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강서구에 사는 김영자(73·여) 씨는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자식에게 손 벌리지 않고 살 수 있을 줄 알았다. 20년 넘게 살아온 아파트 덕분에 ‘자산가’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하지만 연금 외엔 별다른 소득이 없어 병원비나 생활비가 늘 빠듯했다.
“집값은 몇 억이나 올랐다는데, 정작 난 쓸 돈이 없더라고요”
김씨는 지난해 주택연금에 가입한 후 매달 90만 원가량의 연금을 받기 시작했다. “집에 그대로 살면서 생활비가 들어오니까 마음이 편해졌다”는 김씨는 최근 동네 지인에게도 주택연금을 권했다.
한국은행은 이처럼 주택연금 가입이 늘면 고령층 소비가 증가해 실질 GDP가 최대 0.7% 오르고, 노인빈곤율은 최대 5%포인트 하락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주택을 보유하고 있으나 현금 흐름이 막힌 고령자에게 ‘주택연금’은 새로운 해법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15일 한국은행 황인도 금융통화연구실장은 한은과 한국개발연구원(KDI)이 공동 주최한 심포지엄에서 “주택연금과 민간 역모기지 확대는 고령층의 소비 여력을 높여 실질 GDP를 0.5~0.7% 끌어올릴 수 있다”고 밝혔다. 이는 ‘주택연금과 민간 역모기지를 통한 소비 확대 및 노인 빈곤 완화’ 보고서 분석에 따른 결과다.
주택연금은 만 55세 이상 주택 소유자가 집을 담보로 노후 자금을 연금처럼 받는 제도다. 현재는 전체 가입 요건 충족 가구(55세 이상, 공시가 12억 원 이하 주택 보유) 중 1.89%만 실제로 가입한 상황이다.
하지만 잠재 수요는 크다. 한국은행이 전국 55~79세 주택보유자 3,82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35.3%가 가입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여기에 상품 구조 개선이나 정확한 정보 제공이 더해지면 가입 의향은 평균 41.4%까지 상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예컨대 ▲주택가격 상승분이 연금에 반영된다면 가입 의향은 39.2%, ▲상속 절차가 간편해지면 41.9%, ▲집값이 올라 손해 보지 않는 구조라는 설명만으로도 43.1%까지 늘었다.
한은은 이러한 수요층(약 276만 가구)이 실제 주택연금에 가입한다고 가정할 경우, 실질 GDP가 최대 0.7% 증가하고, 노인빈곤율은 3~5%포인트 낮아질 것으로 내다봤다. 약 34만 명이 빈곤층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계산이다.
다만 현실적인 시나리오에선 효과가 제한적이다. 현재처럼 낮은 가입률이 지속된다면 성장 및 분배 효과는 20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든다. 영국 수준으로 역모기지 시장이 성장해 약 37만 가구가 가입할 경우에는 GDP가 0.1%, 노인빈곤율은 0.5~0.7%포인트 줄어드는 수준으로 전망된다.
한은은 주택연금 활성화를 위해 다음과 같은 제도 개선을 제안했다. ▲주택가격 상승분을 연금 수령액에 반영하는 상품 설계 ▲상속 요건 완화 ▲가입자 손실 우려를 줄이는 정보 제공과 홍보 강화 ▲세제 혜택 확대 등이다.
또한 민간 금융기관의 역모기지 상품도 보완책이 될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하고, 종신 지급 및 비소구형 상품 출시를 허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생명보험사의 참여를 독려하고, 정부 및 민간 협회의 인프라 지원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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