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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차별·격리 노골화… 감염 진원지 中의 ‘적반하장’

입력 : 2020-02-28 06:00:00 수정 : 2020-02-28 08:5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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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정부 묵인 속 ‘기피’ 심각 / 中 10곳서 韓人 300여명 격리 / 관영매체 “외교보다 방역 중요” / 일부 아파트 주민들 자체 조치 / 中 정부, 초법적 행위 ‘모르쇠’ / ‘사스퇴치 영웅’ 불리는 中전문가 / "발원지 중국 아닐 수도" 떠넘겨
25일 오후 중국 난징공항 입국장에서 한국 승객들이 줄을 서 방역 당국의 조사를 받고 있다. 입국장 외국인 안내판에 '한국인'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다. 연합뉴스

한국인에 대한 중국 내 차별과 격리가 점점 노골화하고 있다. 중국 중앙정부 묵인하에 지방 성과 시 정부별로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 강제격리, 집중 관찰, 출입금지 등 다양한 방법이 동원되고 있다.

일부 지역에선 한국인이 사는 집 문 앞에 ‘봉인딱지’가 붙어 출입을 막거나 아파트 단지 앞에 ‘한국인 출입금지’ 경고문이 등장했다. 특히 우려스러운 것은 마치 ‘한국인이 코로나19를 퍼트리는 감염원’인 것처럼 보는 시선이 번지고 있는 점이다. 초동대응 실패로 전 세계를 코로나19 감염 공포로 몰아넣은 것에 대해 한 마디 사과도 없이 일시 처지가 바뀐 한국인을 대놓고 차별하는 중국의 행태에 한국 내에서도 비판 여론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주중 한국대사관 등에 따르면 중국에서 강제격리가 시작된 지난 25일부터 27일까지 격리중이거나 경험했던 한국인은 중국 전역 10여곳에서 300명 가까이 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날 오후 시안에 도착한 인천공항발 아시아나항공기에서 발열 환자가 생겨 주변 승객 50여명이 격리됐다. 이날 오전 웨이하이공항에서 한국인 15명이 포함된 승객 150여명도 또다시 전원 격리됐다. 앞서 25일(19명)과 전날(30명) 이틀에 걸쳐 웨이하이에선 한국인 49명, 지난 25일 난징에선 한국인 65명, 산둥성 옌타이에서도 한국인 13명이 격리됐다.

베이징 한인 밀집지역에 ‘마스크 착용’ 현수막 중국 산둥성의 한 아파트 관리직원이 지난 26일 단지 입구에 ‘한국·일본에서 온 사람의 출입을 금한다’는 내용이 적힌 안내판을 세우고 있다. 트위터 캡처·연합뉴스

광둥성 선전에서도 한국인 탑승객과 승무원 37명이 지정 호텔에 격리됐다가 귀가조치됐다. 톈진시도 이날부터 한국·일본에서 온 입국자를 지정 장소에 격리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상하이시는 최근 2주 동안 대구·경북지역을 다녀온 사람에 한해 자가격리를 요구했다. 이 같은 성, 시 정부 차원 한국발 입국자에 대한 강제격리 조치와 입국통제는 한국 상황 악화에 따라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중국 중앙정부의 애매한 태도가 중국 내 한국인 기피 현상을 부추기고 있다는 점이다. 공식적으로는 “한국인의 도움에 감사한다”, “어려운 한국을 돕겠다”고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한국인 격리와 차별현상을 사실상 방조하고 있다. 그러면서 관영 매체를 통해 입국통제와 격리가 당연한 조치라는 것을 연일 강조하고 있다. 환구시보는 이날 사설에서 “한국인과 일본인 입국통제는 결코 차별이 아니고, 외교 문제가 아니라 우선 방역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또 “한국이나 일본처럼 창궐이 심각한 지역에서 오는 입국자에 대한 격리는 당연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자오리젠 외교부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입국자에 대한 조치는 중국인과 외국인의 건강과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며 “이러한 조치는 과학적이고, 전문적으로 적절히 이뤄지기 때문에 모두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지방정부 차원의 입국통제가 계속될 것이라는 점을 시사한 것이다.

중국 공안이 25일 웨이하이공항에서 인천발 제주항공 7C8501편 도착 전 격리 조치를 준비하는 모습. 연합뉴스

심지어 코로나19 발원지가 중국이 아닐 수 있다며 책임을 타국에 떠넘기는 듯한 전문가 주장도 제기됐다. 중국에서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퇴치의 영웅’으로 불리는 중난산 중국공정원 원사는 “먼저 중국만 고려하고 외국 상황을 고려하지 않았는데 현재 외국에 일련의 상황이 발생했다”며 “코로나19가 중국에서 가장 먼저 출현했지만, 꼭 중국에서 발원했다고 볼 수는 없다"고 말했다고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가 전했다.

중앙정부의 묵인하에 지방 성과 시 정부와는 또 별도로 주민들이 자체적으로 한국인을 격리하고, 출입금지하는 등 사태도 벌어지고 있다.

법률이나 규정에 근거한 것이 아니다. 아파트 주민이 자체적으로 논의해 결정하는 경우도 있다. 상하이에 있는 한 교민은 “상하이시 정책과는 별도로 아파트 주민이 투표해 한국인이 추가 복귀할 때는 기존 가족과 함께 격리하는 것으로 결정했다”고 전했다. 또 허베이성 창저우의 한 교민도 위챗 교민 방에 “일부 아파트 단지들이 최근에 이미 한국에서 귀국한 사람에 대해서도 추가 격리를 논의하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베이징 한인 밀집지역에 ‘마스크 착용’ 현수막 중국 내 한국인 최대 밀집 지역인 베이징 왕징의 한 아파트 단지 앞에 한국어로 “마스크를 착용하십시오”라고 적힌 현수막이 걸려 있다. 교민 제공

또 다른 교민은 “집에 돌아와 보니 봉인이 붙어 있는데 문을 열 수가 없다”고 토로했다. 한국 교민 사회에선 “2, 3일 만에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는데, 적반하장”이라는 불만이 쏟아지고 있다.

중국 당국이 중국 내 신천지예수교 신도들에 대해 조사에 착수했다고 SCMP가 이날 보도했다.

SCMP에 따르면 이번 조사는 1월에 열린 (신천지 이만희 교주 친형의) 장례식과 관련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으며, 코로나19가 확산하고 있을 때 한국을 방문한 신도들이 조사 대상이다.

한편, 주한 중국대사관은 대구시에 의료용 마스크 2만5000여개를 지원했다고 이날 밝혔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27일 오후 영국 방문을 마친 뒤 인천국제공항 2터미널을 통해 귀국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입국금지·제한 느는데… 외교부는 어디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국내 확산으로 한국발 출국자의 입국을 금지·제한하는 국가가 연일 늘어나는 가운데 외교부가 이 흐름을 저지하기 위해 외교적 노력을 하고 있지만 사태 진정에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일고 있다. 27일 오후 6시 기준 외교부 홈페이지에 따르면 최근 14일 이내 한국을 거친 외국인의 입국을 금지한 나라는 총 22개국이다. 격리 등 절차를 강화한 나라도 21개국으로 늘었다. 이날에서야 중국도 5개성이 공식적으로 이 집계에 포함됐다.

 

유럽 순방을 마치고 돌아온 강경화 외교부 장관도 “확진자 사례가 많이 늘고 있지만 한국의 능력을 믿는다는 게 국제사회의, 세계보건기구(WHO)의 평가”라며 “우리 국민들이 당황하는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지금 각 공관에서 적극 교섭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이와 관련해 코로나19 감염이 빠르게 확산하고 있는 이란에서 한국 교민을 철수시키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란에는 한국 교민 약 200명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강경화(오른쪽) 외교부 장관이 26일(현지시간) 영국을 방문해 맷 핸콕 보건복지부 장관과 면담 후 악수하고 있다. 강 장관은 면담에서 한국 정부의 코로나19 대응 노력을 설명하고 향후 대응에서 양국이 긴밀히 상황을 공유하고 협의해 나가자고 말했다. 외교부 제공

하지만 뒤늦은 대처와 늘어나는 확진자 수치로 인한 국제사회의 불신 확대로 당분간 입국 제한 흐름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하루에 두 차례 업데이트되는 외교부의 입국 제한 관련 홈페이지 안내도 실제 조치와 시차가 있다는 지적이다. 게다가 강 장관은 26일(현지시간) 도미닉 라브 영국 외교장관의 ‘개인 사정’으로 예정된 회담이 취소돼 맷 핸콕 보건복지부 장관을 대신 만나 코로나19 관련 논의를 했다고 외교부가 밝혔다. 영국 외교장관 회담이 불발돼 ‘홀대’ 논란도 나왔다.

 

한편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을 통해 “정부가 중국인 입국을 전면 금지하지 않는 것은 방역의 실효적 측면과 국민의 이익을 냉정하게 고려한 것”이라고 밝혔다. 청와대가 중국인 전면 입국금지 요청에 대해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강 대변인은 “이런 이유로 정부는 중국인 입국 전면금지보다는 특별입국절차를 시행하고 있다”며 “‘중국 눈치보기’라는 일각의 주장은 유감”이라고 말했다.

 

베이징=이우승 특파원, 조성민·홍주형·김달중 기자 wsle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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