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부르지만 허약해진 당신… “문제는 식단”

‘음식혁명’으로 풍부해졌지만 정크푸드 노출 / 칼로리 과다 섭취·단백질 등 영양소는 부족 / 당뇨·비만·심장병 같은 성인병으로 내몰려 / 식품회사 ‘더 달고 짜고 자극적’ 선택 부추겨 / 현대인 영양 섭취 강박감에 슈퍼푸드 탄생 / “너무 값 비싸고 식품사기 가깝다” 주의 당부 / 저자 “잘못된 식습관 개선, 시스템 문제 접근 / 정부 나서 식품 품질 규제 등 역할해야” 주장

비 윌슨/김하현/어크로스/1만7800원

식사에 대한 생각/비 윌슨/김하현/어크로스/1만7800원

여기 포도가 있다. 한 송이를 골라 잘 씻은 다음 한 알을 따서 입에 넣어보자. 시원하고 상큼하다. 포도알은 탄탄하고 부드럽고 달콤하다. 동서를 막론하고 포도를 먹는 것은 누구에게나 즐거움이 아닐 수 없다. 하나 예전에는 향이 풍부하지도 않고 시큼한 향이 나는 포도가 적지 않았다. 그리스인들은 포도알을 입에 넣기 전에는 포도가 잘 익었는지 시큼한지 알지 못했다.

요즘은 어떤가. 오늘날 포도는 예외 없이 달다. 공학기술의 결과물이다. 그렇지만 달콤한 과일이 꼭 영양소가 적은 것은 아니지만, 쓴맛이 제거된 과일은 대체로 식물 영양소가 적게 들어있다고 학자들은 말한다. 특히 편의를 위해 씨가 제거된 청포도에는 이런 식물 영양소가 거의 없다. 이런 과일은 열량은 제공하지만, 기대만큼 건강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월스트리트저널 칼럼니스트인 저자 비 윌슨(사진)은 ‘식사에 대한 생각’에서 세계인들의 삶은 점점 나아지고 있지만, 식단은 반대로 나빠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칼로리는 과도하게 섭취하면서도 건강에 필요한 단백질 등 영양소는 제대로 섭취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씨 없고 당분이 많은 포도는 하나의 사례다. 책은 늘 배는 부르지만 허약해지는 현대인의 식생활을 진단한다. 세계인이 마주한 식사의 현장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비판적 관점에서 분석한다.

과거와는 달리 식량 부족을 호소하는 나라는 점점 줄어든 대신 많은 나라에서 과식과 영양부족이라는 정반대의 현상이 드러나고 있다. 칼로리는 과도하게 섭취하면서도 건강에 필요한 영양소와 단백질은 제대로 섭취하지 못하고 있다. 이 모두가 달라진 식문화와 식품산업에 기인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에 따르면 세계인들은 이제 어디서든 유럽 축구를 보듯이 감자 칩을 먹고, 아침에는 오렌지 주스를 마시고 디저트로 플레인 요구르트를 먹는다. 이렇게 우리가 먹는 음식의 양과 종류에 걸친 일련의 변화는 ‘음식 혁명’이라 할 만하다. 현대인은 약 두 세대 만에 전통적인 식단에서 세계화된 식단으로 엄청난 변화를 겪고 있다. 음식 혁명 덕에 언제나 신선한 식재료를 구할 수 있게 됐으나 짭짤하고 기름진 스낵, 설탕을 입힌 시리얼, 한 번도 발효된 적이 없는 ‘빵’, 다양한 빛깔의 가당 음료에 무차별적으로 노출될 수밖에 없게 됐다. 이 과정에서 현대인은 비만, 당뇨병, 심장병 같은 성인병으로 죽어가고 있다.

그러다 보니 현대인이 먹는 음식은 담배나 술보다 더 많은 질병, 죽음을 유발한다. 2015년 흡연으로 사망한 사람은 약 700만명, 알코올 관련 원인으로 사망하는 이는 330만명이었다. 반면에 가공육과 가당 음료가 과다한 식단과 같은 ‘식이 요인’으로 사망하는 이는 1200만명에 달했다. 세계 사망 원인이 식습관으로 이는 예전과 달리 먹을 것이 넘쳐나는 현실에 우리가 생물학적으로 심리적으로 적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방증이다.

오늘날 무엇을 먹느냐는 오로지 개인의 욕망이나 요구의 문제만은 아니라고 저자는 말한다. 우리의 욕망과 요구는 우리를 둘러싼 세계에 의해 좌우되는데, 식품산업이 그 틈새를 이익추구의 기회로 삼고 있다는 것이다. 인간의 본능을 이용하여 더 많은 자극적인 음식, 즉 당분, 지방, 나트륨이 많은 음식을 찾도록 갖은 방법을 동원한다. 그 결과 우리 입에는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었을 정도로 ‘쓰레기에 가까운’ 음식을 먹고 있다는 것이다.

근래 들어 짧아진 식사시간도 현대인이 배는 부르지만 허약해지는 원인이다. 시간을 낭비하면 안 된다는 집단적인 강박의 결과로 간식 소비가 늘어나고 아침 식사가 간편식으로 대체되고 점심시간이 거의 사라졌다. 식사시간이 없는 현대인은 차라리 캡슐로 식사를 대신했으면 하는 바람도 갖는다. 이는 짧은 시간 더 많은 영양소를 섭취해야 한다는 강박을 불러 수많은 ‘슈퍼푸드’를 탄생케 했다. 퀴노아, 아보카도, 코코넛워터, 천연 요구르트, 엑스트라버진 올리브오일, 페스토, 석류 주스, 프로틴 바, 글루텐 프리 등 전문가들은 지금이라도 당장 열풍을 일으킬 거라며 불가사의한 식품 목록을 매년 끈질기게 내놓는다. 저자는 이런 ‘슈퍼푸드’들이 너무 비쌀 뿐만 아니라 식품사기에 가깝다며 주의를 당부한다.

저자는 이런 잘못된 식습관의 개선을 위해선 개인의 취향과 습관에 따른 ‘선택’의 문제가 아닌 ‘시스템’의 문제로 모든 논의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무엇을 먹을 것인가는 개인의 문제지만, 국민의 식습관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끄는 것은 정부의 역할이라는 것이다. 그런 만큼 음식을 시장 원리에만 맡겨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개인이 더 나은 식생활을 위해 노력할 필요가 없다는 뜻은 아니다. 저자는 개인의 노력에 해당하는 건강한 식사를 위한 팁 13가지도 소개한다. 주요 내용은 △새로운 음식을 오래된 접시에 담아 먹자 △물이 아닌 것을 ‘물처럼’ 마시지 말자 △간식보다는 식사에 집중하자 △입맛을 바꾸자 △균형을 바꾸자 △절대량이 아닌 비율에 따라 먹자 △단백질과 채소를 먼저 먹고 탄수화물을 나중에 먹자 △다양하게 먹자 △음식을 위한 시간을 마련하자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을 요리하는 법을 배우자 △유행에 뒤처진 입맛을 갖자 △내가 무엇을 먹고 있는지 알자 △자신의 감각을 이용하자 등이다.

박태해 선임기자 [e-m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