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사이 내린 눈 도로에 얼어붙어
자유로 44대·문산고속도 43대 추돌
“브레이크 밟아도 차 멈추질 않아”
오전 5시부터 7시 사이에 집중
어두운 새벽 운전자 인지 어려워
“車 안전장치도 효과없어 위험 커”
15일 또 강추위… “절대 방어운전”
밤사이 내린 눈이 도로 위에 쌓이면서 14일 아침 경기 고양 일대에서만 세 차례에 걸쳐 차량 100여대가 추돌하는 사고가 잇따랐다. 이날 사고로 1명이 숨지고 10여명이 다쳤다. 어두운 새벽 시간대에 운전자의 시야에 쉽게 보이지 않는 도로 결빙(블랙아이스)이 사고의 원인으로 지목돼 주의가 요구된다.
이날 오후 경기 고양 고양분기점 인근에선 3차선 중 1차선을 가득 메운 11대의 차가 파손된 채 줄지어 있었다. 갓길에 세워진 SUV(스포츠유틸리티차)는 종잇장처럼 구겨져 있었고, 에어백이 터진 차들은 사고 당시의 처참함을 보여줬다.

이런 사고는 이날 경기 지역을 중심으로 연달아 발생했다.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5시부터 7시 사이 경기 고양의 자유로와 서울문산고속도로에서만 세 차례에 걸쳐 총 105대의 차량이 추돌사고를 일으켰다.
오전 5시15분쯤 고양 일산서구 자유로 구산IC 파주 방향 인근에서는 도로 결빙에 미끄러진 트럭, 버스, 승용차 등 44대의 차량이 잇따라 추돌했다. 이어 오전 5시50분쯤 고양 덕양구 서울문산고속도로 문산 방향 고양분기점 인근에서는 차량 43대가 다중추돌했고, 오전 6시40분쯤에는 같은 고속도로의 흥도IC 인근 도로에서도 차량 15대가 추가로 추돌했다. 세 차례의 사고로 이날 오전 기준 16명이 부상한 것으로 파악됐다.

오전 3시49분에는 김포 월곶면 갈산리 도로에서 블랙아이스로 음식물 폐기물을 수거해 옮기던 5t 트럭이 미끄러져 가드레일을 들이받는 사고가 발생했고, 트럭을 운전하던 50대 남성이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결국 숨졌다. 이 남성은 인천 부평구청 환경용역 업체 소속으로 음식물 폐기물을 수거해 처리시설로 옮기다가 미끄러지면서 사고를 낸 것으로 파악됐다. 오전 5시30분쯤 김포시 통진읍 마송리에서 화물차와 승합차 등 차량 7대가 잇따라 부딪쳐 운전자 2명이 다쳤다.
고양분기점 부근에서 사고를 당한 박태희(36)씨는 “전방에 브레이크등이 희미하게 보여 200~300m 뒤에서 브레이크를 밟았는데 차가 아예 멈추지 않았다”며 “제동이 전혀 되지 않았는데, 더 큰 사고를 막고자 일부러 가드레일을 박았다”고 당시의 긴박했던 상황을 말했다. 흥도IC 인근 도로에서 SUV를 몰던 이모(42)씨도 “사고가 난 걸 발견하고 속도를 줄였는데, 차가 도무지 말을 듣지 않았다”며 “잠김방지제동체계(ABS)가 작동했는데도 멈추지를 않았다”고 말했다.
이날 연쇄적으로 발생한 사고의 원인으로는 블랙아이스가 지목된다.
블랙아이스는 도로 위에 얇은 막처럼 형성되는 얼음을 말한다. 도로 위 얼음은 매연과 먼지가 함께 섞여 있어 투명하지 않고 검은색을 띠어 운전자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 특히 비나 눈이 내리거나 쌓인 눈이 녹으면서 아스팔트 틈새로 스며든 물이 영하의 기온에서 얼어붙으며 만들어진다. 안개가 도로 면에 달라붙어 얼어도 살얼음이 된다. 이날 사고의 경우 대부분 해가 뜨기 직전 어두운 새벽 시간대에 발생했다. 운전자가 블랙아이스를 사전에 인지하기는 더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
강경우 한양대 교통물류학과 교수는 “ABS를 무력화하는 게 블랙아이스”라며 “차의 성능과 안전장치는 블랙아이스에서 효과가 없다. 눈이나 비는 예보가 되기 때문에 사전에 대비할 수 있지만, 블랙아이스는 대비할 수가 없어서 더 위험하다”고 설명했다.

경기북부경찰청 교통과 관계자도 “도로 결빙 구간에서 한 차가 미끄러져 멈춰 서면, 뒤따르던 차들이 연이어 미끄러지며 잇따라 추돌하는 식으로 사고가 발생한다”며 “브레이크를 밟으면 오히려 차가 더 미끄러진다. 엔진브레이크를 써서 속도를 한 번에 줄여야 하는데, 도로 결빙이 갑자기 나타나면 그게 쉽지 않다”고 말했다.
도로 결빙 위험은 날씨가 풀리지 않으면서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이날 밤부터 북서쪽에서 찬 공기가 내려오면서 15일과 16일 다시 한 번 추워진다. 15일 아침 최저기온은 영하 15도에서 영하 1도 사이에 머물겠고, 낮 최고기온은 영하 3도에서 영상 5도 사이로 대부분 지역에서 0도 안팎이다. 강풍도 추위를 부추길 것으로 보인다. 14일은 강원영동과 경북, 15일은 전국에 순간풍속 시속 55㎞(산지는 70㎞) 안팎의 강풍이 불 것으로 예상된다.
우진규 기상청 통보관은 “산으로 둘러싸인 흥도IC 같은 지역은 찬 공기가 빠져나가지 못하고 갇혀 있어 지표면 온도가 더 낮아지기 때문에 도로 결빙이 잘 발생한다”며 “교각처럼 공중에 떠 있는 도로도 위아래로 찬 공기가 통과해 다른 구간보다 도로 온도가 더 낮아지면서 살얼음이 잘 생긴다”고 설명했다.
홍장표 경기북부소방재난본부장은 “도로 결빙이나 블랙아이스는 운전자들이 미리 대비하지 않으면 대형 인명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며 “도로 결빙 위험 구간에서 반드시 속도를 줄이고 방어운전에 각별히 신경 써야 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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