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온 오를수록 폭력범죄 늘어
수면 방해로 우울증도 높아져
재난 인식하고 적극 대응해야
더위가 한풀 꺾인다는 절기 처서(處暑)가 지났지만 여전히 폭염과 열대야가 이어지고 있다. 이는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 곳곳에서 나타나는 현상으로 기록적인 최고 기온이 잇따라 경신되고 있다. 이제 폭염은 단순히 여름철의 불편함을 넘어 인간의 생명과 정신을 위협하는 재난으로 자리 잡았다. 열사병, 탈수, 심혈관 질환 같은 신체적 피해는 물론이고 뇌와 마음에도 깊은 상처를 남긴다.
폭염은 신체 리듬을 무너뜨린다. 체온 조절이 어려워지면 뇌는 과부하 상태에 빠지고, 이로 인해 집중력과 기억력이 저하된다. 동시에 감정 조절 능력도 흔들리면서 분노나 충동성이 쉽게 표출된다. 실제로 여러 연구에서 폭염 기간에 폭력 범죄와 가정 폭력이 증가한다는 결과가 보고된다. 인도나 동남아시아에서는 이 현상을 ‘망고 광기(Mango Madness)’라고 부르며, 망고가 익을 만큼 더운 시기에 폭력과 갈등이 급증하는 사회적 현상을 지칭하기도 한다.

국제 연구도 같은 결과를 보여준다. 2024년 발표된 전 세계 1만6000편의 연구를 종합한 메타 분석에 따르면, 기온이 10도 상승할 때 폭력 위험이 약 9% 증가한다. 국내 역시 예외가 아니다. 허설기(2024)의 연구는 2016년부터 2020년까지의 여름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기온이 오를수록 폭력 범죄 발생 건수가 유의미하게 증가함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현상을 설명하는 두 가지 이론이 있는데 ‘온도-공격성 이론(temperature-aggression theory)’에 따르면, 더운 날씨가 불쾌감, 좌절감, 충동성, 공격성을 증가시키고 이 모든 것이 폭력 발생 가능성을 높인다는 것이다. 또 다른 이론인 ‘일상 활동 이론(routine activity theory)’은 더운 날씨가 사람들의 일상생활 패턴을 바꾸기 때문에 폭력이 증가한다고 설명한다.
정신건강 측면에서 폭염이 가장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경로는 ‘수면’이다. 잠은 뇌가 회복하는 시간인데 열대야 속에서는 깊은 수면에 들기 어렵다. 자꾸 깨고 수면의 질이 떨어지면서 우울, 불안, 주의력 저하가 나타난다. 장기간 누적되면 자살 위험도 높아진다는 연구가 있다. 단순히 하루 이틀 못 자는 문제가 아니라 지속적인 불면이 정신을 잠식하는 것이다.
더위는 단순히 짜증만 유발하지 않는다. 장기적으로는 우울증 위험을 높인다. 무더위가 지속되면 사람들은 외출을 피하고 집 안에 머물며 사회적 고립을 겪는다. 친구를 만나지 않고 운동도 줄어드는 생활 패턴은 우울증의 중요한 위험 요인이다. 여기에 냉방비 부담 같은 경제적 압박까지 더해지면 불안과 우울은 더욱 악화된다.
뇌 차원에서도 변화가 나타난다. 고온은 뇌 염증 반응을 높이고 신경전달물질의 균형을 깨뜨린다. 더위를 스트레스로 인식한 뇌는 분노를 억제하는 전두엽의 기능을 약화시키고, 그 결과 충동적 행동이 증가한다. 이렇게 폭염은 신체, 사회, 뇌의 화학반응이 얽히며 불안과 우울을 심화시킨다.
그렇다고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개인 차원에서는 충분한 수분 섭취와 시원한 환경 유지가 기본이다. 낮에는 외출을 줄이고 저녁에는 가벼운 산책으로 사회적 고립을 예방하는 것이 좋다. 특히 수면 환경 관리가 핵심이다. 선풍기와 냉방기를 적절히 활용하고 일정한 수면 루틴을 지키는 노력이 필요하다. 사회적으로는 폭염 취약계층을 위한 냉방비 지원과 무더위 쉼터 운영이 요구된다. 기업과 기관은 폭염 시 근무시간 조정이나 재택근무 확대 같은 유연성을 발휘할 수 있다. 국가적 차원에서는 폭염을 단순한 ‘날씨’가 아니라 ‘재난’으로 인식하고 기후 적응 전략 속에 정신건강 지원을 포함해야 한다.
결국 폭염은 더 이상 개인이 참아내야 할 불편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대응해야 할 건강 위협이다. 우리의 마음은 기후와 맞닿아 있다. 폭염은 뇌와 감정을 뜨겁게 달궈 균형을 흔들고 짜증에서 시작된 불편이 우울, 불안, 심지어 극단적 선택으로 이어질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폭염을 단순한 날씨 현상이 아닌 정신건강의 중요한 위험 요인으로 바라봐야 한다.
권준수 한양대 의대 정신건강의학교실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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