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부부가 각자 다른 방에서 잠을 자는 ‘각방 수면’ 사례가 점차 늘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생활 방식이 오히려 부부 관계를 더욱 돈독하게 만든다는 경험담이 잇따르고 있다는 것이다.

16일 미국수면의학아카데미(AASM)가 최근 발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미국 성인의 35%는 파트너와 정기적으로 또는 자주 각방에서 잠을 자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세 쌍 중 한 쌍은 더 나은 수면을 위해 각자의 공간을 택하고 있는 셈이다.
한 부부는 “연애 시절에는 함께 자는 데 문제가 없었지만 갱년기 증상 탓에 밤마다 더위를 느껴 이불을 걷어차면서 서로 불편해졌다”며 “지금은 상황에 따라 함께 자기도 하고, 각방을 쓰기도 한다”고 밝혔다.
◆함께 자는 게 무조건 좋을까? 과학적 근거 ‘NO’
전문가들은 각방 수면이 부부 관계에 문제가 있다는 신호로 해석될 필요는 없다고 강조한다.
한 수면 전문가는 “과거에도 부부가 각자 방을 쓰는 경우는 흔했다”며 “언젠가부터 ‘같은 침대에서 자야 애정이 있다’는 고정관념이 생겨났고, 각방을 선택한 부부가 괜한 오해를 사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서로 충분히 소통하고 합의한 결과라면 각방 수면은 전혀 문제 될 것이 없다”고 덧붙였다.
수면 질 저하가 부부 갈등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점도 지적된다.
또 다른 전문가는 “심한 코골이, 이갈이, 수면 중 뒤척임 같은 문제는 오히려 부부 관계를 악화시킬 수 있다”며 “각방 수면은 상대를 배려하는 적극적인 선택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충분한 수면은 감정 조절 능력과 공감 능력을 높이는 데 필수적인 요소”라고 덧붙였다.
실제 과학적 연구도 이 같은 경향을 뒷받침한다.
호주 모나시대학교 수면·인지 연구자인 앨릭스 멜러 박사는 최근 비영리 학술매체 ‘더 컨버세이션(The Conversation)’에 기고한 글에서, 뇌파검사(EEG) 등 객관적인 수면 측정 결과를 통해 “함께 자는 것이 수면의 질을 떨어뜨릴 수 있다”고 밝혔다.
잠버릇이나 생체리듬이 다른 파트너와 같은 침대를 쓸 경우 깊은 수면 단계로 진입하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같은 침대를 쓰는 것이 심리적 안정감을 높이고 친밀감을 유지하는데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도 무시할 수는 없다.
핵심은 ‘함께 자는가 아닌가’가 아닌 ‘어떤 방식이 서로에게 더 건강하고 안정적인가’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 “숙면, 건강한 삶의 핵심…성숙한 관계 위한 ‘배려의 방식’”
전문가들은 “숙면은 건강한 삶의 핵심”이라며 “각자의 수면 습관을 존중해 선택한 각방 수면은 결코 애정이 식은 결과가 아니다. 오히려 성숙한 관계를 위한 ‘배려의 방식’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전문가는 “이제는 ‘같은 침대=사랑’이라는 고정관념을 넘어 개인의 수면 질과 공간의 중요성도 건강한 부부관계의 핵심 요소로 인정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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