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 결정과 미국의 ‘관세 전쟁’ 본격화가 맞물리며 안정세를 찾아가던 원·달러 환율이 다시 1500원대를 위협하고 있다. 고환율에 취약한 중소기업들의 투자 축소 계획이 강화될 가능성이 높아진 셈이다.
특히 전체 고용의 90%를 차지하는 중소기업의 투자축소는 다시 경기침체를 강화하는 ‘악순환’을 만들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28일 오후 서울 외환시장에 따르면 원·달러 환율은 1460.5원이다. 12·3 비상계엄 뒤 정치적 불안정성 탓에 1470원를 돌파한 뒤 점차 하락하는 모양새였다. 하지만 지난 25일 한국은행이 내수진작을 위해 0.25%포인트 금리 인하를 단행하자 또다시 치솟은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관세 발언에 대한 수위를 높인 것도 환율을 밀어 올리는 요소 중 하나다. 경기 불확실성이 증가하면 안전자산에 속하는 미국 달러화 수요가 높아지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27일(현지시간)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멕시코와 캐나다의 불법 마약이 용납할 수 없는 수준으로 미국에 유입되고 있고, 이 재앙이 미국에 계속 해를 끼치는 것을 허용할 수 없다”며 “따라서 3월4일에 발효될 예정인 관세는 (불법 마약이) 중단되거나 제한될 때까지 실제로 예정대로 발효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고환율 상황은 한국 산업계 전반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 수출 의존도 및 원자재 수입 비중이 높은 한국 산업의 특성상 생산 비용은 늘어나는 반면 판매가는 떨어지는 결과를 불러오기 때문이다.

특히 중소기업이 피해를 볼 가능성이 높다. 대기업보다 상대적으로 환율 변동 예측에 취약하고 원청 기업에 종속된 경우가 대다수라 사전 대응책 마련이 불가능한 경우가 많은 탓이다. 실제 중소기업중앙회가 수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환율 리스크를 ‘관리하지 않는다’고 응답한 기업이 절반에 가까운 49.3%를 차지했다.
아울러 중소기업의 재정적 여력은 이미 한계에 달한 상황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9월 말 기준 기업(비금융기업)의 단기차입금은 682조2740억원으로 전년 동기(627조2240억 원) 대비 8.78% 증가했다. 지난해 4분기 0.1%를 기록한 실질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이 비상계엄·탄핵 정국 여파로 종전 전망치(0.5%)보다 0.4%포인트나 하락한 것을 고려하면 현재 700조원을 넘어섰을 개연성이 크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다수의 중소기업들이 올해 긴축경영을 계획보다 더 강화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지난해 발표한 ‘2025년 기업 경영전망 조사’에 따르면 내년 경영계획을 수립한 기업 중 절반가량은 올해 경영계획 기조가 ‘긴축경영’이었다. 특히 300인 미만 규모인 중소기업은 45.7%가 긴축경영을, 28.4%가 현상유지로 응답했다. 중소기업 10곳 중 8곳 이상이 올해 투자를 늘리지 않겠다고 응답한 셈이다. 국내 고용의 90% 이상을 책임지는 중소기업의 투자 축소는 실업률 증가, 소비 위축 등으로 이어져 경기침체를 강화하 는 ‘악순환’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정세은 충남대 교수(경제학)는 “중소기업의 경우 대기업에 종속된 경우가 많은데 단가 협상력이 낮아 고환율로 인한 원가 상승분을 홀로 떠안을 가능성이 높다”며 “한국 경제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중소기업의 몰락은 경제 전체에 악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이들을 위한 유동성 지원 및 원가 협상력 강화 정책 등에 정부가 나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앞서 정부는 위기에 처한 중소기업을 지원하고자 지난 18일 ‘범부처 비상수출 대책’을 발표하기도 했다. △피해 중소·중견기업을 대상 단기수출보험료를 60% 할인 △무역보험 한도를 최대 2배 확대 △피해기업 대상 보증 심사기간을 1주로 단축 △보험금 지급기간도 1개월로 단축 등이 골자다.
정치권도 중소기업 지원에 뛰어들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17일 ‘중소기업특별위원회’를 출범시켰다. 이 자리에서 중기중앙회 관계자는 중소기업 지원 방안으로 △중소기업 상생금융지수 도입 △매출채권 팩토링 확대 △중소기업 범위기준 확대 및 조정기준 명확화 △중소기업협동조합 거래조건 협의요청권 부여 등을 제안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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