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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님 경제 나아지고 있다고요?… 장사 안돼 죽을 맛” [이슈 속으로]

입력 : 2019-10-19 12:00:00 수정 : 2019-10-21 10: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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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세 단골지’ 장위·공덕시장 상인들 / 정부는 ‘경제 낙관론’/ 文 대통령 대선 후보때 찾아 ‘희망’ 공약/ “활성화 약속했지만 나아진 게 없어” 실망/ 상권 약화에 인건비와 임대료는 급증/ 재개발 포함된 장위시장 절반 문닫아 / 시장 풍경은 을씨년/ 전통시장 체감경기 5년새 3분의 1 ‘뚝’/ 매출액 ‘제자리’… 상인들 깊은 한숨만/ 음식 등 4대 업종 자영업자 폐업률 15%/ “골목상권 침해 막고 소비 증대 방안 필요”

#1. 지난 15일 찾은 서울 성북구 장위전통시장. 50년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이곳은 제법 규모가 큰 시장이다. 400여m 길이에 120여개 상점이 자리하고 있다. 하지만 이날 풍경은 을씨년스러웠다. 절반에 달하는 상점이 장위뉴타운 재개발 구역에 포함되면서 문을 닫은 탓인지 시장 골목은 어두컴컴했다. 한 상점 앞에는 ‘폐업’ 안내문이 걸렸다. 장위시장 단골 손님이라는 한 시민은 “빵도 사 먹고, 오랜 추억이 있는 곳인데 점점 오는 사람이 줄어드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2. 같은 날 오후 3시쯤 마포구 마포공덕시장. 족발골목으로 유명한 데다 인근에 지하철역과 버스정류장이 있어 접근성도 좋지만 오가는 사람이 거의 없어 적막했다. 마포공덕시장 상인회 측은 “예전에는 화장품, 옷 등을 파는 가게가 많았는데 거의 없어졌다”며 “한창 번성하던 때와 비교하면 가게가 3분의 1 정도로 줄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현재 이곳에 입점한 점포는 120개 정도다.

 

전통시장은 국민 대다수를 차지하는 서민들의 일상을 포착할 수 있는 상징적인 공간으로 여겨진다. 서민들의 삶을 지표가 아닌 민낯으로 볼 수 있는 ‘서민경제의 척도’라고 보기 때문이다. 각종 선거에 출마한 정치인들이 선거운동을 할 때 어떤 곳보다 먼저 전통시장을 방문하는 이유이다. 특히 국민의 살림살이를 펴주기 위한 ‘경제 살리기’가 최우선 공약일 수밖에 없는 대통령 선거 후보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전국을 돌며 유세할 때마다 각 지역의 대표적인 전통시장을 찾아가 상인들과 손을 맞잡고 삶의 고단함을 청취하며 희망을 전하는 행보를 빼놓지 않는다.

장위시장과 공덕시장은 문재인 대통령과 인연이 있다. 장위시장은 문 대통령이 2017년 1월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당시 찾았던 곳이고, 공덕시장은 문 대통령이 한나라당 박근혜 후보와 맞붙었던 2012년 대선 당시 공약집 중 전통시장 상인의 목소리를 듣는 코너에 등장했다. 최근 문 대통령과 정부의 경제 인식과 정책기조를 두고 찬반 논란이 적지 않은 가운데 두 시장 상인을 비롯한 자영업자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살펴봤다.

문재인 대통령이 18일 오후 청와대 녹지원에서 주한외교단 초청 리셉션에서 참석자들과 함께 손가락 하트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文 대통령, “경제 올바른 방향으로 간다”… 전통시장 반응은 ‘싸늘’

18년째 장위시장에서 가게를 운영해온 A씨는 “문 대통령이 (청와대 참모와 관료 등) 주위 사람 이야기만 듣고 하는 말”이라며 “실제 서민 체험을 해보지도 않고 나오는 이야기다. 윗사람들은 경제가 풀리고 살기 좋아졌다지만, 시장에 와서 현실을 마주하면 그렇지 않다는 걸 알게 될 것”이라고 쏘아붙였다. 문 대통령이 지난달 16일 수석·보좌관 회의 모두발언에서 “우리 경제가 어려움 속에서도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한 데 대한 의견을 물었을 때다. 문 대통령은 당시 전년 동기보다 취업자 수가 45만여명 늘어난 고용지표, 최저임금 인상과 기초연금·아동수당 확대로 2분기 가계소득이 증가한 점 등을 거론하며 정부의 경제정책 기조를 긍정평가했다.

A씨는 “장사가 잘될 때는 사람이 움직이질 못할 정도로 이동로가 붐볐는데, 이제는 저녁 장을 볼 시간(오후 5시 이후)에도 사람이 많지 않다”며 “장사가 안 되니 결국 업주들은 권리금 얹어 주고 (장사) 잘되는 다른 자리로 임차 들어가거나, 아예 다른 지역으로 떠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다른 상인들의 반응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정부와 정치권이 전통시장 활성화를 강조하지만, 매출은 떨어지고 임대료는 날이 갈수록 오른다며 문 대통령의 ‘경제 낙관론’은 다른 나라 이야기처럼 들린다는 거다. 30년째 시장 장사를 하며 세 자녀를 키웠다는 B씨도 “하루 50만원어치 팔던 몇 년 전이 꿈같다”고 말했다. 이날 오후 4시쯤까지 그의 손에 쥐여진 수입은 13만원이었다. 지난 대선 당시 문 대통령이 왔던 날을 기억한다는 상인들은 약속과 달리 별반 달라진 게 없다며 실망감을 표출했다.

마포공덕시장 상인회의 한 관계자도 “현장 상인들은 장사가 되지 않아 힘들다는데, (대통령께서) 그런 말씀을 하시면 어떡하느냐”고 푸념했다.

◆전국 전통시장 상인들의 체감경기 5년 새 3분의 1 ‘뚝’… 매출액도 매년 제자리

두 곳을 포함한 전국 1450개 전통시장에서 느끼는 경기 기상도 역시 ‘흐림’이다. 18일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에 따르면, 올해 8월 기준 전통시장 상인들의 체감경기지수(BSI)는 42.0이다. BSI가 100 이하일 경우 경기 악화를 체감한 상인들이 많다는 것이다. 전통시장 상인들의 BSI는 2014년 8월 65.5를 기록한 뒤 매년 하락했고, 지난해 8월엔 2014년 동기 대비 절반 수준인 38.5까지 내려가기도 했다.

2017년 기준 전통시장 점포당 일평균 매출액은 39만1000원으로 2014년 35만6000원에 비해 3년 동안 고작 3만5000원 늘었다. 같은 기간 점포당 일평균 고객수도 31.8명에서 34.7명으로 2.9명 느는 데 그쳤다.

상권 약화에다 원부자재와 임대료 상승, 인건비 급증 등이 겹치며 상인들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다. 소상공인공단이 지난해 전국 전통시장 내 3만여개 점포 상인을 대상으로 운영 시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을 묻는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 중 36.7%는 ‘상권 약화’를 꼽았다. 그 뒤를 △대기업 불공정 거래행위(18.5%) △운영 자금 부족(10.8%) △원부자재 가격 상승(10.1%) △시설 노후(8.3%) △종업원 채용 어려움 (7.4%) △높은 임대료 (6.5%)가 기록했다.

더욱 큰 문제는 이런 현실이 전통시장뿐 아니라 많은 자영업자가 직면하고 있다는 것이다. 국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폐업한 4대 업종 자영업자(도매·소매·음식·숙박업) 수는 38만2359명으로 폐업률이 15.4%다.

서울 노원구에서 15년간 소매상점을 운영해온 C씨는 “과거엔 하루 매출 70만∼80만원을 기록했는데 최근 눈에 띌 정도로 떨어졌다”며 “더 늦기 전에 문을 닫고 업종을 바꾸고 싶지만, 업종을 바꾸는 데도 돈이 들어 고민이다”고 호소했다.

배민근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모바일 주문 등 유통 채널의 변화로 기존 도소매업에 종사하는 분들이 어려워진 것”이라며 “전통시장보다 다소 비싸더라도 혼자만 먹고 소비할 수 있는 편의점이나 모바일 쇼핑을 하는 형태로 소비가 바뀌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정부가 대규모 토건 사업 등 국책 사업을 통해 고용 창출과 소득 증대, 소비 진작을 위한 면세 등 과감한 방안을 추진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장은 “한국은 올해 세계경제포럼(WEF) 국가경쟁력 평가에서 거시경제 안정성 1위를 차지했으며, 국민 5000만명 중 3000만명이 해외 여행을 간다. 모든 자영업자가 아니라 과당 경쟁, 매출 하락 등에 의해 피해를 보는 자영업자들이 힘든 것”이라며 “재벌 대기업의 골목 시장 침탈을 막고 과당 경쟁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글·사진=김동환·염유섭·이복진 기자 kimcharr@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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