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이하 케데헌)의 돌풍이 거세다. 영화 인기에 힘입어 오리지널사운드트랙 ‘골든’ 등 ‘케데헌’ 수록곡들도 전 세계에서 사랑받고 있다. 영국 오피셜 싱글 차트 1위와 미국 빌보드 싱글 차트 ‘핫100’ 진입에 이어 아카데미 시상식 주제가상 부문까지 노릴 기세다. 제작은 소니, 배급은 넷플릭스지만 그 콘텐츠의 뿌리는 한국에 있다. 한국적인 세계관과 음악이 글로벌 제작·배급 시스템과 결합해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다. 흥미롭게도 이런 구조는 술의 세계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바로 와인 소믈리에 제도다. 소믈리에는 프랑스에서 시작됐지만, 오늘날과 같은 제도를 만든 것은 영국이었다.
소믈리에는 단순히 와인을 따르는 사람이 아니다. 와인의 품질을 감별하고 산지와 빈티지에 따른 특성을 분석하며 음식과 어울리는 와인을 추천하는 전문가다. 손님의 취향과 자리 분위기를 고려해 맞춤형 제안을 하고, 와인에 얽힌 역사와 이야기를 전하는 역할까지 맡는다.

와인을 구분하려는 시도는 고대에도 있었다. 그러나 직업으로서 소믈리에는 중세 프랑스 궁정에서 탄생했다. 원래 ‘짐수레를 관리하는 사람’을 뜻하던 단어가 귀족의 물자, 특히 식음료를 관리하는 인물을 지칭하게 됐다. 나아가 왕실 연회에서 와인을 시음·품질 보증하는 역할로 의미가 확장됐다.
전환점은 프랑스 혁명이었다. 귀족 전용 식자재와 와인이 시중에 풀리며 고급 레스토랑이 급증했고, 손님에게 와인을 추천할 전문가 수요가 폭발했다. 1829년 파리 레스토랑에서 ‘소믈리에’ 직함이 공식적으로 기록됐다.
하지만 제도화를 완성한 건 영국이었다. 12세기부터 보르도 와인을 대량 수입하며 ‘클라레(Claret)’라 부른 영국은 런던에 와인 길드와 전용 창고를 세웠고, 네고시앙이라는 와인 유통 문화도 키웠다. 무엇보다 1953년 런던에서 세계 최초의 ‘마스터 오브 와인(MW)’ 시험이, 1969년에는 ‘마스터 소믈리에(MS)’ 시험이 시작됐다. 1977년 마스터 소믈리에 협회(CMS)가 설립되면서 국제 표준이 확립됐다. 즉, 소믈리에의 국제적 제도화는 영국이 만든 것이었다.

미국은 여기에 과학적 접근을 더했다. UC 데이비스 대학을 중심으로 블라인드 테이스팅, 점수화, ‘와인 아로마 휠’ 같은 체계적 분석 도구가 개발됐다. 로버트 파커가 도입한 100점 만점 체계와 감각적인 테이스팅 노트는 세계 와인 시장에 절대적 영향을 미쳤다.
결국 프랑스의 전통과 영국의 제도, 미국의 과학이 결합해 오늘날의 글로벌 소믈리에 시스템이 완성됐다. 이는 한국적 콘텐츠라는 원천에 글로벌 제작·배급이 결합해 세계적 상품으로 완성된 ‘케데헌’과 닮았다.
우리 문화와 산업도 국내 전통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제도화와 국제 시스템의 결합이 필수다. 특히 지역 농산물과 전통주 이미지를 강화한다면, 또 다른 ‘케데헌’ 같은 세계적 성공 사례가 나올 수 있다. 프랑스가 만들고, 영국이 제도화한 와인 소믈리에, 앞으로 우리 전통주가 가야 할 중요한 성공 전략 중 하나가 될 것이다.
● 명욱 주류문화 칼럼니스트는…
주류 인문학 및 트렌드 연구가. 숙명여대 미식문화 최고위과정 주임교수를 거쳐 현재는 세종사이버대학교 바리스타&소믈리에학과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넷플릭스 백스피릿의 통합자문역할도 맡았으며, 저서로는 ‘젊은 베르테르의 술품’과 ‘말술남녀’가 있다. 최근에는 술을 통해 역사와 트렌드를 바라보는 ‘술기로운 세계사’를 출간했다
명욱 주류문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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