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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진의 ‘에스파냐 이야기’] (28) 돈키호테 (2) : 기사 작위를 받은 곳, 푸에르토 라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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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4-04-30 15:14:07 수정 : 2024-04-30 15:4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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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고도 가까운 나라 스페인

스페인은 우리나라와 수교한 지 올해 73주년을 맞은 유럽의 전통우호국이다. 과거에는 투우와 축구의 나라로만 알려졌으나 최근 들어 우리나라 사람들이 즐겨 찾는 주요한 유럽 관광지다. 관광뿐 아니라 양국의 경제· 문화 교류도 활발해지는 등 주요한 관심국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은진의 ‘에스파냐 이야기’ 연재를 통해 켈트, 로마, 이슬람 등이 융합된 스페인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소개한다.

 

풍차마을 콘수에그라에서 남쪽으로 조금 더 달리면 푸에르토 라피세 마을이 나온다. 소설에서는 이 마을에서 돈키호테가 기사 작위를 받는다. 소설 돈키호테의 1편 3장의 구절을 번역해 본다.

 

“손님을 골려주려던 생각이 실수였음을 깨달은 여관 주인은 문제를 짧게 끝내고 더 이상의 불운이 일어나기 전에 그에게 기사 작위를 수여하기로 했습니다… 신께서 당신의 숭배를 받아 행운의 기사로 만들고, 전투에서 승리하게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돈키호테가 하룻밤 묵은 여관인 벤타 델 키호테. 필자 제공

소설에서 여관 주인은 괴물을 찾아 무찌르려는 한다는 돈키호테가 조만간 큰 사고를 칠 것 같아, 이쯤에서 문제를 키우지 않기 위해서 검을 들고 기사 작위를 주는 흉내를 내는데, 이 장면을 묘사한 것이다. 미치광이 돈키호테의 헛소리를 들어주는 척한 것이다.

 

돈키호테가 하룻밤 묵은 장소이자 기사 작위를 받은 곳인 여관 벤타 델 키호테로 발길을 돌렸다. 여관은 소설의 배경이 되었던 16세기 스페인의 라만차 지방의 전형적인 시골 주택의 모습이다. 건물은 여러 칸으로 나누어져 있고, 중앙에는 정원(빠띠오), 우물, 물통, 말을 위한 마구간이 있다. 손님들이 식사하는 식당에는 커다란 와인 항아리가 3~4개 놓여 있고, 안팎에는 돈키호테와 관련된 여러 가지 장식들도 있다.

 

돈키호테가 하룻밤 묵은 여관인 벤타 델 키호테. 필자 제공

돈키호테는 1605년 1편이 출간되고 1615년 2편이 출간되었다. 세르반테스가 57세와 67세 때의 일이다. 돈키호테가 출간될 때 스페인은 서서히 쇠퇴하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돈키호테는 역사적인 맥락에서 당시 스페인의 시대 상황을 잘 반영하는 작품이었다. 크리스천, 무어인, 유대인이 어울려 살던 카스티야왕국은 1492년 이사벨 여왕이 그라나다를 점령하면서 통일된 가톨릭 왕국이 되었다. 세르반테스 시대에는 다수를 차지하는 올드 크리스천(Old Christian)과 개종한 무어인과 유대인을 위주로 하는 소수의 뉴 크리스천(New Christian)으로 이분된 사회로 구조가 변경되었다. 올드 크리스천은 기득권이고, 뉴 크리스천은 새로 등장한 세력이다. 이에 더해서 로마 가톨릭에 대한 충성이 강조되면서 가톨릭의 지배 이데올로기에 대한 검열이 강화되었다.

 

이러한 사회적 구조 속에서 세르반테스는 의도적으로 지배적 이데올로기의 입장에서 양면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 수사법과 반어법을 동원하였다. 아마도 엄혹했던 검열을 피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돈키호테의 광기 그 자체는 사회의 규범과 기대로부터 주인공 자신을 소외시키는 기제로 작용하기도 한다. 돈키호테는 태생적인 신분에 의해서 사람의 가치가 정의되고, 사람의 계급과 카스트에 의해서 사회적 역할이 부여되는 지배적인 질서에 동조하기를 거부한 선각자였다.

 

돈키호테가 하룻밤 묵은 여관인 벤타 델 키호테. 필자 제공

이러한 소설 플롯을 통해 사회구조를 우회적으로 비판한 세르반테스는 정말 대단한 문호였다. 카스티야라만차 지방에는 무려 148개 마을에서 돈키호테와 미겔 데 세르반테스라는 이름이 들어가는 곳이 있다고 하니 놀랄 따름이다. 소설의 배경이 되었던 곳에 서서 다시 한 번 위대한 소설의 감동을 느낀다.

 

 

이은진 스페인전문가·문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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