軍, 장치 오작동에 따른 사고 판단
새로운 도발이자 진화 가능성 높아
안이한 대응 때는 또 치욕당할 것
2022년 12월 26일 북한 무인기 5대가 우리 영공을 휘젓고 다닌 사건이 발생했다. 2014년 청와대 정찰사건 이후 8년 만에 또다시 북한 무인기에 당한 것이다. 여전히 군 대응 능력은 낙제 수준을 면치 못했다. 대응 출격한 KA-1 경공격기가 이륙 직후 추락까지 했다. 망신도 이런 망신이 없다. 군이 호들갑을 떨었음에도 무인기는 유유히 군사분계선(MDL)을 넘어 북으로 돌아갔다. “왜 격추하지 못했냐”는 비난이 빗발쳤다. 문재인정부의 ‘평화 타령’에 군 대비태세는 허물어지고 훈련 부족은 만성이 됐을 때다. 위기관리시스템이 작동하는 게 이상할 정도였다. 당연한 후과였다. 이후 국가 위기 대응 방식이 나아졌냐고 묻는다면 고개를 가로저을 수밖에 없다. 교훈으로 삼지 않아서다.
최근 북한의 오물풍선으로 인한 화재가 수도권 곳곳에서 빈번하다. 방화는 새로운 도발 패턴이라 여길 만하다. 소방 당국이 화재 원인을 조사하던 중 오물풍선에 달린 기계장치를 발견했다. 그런데도 군 당국은 풍선에서 인화성 물질이 발견되지 않아 의도된 폭발이라기보다는 장치(발열타이머) 오작동에 따른 단순 사고로 판단했다. ‘낙하 후 수거’라는 기존 오물풍선 대응 방식도 유지한다는 입장이다. 하나 실제 피해가 발생한 데다 대형 화재로 번질 우려가 커지는 판국이다. 당연히 오물풍선의 군사적 활용 가능성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북한은 지난 5월 말부터 총 17차례에 걸쳐 오물풍선을 살포했다. 지난 4일부터 8일까지 닷새간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내려 보냈다. 이 기간 띄운 풍선만도 1600개를 웃돈다. 우리 측 대북 확성기와 대북전단에 대한 대응치고는 그 수위가 자못 높다. 의도를 갖지 않고서야 이렇게 할 리 있겠나. 풍선 살포를 통해 각종 데이터를 수집·분석하고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를 토대로 여차하면 기폭장치가 달린 자폭 풍선이나 드론을 날려 보낼 수도 있다. 북한은 최근 신형 자폭 드론까지 공개한 마당이다. 풍선에 탄저균 같은 생화학물질을 담아 보낸다면 혼란은 더 커질 게다. 그때 가서 진상조사단을 꾸린들 무슨 의미가 있겠나.
남남 갈등도 간과할 수 없다. 오물풍선 살포와 같은 회색지대 전술은 군사적이라기보다 정치·사회·심리적 효과를 목표로 하고 있다. 거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북한의 거듭된 오물풍선 도발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이 부르짖던 ‘힘에 의한 평화’의 결과가 북한의 도발이 일상인 나라냐”며 정부를 비난했다. 도발 주체인 북한에 대한 비판은 쏙 뺀 채 말이다. 화재로 인한 피해를 두고서도 국가 책임 공방이 불거진다. 일부에선 대북전단을 걸고넘어지며 북한을 두둔하기까지 한다. 천안함 피격 때처럼 또다시 음모론이 불거질 게 뻔하다. 이쯤되면 북한으로선 손해 볼 게 없는 장사다. 십중팔구 앞으로도 계속 띄워 보낼 게 뻔하다.
더 큰 문제는 정부가 “풍선에 유해물질이 없다”고 규정하면서 국민의 경계심은 허물어지고, 오물풍선 살포는 늘 있는 일로 각인됐다는 점이다. 오물풍선이 새로운 도발이자 진화라는 본질을 우리 스스로 외면하게 만든 꼴이다. 손자병법의 ‘궤계’(詭計·속여서 치는 행위)가 현실화할 여지가 충분하다. 더 이상 오물풍선 살포를 대수롭지 않게 치부하고 넘길 일이 아니다. 정부는 북한에게 엄중 경고를 해야 한다. 이미 유엔군사령부가 오물풍선 살포를 “심각한 정전협정 위반”으로 규정하지 않았나. 아울러 우리 민간단체의 대북전단 살포를 자제하도록 유도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 더 큰 피해와 혼란을 막기 위해서다. 국제사회를 통한 여론전도 강구해야 한다. 무력을 동원하는 일은 최후의 카드다. 그렇다고 과도한 대응 공격으로 북한에게 도발의 빌미를 제공하거나, 민가 낙탄 피해 등을 이유로 군이 뒷짐만 져서는 곤란하다. 보복이 능사는 아니지만 오물풍선이 비무장지대(DMZ)를 넘는 순간 레이저총 등으로 공중에서 터트려 파괴하는 방안 등 파훼법(破毁法)을 찾아야 한다. 마침 우리 군 수뇌부가 교체됐다. 과거처럼 북한의 도발에 또 치욕을 당하는 일이 있어선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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