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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쓸해서” “고배당 유혹에”… 경마장 출석하는 노인들 [밀착취재]

입력 : 2019-09-22 09:00:00 수정 : 2019-09-20 17: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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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일 오전 경기 과천시 렛츠런파크 서울에서 경마를 즐기고 있는 사람들.

“타짜가 있을 수 없는 게 경마야.”

 

지난 6일 아침 경기도 과천 경마장(렛츠고 서울)에서 만난 박모(72)씨는 이렇게 말하며 희미한 웃음을 지었다. 서울에 사는 박씨는 20년 동안 금요일과 주말에 과천 경마장을 자주 왔다고 했다. 노령연금을 받아 생활하고 있는 그는 이날도 10만원을 들고 경마장을 찾았다. 하지만 20년 동안 기억하는 행운의 순간은 7년 전 3000원으로 180만원을 벌었던 때 뿐이라고 했다. 그런데도 그 당시 희열을 잊지 못해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경마장 문턱을 넘는다는 것이다. 잠시 뒤 박씨는 응원하던 2번 말이 순위권에 들지 못하자 욕설을 내뱉으며 기자에게 “젊은 사람들은 이곳에 오면 안 돼. 여기에 집 한 채 잃은 사람 천지야”라고 경고했다.

 

경마장에서 만난 황모(64)씨도 “10명오면 1명만 따간다는 사실을 다들 알면서도 빠져나올 수 없는 게 경마”라며 “어쩌다 고배당에 걸리면 그 희망에 빠져나올 수 없다”고 했다. 황씨는 “사람들이 전문책자가 뽑아놓은 걸 보고 다 배팅하는데 꼭 이상한 말이 껴든다”며 “이거대로 사면 무조건 안 되니 내 생각을 하나씩 껴 넣는데 맞출 리가 없다”고 푸념했다. 그는 전광판에 비친 숫자들을 가리키며 “11번과 5번이 들어오면 2925배, 1000원 걸면 292만원 가져간다는 건데 저 숫자에 속아 사람들이 다 재산 날리고 하는 것”이라고 헛웃음을 지었다.

 

지난 6일 오전 지하철 4호선 과천 경마공원 역사에 마련된 가판대에 사람들이 경마전문지를 사기 위해 줄지어 기다리고 있다.

◆ 이들은 왜 경마장에 모일까?

 

지난해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가 발행한 ‘사행산업이용실태조사’에 따르면 조사에 응한 341명의 경마장 이용객 중 37.8%가 경마장을 찾은 이유에 대해 ‘돈을 따기 위한 목적’이라고 답했다. 경마장을 찾는 입장객 상당수가 ‘도박’을 위해 경마장을 찾는 셈이다. 이용객 중 26.4%는 ‘여가목적’이라고 답했고 12.6%는 ‘짜릿한 흥분과 쾌감 목적’으로 경마장을 찾는다고 했다.

 

이날 경마장을 찾은 사람의 상당수는 노년층이었다. 금요일은 과천 경마장 내 경마 경기가 열리지 않아 젊은 층은 거의 보이지 않았고 일부 노인이 적적함에 경마장을 찾았다. 경마장에서 만난 엄모(78)씨는 “나이 먹어서 시간보내기 좋으니 경마를 한다”며 “주말에 집에서 아무것도 할 게 없으니 찾아온 사람이 많다”고 했다. 이모(74)씨도 “나이 먹은 사람들이 할 일없으니 다 여기 와서 만난다”면서 “집에서 혼자 TV만 볼 수 없으니 바깥바람을 쐬러 나온다”고 쓸쓸해했다.

 

◆ 빈곤 부추기는 노인 도박…예방장치도 마땅치 않아

 

경제력이 취약한 노인들이 도박에 돈을 탕진한다면 빈곤을 더욱 부추길 수 있다. 사행산업통합감독위가 지난해 도박을 즐기는 60대 이상 1184명에게 자금의 출처를 묻자 14.8%가 ‘용돈’을 사용한다고 했고, 10.8%는 연금 등 ‘사회보장금’을 사용한다고 답했다. 경마장 곳곳에는 1회 10만원을 초과하는 무리한 베팅을 경고하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지만 이를 강제할 수단은 없어 도박의 위험은 가중됐다. 마권을 구매하는 기기를 옮겨 다니며 베팅한다면 사실상 베팅한도란 게 의미 없는 셈이다. 

 

경마장 곳곳에는 ‘도박중독은 과도한 베팅(10만원 초과)에서 출발한다’는 도박 경고 안내문이 붙어있다.

도박중독을 예방할 장치도 마땅치 않았다. 과천 경마장에는 도박치유센터 역할을 하는 ‘유캔센터’가 마련돼 있었지만 이곳을 찾는 사람은 드문 실정이다. 한국마사회에 따르면 전국 16곳의 유캔센터에서 전문상담 및 기초상담을 받은 건수는 지난해 1274건, 올해 8월까지 1303건에 불과했다. 한 마사회 관계자는 “하루에 한명정도 유캔센터를 방문하는 것 같다”며 “방문자들도 경마보다 알코올 중독, 불법도박 등의 상담을 하려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한국마사회 관계자는 “유캔센터는 센터별 역할체계를 정립해 교육, 캠페인 등 중독예방활동을 강화해 추진하고 있으며 중독예방 지침서 발간, 고객 대상별 중독예방 팸플릿 배포 등 예방 홍보활동을 하고 있다”며 “향후 한국도박관리센터 등 관련 전문기관과 협업을 통해 지속적으로 예방활동 및 인프라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글·사진= 안승진 기자 prod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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