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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 앙겔라 메르켈 전 독일 총리, 힐러리 클린턴 전 미국 국무부 장관은 공통점이 있다. 서양의 오랜 관습에 따라 결혼 후 남편의 성으로 바꾼 점이 그것이다. 남편이 대통령을 지낸 클린턴은 예외로 쳐도 대처나 메르켈 가문은 출중한 며느리 덕분에 세계사에 길이 남았다. 물론 이들 국가에서 여자가 남편 성을 따르는 게 법적 의무는 아니다. 힐러리는 1975년 결혼 후에도 로댐이란 기존의 성을 고집하다가 남편이 정치활동을 본격화한 1982년 보수층을 의식해 클린턴으로 바꿨다. 1998년 대학교수 요아힘 자우어와 재혼한 메르켈은 새 남편의 성을 따르지 않는다. 메르켈은 1982년 헤어진 옛 남편의 성이다.

일본은 다르다. 19세기 메이지 유신 후 법률에 ‘부부는 같은 성을 써야 한다’고 못박았다. 이 제도가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이론상 남편이 부인 성을 따르는 것도 가능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일본 부부의 약 95%가 남자 성을 따른다. 태어나 수십년간 써 온 성을 결혼과 동시에 갑자기 바꿔야 하는 여자 입장에선 상당한 혼란과 불편을 느낄 법하다. 더욱이 이혼이라도 하면 성을 또 고쳐야 하는 문제가 생긴다.

‘사실상 남녀차별 아니냐’는 지적이 잇따르면서 일본의 부부동성제는 몇 차례 위헌소송에 휘말렸다. 2015년과 2021년 우리 대법원에 해당하는 일본 최고재판소는 “부부 등 가족이 같은 성을 쓰는 게 합리적”이라며 합헌 판결을 내렸다. 그래도 불만은 여전하다. 최근 6쌍의 부부가 남녀가 서로 다른 성을 쓰는 부부별성(別姓)제 도입을 촉구하며 소송을 냄에 따라 공은 다시 사법부로 넘어간 상태다.

그제 일본 아사히신문에 도호쿠대 교수를 인용해 “부부별성제가 도입되지 않으면 2531년에는 일본인 모두의 성씨가 ‘사토’(佐藤)가 될 수 있다”고 경고하는 기사가 실렸다. 일본 성씨 중 사토의 점유율은 약 1.5%로 가장 널리 쓰인다. 한국으로 치면 김(金)씨에 해당하는 셈이다. 부부동성제가 계속 유지되면 일본 국민 전체가 사토가(家) 일원이 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다소 과장이 섞인 분석이지만 눈길을 끈다. 일본 법원이 이번에는 어떻게 판결할지 주목된다.


김태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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