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차대전 초반, 독일이 프랑스를 단 6주 만에 무너뜨리며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렸다. 당시 독일의 전쟁 수행 방식을 ‘전격전’이라 불렀다. 전차와 항공기를 결합해 기동, 집중, 기습 효과를 극대화하며 번개처럼 적진을 돌파하고 상대를 혼란에 빠뜨리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전격전은 결코 완성된 교리나 체계적인 전쟁 수행 방식이 아니었다. 역사적으로 전격전은 기습으로 상대를 마비시키고, 단기간에 압승을 거둔 작전을 가리키는 말에 가깝다. 이는 새로운 교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상대의 대응 실패가 만든 결과였으며, 그 성공이 곧 신화로 남았다.
대표적인 사례는 1940년 프랑스를 굴복시킨 독일군의 ‘낫질작전’, 1941년 말 싱가포르를 함락한 일본군의 침공, 1950년 겨울 유엔군을 38선 이남으로 밀어낸 중공군의 2차 공세다. 세 작전에는 공통점이 있다. 첫째, 모두 기존의 상식을 깨는 기습으로 상대의 심리와 지휘 체계를 마비시켰다. 독일군은 전차가 통과할 수 없다고 여겨졌던 아르덴 숲을 돌파해 뫼즈강을 건넌 뒤 벨기에 방면의 영국·프랑스 연합군 주력을 포위·섬멸했다. 일본군은 싱가포르를 정면 공격이 아닌 수백 ㎞ 북쪽에 상륙해 정글을 자전거로 돌파하며 영국군 예상보다 빠르게 남하했다. 중공군은 대규모 병력을 산악 지형을 통해 투입해 국군을 붕괴시키고 미 8군의 측후방을 차단했다.

둘째, 이 작전들은 신화화됐다. 독일군은 병력 3분의 2 이상이 마차를 끌던 구식 편제였음에도 전군이 기계화된 듯한 이미지로 포장했다. 프랑스는 자국 패배를 독일군의 혁신적 교리와 무기로 설명하며 책임을 외부로 돌렸다. 일본군의 작전은 실제로는 조악했지만, 영국군은 아시아인을 깔보던 인종주의의 반작용으로 그들을 과도하게 신화화했다. 중공군 역시 전투력 면에서 미군에 크게 뒤처졌지만, 미군은 자신들의 패배를 중공군의 인해전술로 돌렸다.
이러한 사례는 중요한 교훈을 남긴다. 전쟁의 결과는 단순히 무기나 교리의 우열로 결정되지 않고, 전장의 마찰과 우연 속에서 정신을 가다듬고 주도권을 잡은 쪽이 승기를 쥔다는 것이다. 전쟁은 결국 기계가 아닌 인간이 벌이는 일이다. 병사의 전투의지, 지휘관의 판단, 부대의 단결력과 훈련 수준이 승패를 좌우한다. 사례 속 독일군, 일본군, 중공군은 기습 이후 상대의 공황을 확대시키며 주도권을 잃지 않았다. 반면 프랑스군, 영국군, 유엔군은 심리적·지휘적 마비에 빠져 전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다. 전격전은 단순히 빠른 기동전이 아니다. 전쟁의 신화는 종종 무기와 전술의 승리로 설명되지만, 전쟁의 진실은 언제나 사람에게 있음을 전쟁사는 말해준다.
심호섭 육군사관학교 교수·군사사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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