족장으로 치르기로 했으며, 조문과 조화는 정중히 사양한다”고 알렸다. 유족으로 부인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 관장, 아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딸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 사위 김재열 삼성경제연구소 사장이 있다. 홍 전 관장과 이 부회장 등 유족들은 전날 이 회장의 위중 소식에 병원을 찾아 임종을 지켜본 것으로 전해졌다.

 

이 회장은 도전과 혁신을 통해 우리나라가 IT(정보기술) 강국으로 올라서는 초석을 닦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1974년 파산 직전의 한국반도체를 인수하며 IT 산업의 모태인 반도체 사업을 시작했다. 당시 주위 만류에도 이 회장은 “기술 식민지에서 벗어나는 일, 삼성이 나서야 한다”며 사재를 보태 한국반도체를 인수했다.

 

불가능해 보였던 꿈을 이 회장은 현실로 이뤄냈다. 삼성은 1986년 7월 1메가 D램을 생산하면서 반도체 산업을 본격적으로 꽃피우기 시작했다. 삼성은 64메가 D램 개발로 기술 주도권을 확보한 데 이어 시장 점유율 1위를 기록하며 명실상부한 세계 1위 기업으로 우뚝섰다. 1987년 그룹 회장에 취임한 이 회장은 1993년 신경영선언(프랑크푸르트선언)을 통해 초일류 삼성의 기틀을 마련했다. 이 회장은 당시 신경영선언에서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바꿔라. 2등은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2002년 삼성 사장단 워크숍을 주재하는 이건희 회장. 삼성 제공

이 회장은 품질경영을 통해 ‘메이드 인 코리아’를 세계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1990년대 초반 휴대전화 ‘애니콜’의 불량이 잇따르자 1995년 3월 ‘화형식’이라는 충격요법까지 동원해 불량률을 떨어뜨렸다. 1987년 10조원이 채 못 되던 삼성그룹의 매출은 2018년 기준으로 386조원을 넘기며 39배 늘었다. 시가총액은 1조원에서 396조원으로 396배 커졌다. 현재 삼성은 메모리 반도체, TV, 스마트폰 등 20여개 품목에서 글로벌 1위를 지키고 있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가운데)이 2010년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10에서 부스를 둘러보고 있다. 삼성전자 제공

이 회장은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 등으로 활동하고, 평창동계올림픽 유치에 절대적인 기여를 하는 등 국내 스포츠 발전에도 큰 족적을 남겼다. 이 회장의 별세에 문재인 대통령을 포함한 정치권과 재계 등 각계가 일제히 애도를 표하고 고인을 추모했다.

 

나기천·박세준 기자 n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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