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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월의쉼표] 휴대폰을 분실했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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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4-05-02 23:27:11 수정 : 2024-05-02 23:2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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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함께 기차를 타고 지방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기차에서 내린 직후 어쩐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뒤를 돌아보았더니 아직 출입문이 닫히지 않은 객차 안, 방금 전까지 내가 앉았던 좌석에 동그마니 놓인 휴대폰이 보였다.

이를 어쩐다. 잽싸게 뛰어 들어가 휴대폰을 챙기고 다시 문이 닫히기 전에 빠져나오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혹시라도 내가 나오기 전에 문이 닫힌다면 밖에 혼자 남겨진 아이는 어떡하나 싶었다.

괜찮다. 분실하자마자 깨달았고 그것이 어디 있는지도 확인했으니 곧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하고 낙관하며 나는 분실물 신고 전화를 걸기 위해 휴대폰을 찾았다. 아, 휴대폰이 없었다. 역무실로 올라가서 신고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개찰구를 빠져나가기 위해서는 모바일 기차표의 큐알 코드를 태그해야 했고, 모바일 기차표는 내 휴대폰에 들어 있었다. 할 수 없이 나는 무임승차 후 도망가는 것처럼 상체를 한껏 숙여 기다시피 개찰구를 빠져나갔다. 다행히도 역무원들의 신속한 대응으로 휴대폰은 금방 발견되었다. 심지어 승무원이 그것을 내가 있는 역으로 직접 가져다주겠다고 했다. 문제는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승무원이 역에 도착하기 전에 연락하겠다며 전화번호를 청했다. 내게는 전화를 받을 휴대폰이 없는데 말이다. 그와 오십 분 후 역무실에서 만나기로 했다. 하지만 휴대폰이 없으니 시간을 확인할 길이 없었다. 마침 아이가 다리 아프다고 보채기에 나는 시간 확인도 할 겸 커다란 벽시계가 있는 역사 내 카페에 갔다. 음료를 주문하려고 키오스크 앞에 선 다음에야 모바일 신용카드가 휴대폰에 탑재되어 있음을 깨달았다. 휴대폰이 없으니 계좌이체도 할 수 없었다. 결국 카페에서 음료를 주문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나. 휴대폰 하나 없다고 일상이 삐걱거린다니. 휴대폰의 편의성이 어떻게 이토록 자연스럽고도 교묘한 방식으로 삶을 통제하게 되었나. 대합실에 손 놓고 앉아 휴대폰을 기다리며 나는 유용한 것들은 그 유용함으로 우리를 억압하지만 문학은 쓸모가 없기 때문에 우리를 억압하지 않는다던, 그리고 억압이 인간에게 얼마나 부정적으로 작용하는지 보여준다던 김현 선생의 오래된 말씀을 새삼 곱씹었다.


김미월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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