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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회준 카이스트 AI반도체대학원장 “정부 반도체 산업 정책, 경쟁국보다 소극적… 총력 지원 필요” [세상을 보는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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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4-05-08 06:00:00 수정 : 2024-05-08 13: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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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특구 지정·세제 혜택 대폭 확대
과감한 규제 완화로 기술 개발 도와야

학교 교육과 현장 필요 역량 거리 멀어
산업 변화·인력 수급 따져 인재 양성을

삼성 ‘턴키전략’ 내세우지만 잘못된 것
TSMC처럼 기업 쪼개 경쟁력 키워야

세계 반도체 패권 경쟁이 불붙고 있다. 인공지능(AI)이 산업 전반으로 퍼지면서 반도체시장은 격변기를 맞고 있다. 미국 엔비디아(NVIDIA)가 ‘괴물 칩’이라고 불리는 AI 반도체를 앞세워 반도체시장의 신흥 강자로 떠올랐다. 미국이 중국을 배제한 공급망 재편에 나서면서 기업을 넘어 국가 간 총력전도 갈수록 격렬해지고 있다. 한국은 국가흥망이 걸린 전쟁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반도체 강국 위상이 위태롭다.

반도체 분야 세계적 권위자인 유회준 한국과학기술원(카이스트) 인공지능반도체대학원 원장(반도체공학회 회장)은 “대만은 정부, 대학, 연구소, 중소·벤처 기업이 다 TSMC를 밀고 있고 미·중 갈등에도 실리적인 처신으로 잘 살아남고 있다”고 했다. 유 원장은 “우리 정부가 경쟁국보다 소극적이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만 맡겨 두고 있는데 대만에서 많이 배워야 한다”며 파격적인 세제 지원과 규제 완화 등 총력 지원을 주문했다. 그는 이어 “탁월한 인재가 필요한데 10∼15년 산업 변화와 인력 수급을 예측해 연구개발(R&D) 인재와 공장 현장 인력을 양산하는 정교한 프로그램을 짜야 한다”고 했다. 삼성전자 위기론과 관련해 유 원장은 “삼성이 메모리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패키징(조립)까지 다 하는 ‘턴키(일괄 생산) 전략’을 내세우지만 잘못된 것”이라며 “파운드리는 대만 TSMC처럼 별도 기업으로 쪼개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고 지적했다. 인터뷰는 지난 2일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 반도체공학회에서 진행됐다.

유회준 한국과학기술원(카이스트) 인공지능반도체대학원 원장은 2일 세계일보와 인터뷰에서 “반도체 인재 양성과 인력 유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엔지니어의 처우를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엔지니어가 국내에서 산업역군 평가를 받다가 월급을 2∼3배 많이 주는 해외로 가면 매국노 취급을 당하는 건 문제가 많다”며 “보수 체계를 바꿔 대접을 잘해 준다면 해외에서 인재들이 다 들어올 것”이라고 말했다. 최상수 기자

―AI 반도체시장 상황은.

“2020년부터 AI가 많은 분야에 쓰이게 됐는데 반도체가 엄청나게 필요하게 됐다. 특히 데이터센터에서 그동안 쓰이지 않던 게임용 그래픽처리장치(GPU)와 GPU에 탑재되는 고대역폭 메모리(HBM) 수요가 폭주했다. 현재 AI 반도체는 반도체시장의 주류가 됐고 엔비디아가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내가 대학 다닐 때 학교에 메인프레임 컴퓨터가 달랑 한 대 있었는데 대학원 시절에는 학과마다 컴퓨터가 생겼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집집이 PC가 보급됐고 지금은 개인이 컴퓨터를 여러 대 갖고 있다. 지금 AI 시장은 학교에 컴퓨터가 한 대 있는 정도의 아주 초기 단계다.”

―앞으로는 어떻게 될까.

“엔비디아의 독점은 4∼5년을 넘기기가 힘들다. GPU는 게임용이지 AI용이 아니다. 전력을 너무 많이 소비하는데 이제 서울에는 GPU를 쓴 데이터센터를 더 이상 지을 수 없다. GPU만 계속 쓴다면 전력이 다 고갈된다. GPU와 HBM은 징검다리 기술이다. AI 산업의 흐름도 현재 데이터센터를 거쳐 스마트폰, 노트북, 자율주행차 등에서 구현되는 ‘온디바이스(내장형) AI’로 넘어갈 것이다. 온디바이스 AI에서는 GPU 성능과 효율이 떨어진다. AI에 특화된 저전력 신경망 처리장치(NPU)가 GPU를 대체하고 지능형 반도체(PIM)와 뇌를 모방한 생체신경모방(뉴로모픽) 반도체로 진화할 것이다. HBM 대신 과거 D램 기술과 비슷한 저전력 메모리(LPDDR)로도 충분하다.”

―AI 시장 변화는 우리 기업에 위기이자 기회일 것 같은데.

“SK하이닉스가 HBM 시장을 선점했고 삼성전자는 시장 변화에 적응하지 못했다. 엔비디아가 하이닉스를 일부러 밀어준 측면도 있다. 아무래도 삼성은 설계, 메모리, 파운드리가 다 있는 종합반도체기업이다 보니 엔비디아가 잠재적 경쟁자로 여겨 부담스러워 한다. 엔비디아는 파운드리를 TSMC에 100% 맡긴다. TSMC는 절대 고객과 경쟁하지 않는다는 것이 모토다. 다만 차세대 AI 산업은 판이 바뀔 수 있다. NPU는 우리나라의 리벨리온, 퓨리오, 사피온 3사가 만들고 있다. 삼성전자와 마이크로소프트(MS)도 많은 준비를 하고 있다. ”

 

―삼성전자 위기론이 커지고 있는데.

“삼성전자가 올 1분기 6조6100억원의 영업이익을 냈지만 파운드리와 시스템LSI 사업부는 여전히 부진하다. 삼성은 메모리와 파운드리, 패키징을 다 하는 ‘턴키 전략’을 내세우고 있지만 잘못된 것이다. 애플이 휴대폰 위탁생산을 TSMC 대신 경쟁자인 삼성전자에 맡길 리 만무하다. 퀄컴도 모바일 AP(두뇌 칩)인 스냅드래곤 제조를 삼성전자에 맡겼다가 TSMC로 갈아탔다. 삼성전자는 스냅드래곤의 경쟁 제품인 ‘엑시노스’를 만들고 있다. 이래서는 삼성 파운드리에 의미 있는 고객사가 생기기 힘들다. 삼성은 TSMC처럼 파운드리사업부를 별도 회사로 분리해야 경쟁사의 의심을 피할 수 있다. 다 끌어안고 가는 상황에서 돈이 되는 메모리에 투자가 치우치고 파운드리는 TSMC와 경쟁력 격차가 커질 수밖에 없다.”

―조 바이든 미 행정부가 출범 초기부터 중국을 배제한 글로벌 공급망 재편을 추진했는데 성과와 전망은.

“바이든 행정부가 자국 내 반도체 생산시설에 4년간 520억달러의 보조금을 푸는 반도체법을 시행한 지 약 2년 흘렀는데 확실한 성과를 냈다. 아시아에 치우쳤던 첨단 반도체 제조기지가 미국으로 옮겨 가고 있다. 글로벌 반도체 기업의 투자가 이어지면서 메모리부터 파운드리, 첨단 패키징에 이르는 반도체 제조생태계가 형성되고 있다. 한국도 득을 보는 측면이 있다. 첨단 반도체 공정에서 중국의 추격이 느려지고 있다. 우리와 격차가 10년 정도까지 벌어졌다.”

―공급망 재편 과정에서 일본과 대만의 약진이 돋보이는데.

“일본은 반도체 부흥을 위해 정부 주도의 ‘톱다운’ 방식으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일본 경제산업성이 미 상무부과 함께 나서 IBM과의 협력을 끌어냈다. 소니 등 자국 대표 기업이 연합해 만든 ‘라피더스’는 2027년 홋카이도에서 최첨단인 2나노 제품을 양산하겠다고 한다. 다만 일본은 28나노에서 끝났는데 어떻게 2나노까지 갈 수 있을지 의문이다. 지난 20∼30년간 반도체 인력 양성에도 실패했다. 일본 도쿄대학에 가 봐도 대학원생 3분의 2 이상이 중국인이다. 대만은 반도체로 똘똘 뭉친 나라다. 대학, 연구소, 중소기업과 벤처업계가 다 TSMC를 밀고 있으니 경쟁력이 커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중국의 반도체 굴기(우뚝 섬)도 만만치 않다.

“중국은 세계 반도체시장의 70%를 차지하는 범용 반도체 쪽에 집중하며 반도체 자립에 나서고 있다. 수년 전 중국의 D램 공장 등을 가 봤는데 비즈니스 마인드나 범용 제품 개발 능력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미국의 제재 탓에 확실히 첨단기술을 개발하거나 새 시장을 창출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미·중 사이에 끼인 한국 반도체의 입지가 좁은 거 같은데.

“대만에서 배울 게 많다. 대미 투자를 늘리지만 중국에도 반도체 공장이 많다. 상하이에는 직원이 1000여명인 연구소(미디어텍)를 운영한다. 그런데도 미·중 갈등 사이에서 잘 살아남고 있다. 실리적인 처신은 배워야 한다. 한국은 메모리의 경우 대중 수출 비중이 60%를 넘는다. 중국에는 삼성의 시안공장, 하이닉스의 우시·다롄공장도 있다. 미국의 인텔이나 퀄컴도 대중 매출 비중이 30% 정도여서 이 시장을 포기할 수 없다. 우리는 미국 말만 들을 게 아니라 중국과도 적절한 연결고리를 갖고 있는 게 바람직하다.”

―국내 반도체 기업의 과도한 미국 투자가 공급 과잉, 국내 산업 공동화 등 부작용을 야기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더 진취적이고 국제적 시야에서 바라봐야 할 거 같다. 한국에 R&D와 첨단기술이 있고 해외에 공장을 많이 건설하면 우리 세력이 확장된 것이 아닌가. AI 산업이 생각 이상으로 급팽창하고 있는 만큼 공급 과잉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 미국에서 제조 비용이 3배가량 더 들지만 저비용으로 생산되는 한국을 고비용으로 바꿔야 한다. 대학에서 반도체 전공하고 카이스트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삼성에 취직해도 연봉 1억원을 받기 어렵다. 이런 인력이 미국에 가면 연봉이 3억∼5억원이다. 처우 개선을 해야 인재의 해외 유출도 막을 수 있다. 수년 전 대만 TSMC와 미디어텍이 급여를 대폭 올렸더니 고급 인재들이 미국으로 가지 않는다.”

―우리 정부는 경쟁국보다 반도체 산업 지원이 미흡하다.

“정부는 세제 지원과 보조금 지급, 과감한 규제 완화로 기업들의 기술 개발을 도와야 한다. 경쟁국처럼 보조금 등 직접 지원이 국민 정서상 힘들다면 반도체 특구 지정이나 세제 혜택 등 간접 지원을 대폭 늘려야 한다.”

―인재 양성에 관심이 많은 거로 아는데 현 정책의 문제점과 개선 방향은.

“너무 근시안적이다. 정부와 기업, 학교가 따로 논다. 반도체 인력이 모자란다고 갑자기 마이스터고를 만들고 대학교에 기업과 계약한 과를 만드는 식이다. 학교 교육 내용이 산업 현장에서 필요한 기술·역량과 거리가 멀다. 인재 양성은 긴 호흡으로 봐야 한다. 향후 10∼15년 산업 변화와 인력 수급을 예측하는 게 급선무다. 앞으로 반도체가 어디에든 다 들어가는 인프라로 바뀔 텐데 핵심적인 R&D 인력과 공장 운영 인력을 양성하는 정교한 프로그램을 짜야 한다. 처우 개선도 중요하다. 정부가 갑작스레 의대 정원을 늘리면서 R&D 인력을 의료계에 다 뺏기는 게 아닌지 걱정이다. 대만처럼 반도체 인력이 의사보다 더 대우받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주춘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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