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 영구 정지 원전 214기 중
25기만 해체… 갈수록 ‘황금알시장’
이미 96개 핵심적인 기술도 갖춰
고리 1호기 해체 경험이 정점될듯
정부 기술고도화·전문가 양성 한몫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가 26일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이 제출한 고리1호기 해체 계획서를 심의·의결하고 원전해체의 최종 승인 결정을 내렸다. 국내 최초 상업용 원자력발전소인 고리1호기가 40년 운영을 마치고 해체 절차에 본격 착수하면서 국내 원전 역사상 ‘원전해체’라는 새 장이 열리게 됐다.
한수원은 이번 승인을 계기로 향후 12년에 걸쳐 고리1호기를 단계적으로 해체하고, 원전 부지를 복원할 계획이다. 2031년까지 사용후핵연료 반출을 완료한 뒤, 2035년 부지 복원에 착수하고 2037년 최종 해체 종료가 목표다.

고리1호기 해체는 단순한 원전 설비 철거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전 세계에 영구 정지된 원전은 214기에 달하고, 이 가운데 25기만 해체가 완료됐다. IAEA는 2050년까지 총 588기의 원전이 영구 정지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2145년까지 글로벌 원전 해체 시장 규모가 무려 500조원에 달하는 ‘블루오션’이다. 향후 원전 산업에서 해체 기술의 중요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는 이유다.
한국 원전 업계가 글로벌 원전 해체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드는 것 자체가 의미심장하다. 한국형 원전의 기술력은 이미 입증됐다. 중동의 아랍에미리트(UAE)에 이어 체코까지 원전 수주에 성공했다. 해체 핵심 기술도 96개 확보한 상태다. 한국원자력연구원이 핵심기반 기술 38개를, 한수원이 상용화 기술 58개를 각각 갖고 있다. 한수원 입장에서도 원전의 건설·운영에 이어 해체까지 국내 최초로 원전 전주기 생태계를 완성한다는 데 대한 자부심도 남다르다.
경쟁 국가도 많지 않다. 원안위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미국, 독일, 일본, 스위스 등 4개국만이 원전을 해체해 본 경험이 있다. 미국을 제외하곤 상업용 발전이 아닌 연구를 위한 소형 원형로(프로토타입) 혹은 실증로를 해체한 경우다. 일본은 지난 3월 하마오카 원전 2호기 해체 작업에 돌입하며 상업용 원전 해체를 시작했다. 대형 상업용 원전을 해체해 본 곳은 미국이 유일하다는 얘기다. 고리 1호기 해체 시 한국은 미국에 이어 대형 상업용 원전을 해체한 경험을 보유한 2번째 국가가 된다.
한수원은 이미 원전 해체에 대비한 준비과정을 차근차근 밟고 있다. 지난 5월부터 해체 승인 사전 작업으로 방사성 물질을 제거하는 ‘제염’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원전 해체 분야의 해외 전문기관과의 교류를 활성화하고, 관련 전문가도 양성 중이다. 영국 원자력해체청(NDA), 프랑스 국영기업인 ORANO, 캐나다 키네트릭스·캔두에너지, 슬로바키아 국영 원전기업 자비스(JAVYS) 등이 대표적이다.
3개 전담 조직에 108명을 배치하고 기술인력 599명도 육성했다. 해체 과정에서 종사자와 인근 주민의 안전을 위한 방호 및 환경 감시 계획도 세웠다. 지난해 기준 9647억원의 해체 비용도 적립해둔 상태다. 한수원은 정부 연구개발(R&D) 사업을 활용하고 자체 연구 과제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원전 해체 기술을 고도화할 방침이다.
황주호 한수원 사장은 “고리1호기 해체 사업 과정을 국민에게 투명하게 공개하고 지역 사회와의 신뢰를 기반으로 해체 사업을 추진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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