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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덕의우리건축톺아보기] 고래등 같은 기와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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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06-30 22:48:10 수정 : 2025-07-01 07:5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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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S 규정’ 공장기와 등장 후
복구된 건축 문화유산 점령
작은 부분이 전체 완결하듯
전통기와의 미학 중시해야

‘고래등 같은 집’ 혹은 ‘고래등 같은 기와집’이라는 말이 있다. 기와집의 지붕이 고래등처럼 검고 웅장한 데서 나온 말이다. 염상섭은 소설 ‘삼대’에서 “좁아터진 점방에 와서 귀 떨어진 소반에 설렁탕 뚝배기를 놓고 먹던 그 덕기가 저런 고래등 같은 집의 주인이라는 것은 정말 같지 않다”라고 묘사했다.

한옥의 지붕은 그 마감 재료에 따라 기와를 얹은 기와집, 짚으로 엮은 이엉을 얹은 초가집, 얇고 넓은 돌조각이나 나뭇조각을 기와처럼 사용한 너와집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이 중 기와집은 초가집이나 너와집보다 고급이다. 기와가 비싸기도 하고 기와지붕의 무게를 감당할 수 있는 굵고 튼튼한 기둥과 도리 등 건축 부재가 뒷받침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초가집은 농경사회였던 예전에 짚은 구하기 쉬운 재료였고 이엉은 기와에 비해 가벼워 상대적으로 가는 부재로 초가지붕의 무게를 지탱할 수 있었기에 돈이 덜 들었다.

최종덕 전 국립문화재연구소장

이렇듯 기와집은 예전에는 궁궐이나 관아, 절집, 혹은 부잣집에서나 볼 수 있는 고급 건축물의 대명사였고 지금은 한옥이라면 으레 기와집을 떠올릴 만큼 한옥의 표준이 되었다. 이처럼 한옥에서 기와가 차지하는 비중이 가히 절대적인데 요즘 우리가 한옥에서 보는 기와가 본래의 기와가 아니라면 어떻게 될까? 행여 한옥의 정체성에 상처가 되지는 않을까?

1980년대 초 당시 문화재관리국(현 국가유산청)은 ‘점토기와’란 이름으로 전통기와를 규정하고 점토기와에 한국공업규격(KS)을 적용해 KS 점토기와만 사용하도록 했다. 기와에 대한 KS 규정은 강도와 흡수율이었다. 그러나 KS에서 규정한 강도는 지나치게 높고 흡수율은 지나치게 낮아 전통기와의 물성과는 거리가 있었다. 정작 중요한 기와의 모양, 문양과 질감, 색감, 무게, 그리고 이를 탄생시키는 제작 방법에 대해서는 아무런 규정이 없었다. 이에 따라 전통기와의 제작 방법과는 동떨어진 KS 규정에 맞춘 공장에서 만들어진 ‘공장기와’가 등장해 전국의 기와집을 점령해 버렸다. 전통기와는 KS 규정에 맞지 않으니 ‘불량품’ 취급을 받고 쫓겨났다.

그러나 KS란 훈장을 단 공장기와는 몇 가지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무엇보다 먼저 모양, 문양과 질감, 색감이 전통기와와는 전혀 딴판이다. 같은 것이라고는 오직 한 가지, 재료가 흙이라는 것뿐이다.

전통기와는 ‘와통’이라 불리는 둥근 통의 바깥에 미리 준비한 흙 판을 붙여 기와 모양을 잡는데 와통은 아래보다는 윗지름이 조금 크다. 와통의 바깥에 붙인 흙이 어느 정도 마르면 와통을 위로 들어 올려 빼내기 쉽게 하기 위해서다. 암키와의 경우 와통 하나에서 넉 장의 기와를 만든다. 그러므로 기와는 직사각형이 아니라 사다리꼴이다. 와통에 흙 판을 붙이기 전, 먼저 와통을 천으로 감싸고 그 위에 흙 판을 붙인 후에는 빗살 문양을 새긴 판자로 두드려 와통에 흙 판을 밀착시킨다. 이때 기와의 볼록한 면에 판자에 새긴 문양이 생긴다. 이를 ‘등문양’이라 한다. 기와의 오목한 면에는 천의 질감이 오롯이 남는다. 또한 사다리꼴인 기와에서 폭이 좁은 쪽을 두드려 얇게 만드는데 이는 기와를 일 때 아래위가 잘 겹치도록 하기 위함이다. 이에 비해 공장기와는 기와의 단면 모양을 한 홈으로 반죽한 흙을 고압으로 밀어내 기와의 길이만큼 자르면 모양이 완성된다. 떡 방앗간에서 가래떡을 만드는 것과 같은 방식이다. 그러므로 공장기와는 직사각형이고 표면이 매끈하다.

전통기와는 기와의 모양이 완성되면 그늘에서 말린 후 기왓가마에 넣고 기와를 굽는다. 기와 굽기는 가마가 달구어지는 정도에 따라, ‘피움불’, ‘초불’, ‘중불’, ‘상불’, ‘센불’, ‘막음불’이라 불리는 여러 단계를 거치게 된다. 이렇게 탄생한 기와는 한 가마에서 나온 것이라도 각각 채도와 명도가 조금씩 달라 기와를 이면 채도와 명도가 제각각인 기와를 무작위로 섞어 놓은 듯한 모습이 된다. 그러나 가스 가마에서 구워 내는 공장기와는 먹물을 진하게만 입힌 듯 똑같이 시커멓기만 해 꼭 공장에서 찍어낸 플라스틱 같다.

가장 결정적으로 공장기와의 치명적인 문제는 전통기와보다 무겁다는 것이다. 전통기와는 흙을 반죽할 때 발로 밟고 손으로 두드린다. 흙 판을 만든 다음에는 이를 와통에 붙이고 손으로 두드린다. 이에 비해 공장기와는 기계로 흙을 곱게 분쇄해 반죽한 다음 고압으로 밀어내는 과정을 거치기 만들기 때문에 흙이 압축되어 밀도가 매우 높다. 이러한 제조 방법의 차이로 인해 공장기와는 전통기와보다 1.5배 이상 무겁다. 기와가 무거우면 집이 빨리 상하기 마련이다.

지금 전국에 있는 대부분의 건축 문화유산을 덮고 있는 기와는 여전히 공장기와다. 숭례문 복구 전까지 공장에서 만든 KS 기와만 사용했기 때문이다. 전통기와는 숭례문 복구 때 제와장이 만든 것이 사용된 후 조금씩 사용의 폭을 넓혀가고 있다. 화재 후 복구된 숭례문을 비롯해 최근 수리가 끝난 종묘 정전 등 몇몇 건축 문화유산에서 전통기와를 인 ‘제대로 된’ 기와집을 볼 수 있다. 그동안 우리는 전통기와가 가지는 기와의 모양, 문양과 질감, 색감, 무게를 무시해 왔다. 그러나 20세기 초 미국에서 활동했던 독일 출신 건축가 루트비히 미스 반데어로에가 언급해 유명해진 ‘작은 부분이 전체를 완결한다(God is in the details)’라는 말을 떠올리면 전통기와의 미학을 결코 가벼이 볼 수 없다. 명품은 작은 구석까지 마주하는 이에게 감동을 안기는 법이다. 하물며 고래등 같은 기와집에서 기와야 이를 말인가!

 

최종덕 전 국립문화재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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