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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수차례 신고에도 ‘격리조치’ 손 못 써… 80%는 한 달 내 재범 [심층기획-반복되는 교제폭력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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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07-30 17:33:41 수정 : 2025-07-30 22:40:22
안승진 기자, 대전=강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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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폭력과 달리 관련 법 부재
피해자 처벌 불원 땐 사건 종결
2024년 8만여 건 신고… 5년 새 두 배

연인 목 조르고 재떨이로 얼굴 때려도
분리 등 긴급조치 근거 없어 보호 한계
최근엔 흉기 살인 등 강력범죄로 확산
고령층도 폭행 잦아 사회적 문제 대두

범행 횟수가 늘수록 재범행 시간 줄어
학술지 연구 “초기 수사기관 개입 중요”
여성단체선 ‘제대로 된 실태조사’ 촉구
경찰청 “관련 법 제정 적극 노력할 것”

대전에서 옛 여자친구를 살해하고 달아난 20대 남성이 30일 도주 24시간 만에 경찰에 붙잡혔다. 지난해부터 112 신고가 이뤄지는 등 남성의 범죄가 끔찍한 결과로 이어질 징후는 여러 차례 나타났다. 그러나 30대 여성은 제대로 된 보호조치를 받지 못한 채 희생되고 말았다.

30일 대전 중구 한 지하차도 근처에서 전 연인을 살해한 혐의를 받는 A(20대)씨가 도주 약 24시간 만에 긴급체포 됐다. 사진은 A씨가 도주에 이용한 렌터카 주변으로 폴리스라인이 처져 있는 모습. 연합뉴스

최근 교제폭력이 급증하는 가운데 경찰이 강제적으로 가해자에게 접근금지 등 보호조치를 내릴 수 있는 법적 근거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스토킹 범죄로 이어진다면 긴급 예방조치를 취할 수 있으나 교제관계에서 공권력이 개입할 여지가 극히 제한적인 탓이다.

 

대전서부경찰서는 이날 오전 11시45분 살인 혐의를 받는 20대 남성 A씨를 대전 중구 산성동 한 지하차도에서 긴급체포했다. 차를 타고 달아나던 A씨는 체포되기 직전 차 안에서 극약을 먹었으나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전날 낮 12시8분 대전 서구 괴정동 한 빌라 앞에서 옛 여자친구인 30대 B씨와 말다툼하던 중 흉기를 휘둘러 B씨를 숨지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피해 여성은 심정지 상태로 소방구급대에 의해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끝내 숨졌다.

 

A씨는 범행 전 흉기를 미리 소지하고 자동차와 오토바이 등 이동수단을 바꿔가며 도주를 시도했다는 점에서 계획범죄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범행 직후에는 인근에 주차한 공유자동차로 도주했는데, 범행 전날 A씨가 빌린 것으로 확인됐다. 그렇게 도주한 A씨는 범행 당일 마련된 B씨의 빈소를 찾아가기도 했는데, 조문객의 신고로 꼬리를 밟히게 됐다.

B씨는 지난해 11월부터 지난 6월까지 A씨를 주거지 무단침입이나 재물손괴 등 교제폭력으로 4차례 112 신고를 한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6월에는 B씨와 함께 찾은 한 식당에서 다른 사람과 시비가 붙었다가 자리를 뜨려 하는 B씨 팔을 잡아당기는 등 폭력을 행사했다. A씨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관까지 폭행해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경찰은 당시 B씨에게 피해자보호용 스마트워치 착용을 권유했으나 B씨가 거절했으며 A씨 처벌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전했다. 경찰 관계자는 “안전조치를 위해 당시 전화 모니터링을 3차례 했으나 연결이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B씨가 법적 보호조치를 받았더라면 끔찍한 결과만은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최근 가정폭력이나 스토킹 등 관계성 범죄가 급증하면서 경찰이 긴급 임시조치를 내릴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돼 있다. 하지만 교제폭력만큼은 경찰이 두 사람을 격리할 마땅한 근거가 없다. 교제폭력은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는 경우도 많아 경찰이 강제적으로 보호조치를 내리기도 어렵다. 스토킹 범죄의 경우에는 공권력이 개입해 피해자를 가해자로부터 분리하고 추가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 직권이나 피해자 요청으로 100m 접근금지, 전기통신 접근금지 등을 명령할 수 있다.

 

충북에 거주하는 한 20대 여성은 지난해 8월부터 3년 넘게 교제 중인 30대 남자친구에게 얼굴을 폭행당하는 등 지속적인 폭력에 시달렸다. 경찰까지 출동했지만 연인을 처벌할 수 없다는 죄책감에 처벌을 원하지 않았고 번번이 현장에서 사건이 종결됐다. 하지만 남자친구의 폭행은 계속됐다.

 

여성이 결국 이별을 통보하자 남성은 지난달 9일 “너 죽이고 감옥 가겠다”, “칼로 그어버리겠다”고 협박하기에 이르렀다. 여성이 곧바로 집밖에 뛰쳐나와 경찰차를 발견했고 신고가 이뤄졌다. 경찰 관계자는 “교제폭력이 반복되는 경우가 많지만 연인관계에 있어서는 가해자의 접근을 막거나 상호 강제 분리하는 법적 근거가 없다”고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경기도민인 한 40대 여성도 지난 5월부터 한 달간 30대 남자친구로부터 5차례 폭행을 당했다. 경찰 신고도 4차례 이뤄졌으나 여성이 남자친구의 처벌을 원치 않으면서 사건은 계속 종결됐다. 5월3일엔 남자친구가 집안 내 도시가스를 자르고 여성의 목을 조르는 등 위험천만한 상황이 벌어졌다. 지난달에도 말다툼과 폭행 등이 잇따라 경찰이 여러 차례 출동했다. 특히 13일에는 남자친구가 여성의 외도를 의심해 재떨이로 얼굴을 가격했고,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경찰은 남성의 위험성이 높다고 판단했으나 긴급 임시조치 등 제재조치를 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었다.

◆늘어나는 교제폭력… 분리조치는 ‘미흡’

 

경찰청에 따르면 최근 5년 교제폭력 관련 112 신고 수는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2020년 4만9225건이던 교제폭력 신고는 2022년 7만790건, 지난해 8만8394건으로 급증했다. 올해도 5월까지 3만8777건이 접수됐다. 교제폭력으로 검거된 인원도 2020년 1만1891명에서 지난해 1만4900명으로 늘었다. 올해는 5월까지 5610명이 검거됐다.

 

대전 사례처럼 교제폭력이 살인사건으로 번진 사례도 적지 않다. 지난해 9월3일 부산 연제구 한 오피스텔에서는 30대 남성이 이별을 통보한 20대 여자친구를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사건 발생 이전까지 교제폭력으로 세 차례나 경찰신고가 이뤄졌지만 격리조치가 이뤄지지 않았고, 결국 살인으로 이어진 것으로 파악됐다.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거나 ‘피해가 없다’는 식으로 말해 제대로 된 예방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던 것으로 조사됐다.

교제폭력은 20~30대만의 문제는 아니다. 최근 60대 이상 고령층 문제로도 불거지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교제폭력 피의자 1만4900명 중 20~30대는 61.6%(9183명)를 차지했다. 이 중 60대 이상 피의자는 774명(5.2%)으로 2022년 500명(3.9%), 2023년 649명(4.7%)에 비해 증가하는 추세다.

 

지난 5월 경기도 한 빌라에서 60대 남성이 60대 여성을 상습 폭행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들은 옆집에 살며 서로 식사를 챙겨주는 사이로 발전했으나, 2022년부터 남성의 5차례 폭행으로 경찰에 신고가 접수되는 등 상습폭력이 이뤄졌던 것으로 파악됐다. 그럼에도 60대 여성이 처벌을 원치 않자 경찰은 가정폭력처벌법상 사실혼 조항을 적용해 격리조치를 하려 했다. 그러나 “사실혼으로 볼 수 없다”는 이유로 검찰 단계에서 기각됐다.

경찰청. 뉴시스

◆초기 대응 중요한데 입법 공백에 난항

 

경찰청은 교제폭력이 살인 등 강력범죄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적극적인 피해자 보호조치에 나설 수 있는 법적 근거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피해자가 원하지 않아도 피해자 보호와 가해자 재범을 방지할 수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관계성 범죄가 잇따르자 유재성 경찰청장 직무대행은 21일 기자들과 만나 “입법적으로 공백이 있는 교제폭력 관련 법 제정에 적극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올해 형사정책연구에 게재된 ‘친밀한 파트너 폭력의 반복발생 패턴:반복사건 생존분석’ 연구에 따르면 교제폭력 반복사건의 80%는 최초 범행으로부터 한 달 이내에 발생한 것으로 조사됐다. 범행 차수가 증가할수록 재범까지 시간이 급격히 줄어들었다. 연구는 “2차 범행 이후부터 계획적 범행의 비율이 높아지고 시간 간격 또한 짧아지기 때문에 (수사기관의) 초기 개입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현재 경찰은 스토킹처벌법이나 가정폭력처벌법상 사실혼 조항을 적용해 피해자에 대한 임시보호조치를 하고 있지만 스토킹으로 보기에는 사실관계가 맞지 않거나 사실혼으로 보면 피해자 쪽이 반발하는 등 어려움이 있는 상황이다.

 

국회에서는 교제폭력 관련 법안이 9개 발의돼 있다. 교제폭력처벌법을 신설해 보호조치와 긴급응급조치 불이행죄 등을 정의하는 안과 가정폭력처벌법이나 스토킹처벌법을 개정해 교제폭력을 포함하는 안이 논의되고 있다. 다만 법 적용 대상인 교제관계나 친밀한 관계를 정의하기 위한 개념이 다소 추상적이라는 지적에 논의가 난항을 겪고 있다.

 

여성단체는 교제폭력에 대한 제대로 된 정부 실태조사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송란희 한국여성의전화 대표는 “기본적인 실태를 알고 대책 마련을 시작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데 교제폭력은 공식 통계도 없기 때문에 저희가 직접 신문에 나는 사건들을 세고 있다”며 “교제폭력이 현재 얼마나 심각한지 알아야 예산과 인력을 투입하고 대책 수립까지 이어질 것”이라고 꼬집었다.


안승진 기자, 대전=강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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