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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시집 『진흙쿠키를 굽는 시간』 김신용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존재를 기억하는 시간” [김용출의 문학삼매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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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4-03-27 07:30:00 수정 : 2024-03-26 16: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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둑길 아래에는 사과밭이 넓게 펼쳐져 있었다. 밭에는 고목이 다 된 사과나무 수십 그루가 웅거하고 있었고, 이 가운데 가장 많이 삭은 사과나무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밑에는 이끼에 덮여 있고 가지들은 삭아서 뚝뚝 부러졌다. 마치 목괴 같았다. 그런데 목괴 사과나무 가지에 빨간 사과가 하나 달려 있는 게 아닌가. 감전된 듯 그곳에 서서 한참 사과나무를 바라봤다. 팬데믹이 닥쳐오기 전 어느 해 늦가을 오전 11시 무렵이었다.

뭉툭한 등걸, 여기저기 붙은 검버섯 같은 지의류들, 한 가닥 남은 가지에 열린 빨간 사과. 그로테스크하고 아름다웠다. 목괴 같은 사과나무 모습은 강렬하게 뇌리를 파고들었다. 어떤 이미지들이 얼핏 스쳐갔다. 마지막까지 치열하게 살다가 지는 어떤 존재의 이미지가. 충주 달래강 둑길 산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그는 서둘러 노트에 메모했다.

 

시간이 흘러서 2년 전 어느 날 새벽, 그는 어김없이 책상에 앉아서 시를 쓰거나 이미 쓴 시를 다시 고쳐 쓰고 있었다. 이때 문득 목괴 사과나무가 떠올랐다. 다 늙은 자신의 몸이, 오랫동안 쓰고 있는 자신의 시가 목괴처럼 느껴졌다. 무엇인가를 간절히 열망하고 분투했던 한 인간이 보였다. 불현 듯 시가 툭 튀어 나왔다.

 

“무릎 다 닳은, 목괴가 다 된 늙은 사과나무에 사과가 열렸다/ 오랜 풍상에 가지 삭아 내려앉고 뭉툭하게 변한 등걸에는/ 검버섯 같은 지의류들이 집을 지었는데, 그 등걸에/ 겨우 한 가닥 남은 가지에 사과가 열렸다 빨갛게 익은 사과./ 뭉툭한 목괴처럼 변한 등걸로도 바람과 햇빛을 호흡했는지/ 탐스럽게 익은 사과, 얼른 따서 한 입 베어 먹고 싶지만/ 다가가는 손을 주춤거리게 하는 머뭇대게 하는,/ 그냥 오래오래 공중의 가지에 매달아두고 싶은―./ 이제 무릎 다 닳아 늙어 고목이 된 나무 한 가닥 남은 가지가/ 어떻게 저 빛깔 고운 사과를 익게 했을까?/ 눈길 거두지 못하게 하는―. 그러나 고목이 된 나무가/ 마지막 안간힘으로 매달아 놓은 것 같기도 해/ 안쓰러운 눈길로 쳐다보게도 하지만,/ 그래, 가만히 눈 감으면 보인다. 아직도 ‘걷고 있는 사람’처럼/ 목괴가 다 된 나무의 뭉툭하게 변한 등걸이/ 끈질기게 뻗고 있는 뿌리가―. 아직 살아/ 뜨겁게 땀 흘리며 야윈 두 다리 힘줄 버팅기고 있는 뿌리가―./ 이제는 가지들도 삭아 내려 전신의 검버섯 같은 지의류에 덮였어도/ 일생의, 그 혼신의 힘으로 밀어올린 사과 하나―.// 아직도 ‘걷고 있는 사람’의 눈빛 같은, 발갛게 익은 사과 하나―.”(「목괴의 시」 전문)

 

중견 시인 김신용이 오래된 사과나무의 끈질긴 생명력을 숭고하게 그린 「목괴의 시」를 포함해 63편의 시편을 묶은 신작 시집 『진흙쿠키를 굽는 시간』(백조)를 들고 돌아왔다. 그의 11번째 신작 시집.

이번 시집은 무엇보다도 현실 비판적이면서도 우리 삶을 관통하는 생명력이 가득한 시편들이 인상적이다. 절벽 바위틈에 뿌리를 내린 나무(「거처1」), 끊임없이 자기 복제를 하는 미나리(「미나리」), 억척스럽게 뻗어가는 수박(「수박」), 몸속의 생체지도에 의지해 3000킬로미터를 날아오는 제비(「귀한 회로」)⋯.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들을 여러 각도에서 재조명한 「진흙쿠키를 굽는 시간」이나 물을 모티브로 다양한 사연을 형상화한 「적滴」 등의 연작도 담겼다.

 

시편들이 노래하고 있는 강인한 생명력은 중학교 이후 부랑자 생활을 비롯해 지게꾼, 막일꾼, 뱃사람 등 온갖 밑바닥 생활을 전전하다가 뒤늦게 등단한 시인의 여정과도 무관치 않을 것이다. 등단 당시 그는 대학로에서 보도블록을 깔고 있었다.

 

파란만장한 여정을 온몸으로 헤쳐 온 시인 김신용이 경험하고 느낀 생명력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그리스인 조르바』 같은 그의 작가적 여로는 앞으로 어디로 향해 나아갈까. 김 시인을 지난달 22일 충주 자택에서 만났다.

 

―「목괴의 시」 시편 속의 ‘걷고 있는 사람’이란 어떤 존재를 가리키는지.

 

“노동을 하는 사람, 몸으로 일하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이들은 모두 살기 위해서 걷고 몸을 움직여야 하는 존재들이다. 살기 위해서 수레를 끌면서 빈병이나 폐지를 줍고 다니는 도심 속의 나이 먹은 할머니나 할아버지 역시 걷고 있는 사람들이다. 오늘날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보는 가난한 서민들의 모습이다. 이들의 삶에 대한 의지가 바로 사과 하나 같은 것이다. 이 나이에 아직 시를 쓰고 있는 저 역시 걷고 있는 사람이고.”

 

한 번은 마을을 산책하다가 커다란 오동나무 밑에서 떨어진 꽃잎을 본다. 보행기를 하고 운동 나온 할머니에게 무슨 꽃이냐고 묻는다. 오동나무와, 오동나무를 닮은 할머니를 대면하게 된다. 시편 「오동꽃, 오동나무―두곡 시첩」 역시 강인한 생명력을 느낄 수 있다.

 

“오동꽃을 보면서도 무슨 꽃인지도 모른 채 한 해를 보내고/ 올봄, 길바닥에 뚝뚝 떨어져 있는 보랏빛 꽃을 보며 이 꽃은 무슨 꽃일까? 궁금한 낯빛만 지었는데/ 오늘, 오동나무 밑을 지나다가 낡은 보행기에 의지한 채/ 굽은 허리 더 굳지 않게 아그작 아그작 걷는 연습을 하는/ 할머니에게, 이 꽃나무가 무슨 나무인지 물으니/ 무심한 눈길로 ‘이 나무는 오동나무여’ 하신다. 예? 오동나무요?/ 놀란 눈빛으로 반문을 하는 나를 보며 할머니는 다시/ ‘아 봉황이 날아와 산다는 오동나무도 몰러?’ 하는/ 웃음 섞인 핀잔을 던진다. 그 웃음이 너무 정겨워 보여/ 그러면 이 나무도 할머니 시집올 때 심은 거예요? 하고 농담을 건네자/ ‘그려, 이 시골구석으로 시집와서 첫 딸애 낳자마자 심은 거여!/ 그러나 세월이 하 야속혀서 나무 베어 궤짝 하나 못 맹글고/ 지나 나나 이렇게 늙어만 가고 있는 거여!’ 하며 다시 활짝 웃는/ 할머니의 눈매에도 오동꽃 빛이 물들어, 온통 보랏빛으로 물든/ 오동꽃을 닮아 보여, 할머니의 살아온 날들은 폐가처럼 허물어져 보이지만/ 그 폐가에서 숨 쉬고 있을 젊은 날의 시간은, 저렇게 높게 자란/ 고목이 되어서도 흐드러지게 보라 보랏빛 꽃을 피우는 오동나무처럼 보여/ 굽은 뼈 더 굳지 않게 폐가가 다 된 집에서 아그작 아그작 걸어 나와/ 산모롱이 길 걷는 연습을 하는 할머니의 어깨며 무릎에서도/ 흐드러지게 피었다가 보랏빛 물든 꽃들을 뚝뚝 떨어뜨리는/ 그 지워지지 않는 시간의 발자국들이 보여―”(「오동꽃, 오동나무―두곡 시첩」 전문)

―오동나무와 할머니의 생명력이 잘 그려졌다.

 

“팬데믹이 한창이던 2021년 어느 날 오전, 시골 마을인 화성시 두곡리에서 산책을 하고 있었다. 아름드리 오동나무 밑에 떨어진 꽃잎을 보고 보행기를 하고 운동을 나온 할머니에게 무슨 꽃이냐고 물으면서 대화가 시작됐다. 아름드리 오동나무와 늙은 할머니가 대비됐다. 할머니 역시 젊은 시절 오동꽃처럼 화려하게 피었을 것이고, 지금 아그작 아그작 걷는 모습 역시 맑게 꽃을 피운 늙은 오동나무와 같아 보였다. 재작년에 썼다.”

 

어느 날 서울역 앞을 지나가다가 어디에서 들려오는 목탁 소리에 발길을 멈춘다. 소리 나는 곳으로 가보니 스님과 사회단체 사람들이 죽은 노숙자들의 영정 사진을 올려놓은 조그만 제단 앞에서 목탁을 두드리며 위령제를 지내고 있다. 낯설고 생소하면서도 뭔가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가시可視가, 가시 같은 날이 있다. 참 낯선 풍경을 보는 날이다. 낯선 풍경이라지만 살다 보니 이런 날이 있구나! 싶은 날이다. 서울역 광장 한편에 작은 제단이 차려지고 향이 피어오른다. 역 지하도에서 광장의 구석진 곳에서 이름 없이 죽어 간 노숙의 넋들을 위한 위령제다. 눈에 보이는 것이 가시 같다. 가시可視가, 가시 같다.// 눈을 감아도 보이는 것들―, 살아서 이미 죽은 사람들―, 얼굴이 없는 얼굴들―, 눈앞에 마치 얼룩처럼 떠오른다. 눈에 박힌 비문飛蚊처럼 떠오른다.// 저것도 빈곤 포르노 같다고 해야 하나? 자신의 불행을 과장하지 않으면 눈에 띄지도 않던 사람들―, 흑백으로 남겨진 초라한 몇몇 영정 사진도 보인다. 눈앞이 흐릿해진다. 위태로운 벼랑에서의 삶들―, 그 비박飛拍의 생들―.// 오늘, 흑백의 저녁 어스름 속에서 이제 죽어서 제 그림자를 새처럼 날려 보내고 있다. 지하도에서 옆 광장 구석진 곳에서 빈손을 내밀 때마다 새를 날려 보내던 사람들―, 그러나 한 마리의 새도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끊임없이, 더욱 악착같이 새를 날려 보내던 사람들―. 이제는 죽어서 다시 제 그림자를 새처럼 날려 보내고 있다// 그래, 가시可視가 가시 같다. 아직도 날아오지 않는 새를 기다리는 눈이, 가시 같다. 하루하루가 검은 포르노그래피 같았던// 그 벌거벗은 시간들이, 가시 같다.”(「진흙쿠키를 굽는 시간 13」 전문)

 

―보이는 가시가, 가시 같다고 했는데.

 

“서울역이나 남산공원에서 죽어간 사람들은 한 둘이 아니다. 노숙자나 막일꾼, 창녀 등 쪽방이나 빈민굴에서 죽으면 시신을 일부러 길바닥에 내놓는다. 그러면 경찰이나 서울시 등에서 시신을 실어간 뒤 장례를 치러준다. 오랫동안 그런 모습을 보고 살아왔다. 저 역시 어릴 때 가출해 객지를 떠돌았고, 한동안 오고갈 데 없어서 노숙자가 지낸 적이 있었다. 죽은 사람들의 모습 속에서 제 모습이 보이는 것 같기도 했고. 체험의 세계와 매치되면서 보이는 가시가 가시 같다고 표현한 것이다. 앞면이 아닌 뒷면에 숱한 비극을 안고 있는 것이 한국 현대사다. 가난한 사람들의 삶은 어떠했고 어떻게 살다 갔는지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구원의 손길을 기다릴 때 손길을 뻗은 적이 거의 없었다. 이 같은 감각을 시화한 것이다.(진흙쿠키를 굽는 시간이란) 진흙쿠키를 굽는 시간이란 바로 현실 세계의 앞면이 아닌 차가운 뒷면을 직시하는 것, 비극적 순간을 생각하고 상상하는 시간을 가리킨다. 살기 위해서 밑바닥에서 땀 흘리며 몸부림치다가 쓰러져간 사람들, 암흑물질 같은 존재를 발견하고 기억하는 시간이 바로 진흙쿠키를 굽는 시간이다.”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존재들은 무수하다. 창백한 얼굴의 40대 청년이 빈 병을 줍기 위해 새벽마다 헌 포대를 하나 매고 바람처럼 왔다가 사라진다. 눈에 잘 보이지 않게 왔다가 사라져가는 젊은이의 모습에서 우주의 암흑물질을 본다.

 

“어깨에 헌 포대를 걸친 사내가 걸어온다. 그는 쓰레기통 근처를 서성이며 빈 병이며 갖가지 고물들을 주어 헌 포대에 담는다. 아직 공사판 같은 데서 잡일이라도 할 수 있는 나이 같은데도 어디 병색이 있는지 야위고 지친 낯빛으로, 그 빈 병 따위가 담긴 헌 포대를 어깨에 걸치고 발밑만 내려다보며 걷는다. 누가 쳐다보건 말건 그 표정 그 시선으로 걷는다. 가만가만 발자국 소리도 내지 않는다. 마치 자신이 이곳에 없는 듯 자신은 모든 것을 바깥에 있는 듯 걷는다. 미명인 이른 새벽이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사내, 그가 어디에서 귀가하는지 딸린 식구들이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그는 말없이 그저 묵묵히 제 발끝만 내려다보며 혹시 쓰레기통 곁에 빈 병이라도 있는지, 호구가 될 만한 것이 있는지 그것만 쳐다보며 걷는다. 쳐다보는 시선들도 그 바깥에 있는 듯 말없는 눈길을 거두곤 한다. 그러나 그는 걸어온다. 이른 새벽이면 어김없이 걸어온다. 그가 누구인지 아무도 모른다. 그는 그렇게 모든 것의 바깥에 있는 듯 걸어온다. 자기 자신마저 자신의 바깥에 있다는 듯 걸어온다. 그 침묵이, 힘없는 발걸음이, 등에 축 늘어져 있는 헌 포대가 제 자신을 지워도, 그는 그저 묵묵히 모든 것을 바깥에서 걸어와 모든 것을 바깥으로 지워진다.”(「암흑물질 2」 전문)

 

―쓸쓸하고 서늘하다.

 

“암흑물질은 우주 대부분을 구성하지만 우리 눈에는 잘 보이지 않는다. 자본주의 사회 역시 거대 자본이 사회를 완전히 지배하고 있는 반면, 가난한 몸짓이나 패배자의 모습은 암흑물질처럼 보이지 않는다. 근현대사는 눈에서 사라져도 하나도 이상할 것 없는 사람들의 삶으로 이루어져 왔다. 일일 노동자들, 지게꾼, 미아, 넝마주의자 등 밑바닥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모두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존재로, 암흑물질 취급을 받아왔다.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들이란 말은 누군가 쓴 글인데도, 마치 제가 생각해낸 육화된 말 같다.”

 

―이번이 열한 번째 신작 시집인데,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이전의 『도장골 시편』은 자연 속의 생동감, 생명력을 형상화하며 시 세계의 하나의 전환점을 이뤘는데, 이번에도 역시 우리가 놓치지 않아야 할 힘찬 생명력을 형상화하려 했다. 『도장골 시편』에서 전환된 경향의 한 단락을 짓는 시집이라고 할 수 있다. 아울러 정치성과 사회성이 좀 강한 편인데, 그 동안 말하지 못했던 어떤 사회성을 담고 싶었다. 생명성을 억압하는 사회의 거품 현상을 대비시키면서 생명력을 보여주려 했다.”

 

어느 날 소년은 뛰어가다가 책 한 권이 길 위에 떨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포켓판 책이었다. 표지에는 가면을 쓰고 푸른 망토를 펄럭이면서 건물에서 밧줄을 타고 내려오는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모리스 르블랑의 추리모험소설 ‘아르센 뤼팽’ 시리즈. 책을 집에 가져가 읽었다. 너무 재미있었다. 어린 영혼을 송두리째 빼앗기고 말았다.

김신용은 초등 2학년 때부터 소설을 읽기 시작했다. 거의 매일 2, 3권씩 읽었다. 동네 만화방이나 책방에 있던 소년소녀문고나 추리소설을 거의 다 찾아 읽었다. 방학이 되면 아예 부산 보수동의 헌책방 골목을 순례하면서 책을 읽었다.

 

중학생이 된 뒤에는 연애 소설로 확대됐다. 더구나 동네 친구들과 함께 나가기 시작한 교회 학생회가 여는 시화전이나 ‘문학의 밤’ 행사를 지켜보았다. 알 수 없는 어떤 소망 같은 것을 품기 시작했다. 시인 김신용의 문학의 씨가 뿌려진 순간이었다.

 

하지만 중학교 3학년 시절, 토목업자인 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은 그를 파란만장의 운명 속으로 거칠게 내던졌다. 집안이 풍비박산 나면서 중학교도 마치지 못한 채 오랫동안 객지로 떠돌아야 했다. 표도 끊지 않고 도둑기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갔다. 서울역에 내리자 밖은 한밤중. 서울역 지하도 안쪽에서 노숙을 했다. 배가 너무 고파서 매혈을 했고, 한 번은 누나를 찾아 부산으로 다시 내려왔다가 우연한 사건에 휘말려 소년원에 들어가기도 했다. 독서를 좋아했던 그는 소년원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책을 읽었다.

 

2년 뒤에는 숙식을 해결하고 공부하기 위해 일부러 대구교도소로 수감되기도 했다. 일부러 역사 옆에 쌓아둔 철근과 쇠파이프 등을 가져가려는 혐의로 붙잡힌 뒤 8세의 나이를 21세로 속여 징역형을 선고받아 교도소로 들어갔다. 교도소에서 책을 읽고 시 습작을 시작했다.

 

출소 뒤에는 서울역 앞 양동 쪽방촌에 방을 하나 잡고 청계천의 지게꾼이 됐다. 더 이상 떠돌지 않았다. 지게벌이를 해서 며칠 먹고살 돈이 생기면 남산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고 습작을 하곤 했다. 10년 넘도록 고생했지만 벌이는 변변치 않았고 일은 고되고 몸은 피폐해졌다.

 

통발 배를 타기도 했다. 초등학교 친구의 소개로 통영에서 장어를 잡는 5마력짜리 통통배 ‘상영호’를 타고 전라도 백도 바다로 가서 며칠 동안 배 위에서 먹고 자면서 일하기도 했다. 통발을 올려 고기를 배 위로 쏟아 부은 뒤 붕장어를 잡았다. 하지만 태풍을 만나서 한 차례 죽을 고비를 넘긴 뒤 뱃일도 그만뒀다.

 

칼 한 자루와 장갑, 마스크를 사서 주머니에 넣고 술 한 잔 먹은 뒤 부산역 앞 파출소를 배회했다. “너, 왜 이것을 갖고 다니지?” 붙잡힌 그의 몸에서 칼과 장갑이 나오자, 경찰은 눈이 휘둥그레져 물었다. “저기 앞 부잣집으로 강도질하려 했습니다.” 그는 태연하게 대답했다. 신군부가 권력 장악을 위해 음모를 꾸미고 있던 1980년 봄, 그는 강도 예비죄로 다시 부산교도소에서 징역을 살았다. 이때 부산교도소에서 수많은 책을, 거인을 만났다. 김수영, 김승옥, 도스토예프스키, 카프카, 포크너는 물론 칸트의 『순수이성비판』, 프로이트의 『심리학』⋯. 그리고 시집 한 권 분량의 습작을 써냈고, 이후 다시는 시와 헤어지지 않았다.

 

서울로 다시 올라온 그는 양동에 쪽방을 얻어놓고 막일꾼을 했고, 시 습작도 이어갔다. 88서울올림픽을 앞두고 대학로의 보도블록을 까는 인부로 일했다. 이때 노상 전시회를 하던 가난한 화가 이성수의 소개로 가난한 예술가들이 찾던 인사동 술집 ‘실비집’을 알게 됐다.

 

비오는 어느 날, 일이 없던 그는 실비집의 구석진 자리에 홀로 앉아서 술을 마시며 습작을 가다듬고 있었다. 이때 건너편 자리에 앉아 있던 한 사람이 다가와서 물었다. “혹시 지금 읽고 있는 시를 좀 보여줄 수 있습니까?” 그는 시를 건네주었다. 건너편 사람은 시를 다 읽은 뒤 자신은 시인 지망생 김선주라고 소개한 뒤 시가 좋다며 시를 좀 빌려줄 수 없느냐고 물었다. 그는 그러라고 답했다.

 

“7호실 전화요!” 며칠 뒤, 그가 거쳐하고 있던 양동 무허가 2층 쪽방에 50대 주인 아주머니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슬리퍼를 끌고 주인집 방으로 달려가 전화를 받았다. 수화기 너머에선 김선주 시인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형, 오늘 낮 12시에 그동안 써놓은 시를 모두 가지고 인사동의 ‘귀천’으로 좀 나오십시오.”

 

습작시가 담긴 대학 노트를 챙겨 찻집 ‘귀천’에 들어서자, 최승호 시인이 이미 기다리고 있었다. “지금 어디에 사느냐.” 대학노트의 습작을 읽으면서 최 시인은 이것저것 물었다. “그동안 무슨 일을 했으며, 지금은 무슨 일을 하느냐.” 그는 양동 쪽방에 살고 있고, 오랫동안 청계천의 지게꾼으로 일했으며, 지금은 대학로에서 보도블록을 깔고 있다고 답했다. 최 시인은 “됐다”며 그의 대학노트를 챙겨서 찻집을 나섰다.

 

“날품팔이지게꾼부랑자쪼록꾼뚜쟁이시라이꾼날라리똥치꼬지꾼/ 오로지 몸을 버려야 오늘을 살아남을 그런 사람들에게/ 몸 보하는 디는 요 궁물이 제일이랑께 하며/ 언제나 반겨 맞아주는 할머니를 보면요/ 양동이 이 땅의 조그만 종기일 때부터/ 곪아 난치의 환부가 되어버린 오늘까지/ 하루고 거르지 않고 뼈다귀를 고으며 늙어온 할머니의/ 뼛국물을 할짝이며/ 우리는 얼마나 그 국물이 되고 싶었던지/ …거기 균처럼 꿈틀거리던 사람들 뿔뿔이 흩어졌지만/그러나 사라지지 않는 어둠 속, 이 땅/ 어디엔가 반드시 살아있을 양동의/ 그 뼉다귀집을 아시는지요”(「양동시편―뼉다귀집」 부문)

 

1945년 부산에서 나고 자란 김신용은 1988년 잡지 『현대시사상』 제1집에 「양동시편―뼉다귀집」을 비롯해 7편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시집 『버려진 사람들』, 『개같은 날들의 기록』, 『환상통』, 『도장골 시편』 등이 발표했고, 장편소설 『달은 어디에 있나』, 『기계 앵무새』, 『새를 아세요』 등을 출간했다. 천상병시상, 노작문학상, 고양행주문학상, 한유성문학상, 현대불교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시 세계를 조금 설명해 준다면.

 

“현장성을 중시하는 시들을 주로 써왔다. 첫 시집 『버려진 사람들』부터 네 권을 보면 제가 살아온 날들이 시가 돼 있고, 『도장골 시편』부터는 체험을 넘어서서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생명들의 생명력을 노래해 왔다. 저도 삶속에 들어가면 똑같은 하나의 살아 있는 생명체다. 자연이 들어오면서 시가 확대되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자연과 생명을 넘어서서 사회성과 정치성까지 담으려 했다.(확장의 중심에는 여전히 생명력이 있는 것 같다) 제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많은 일을 하면서 살아왔기 때문에 시 역시 강한 생명력을 담보하는 것 같다.”

 

―시 쓰기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원칙과 방법은.

 

“현장성을 중시한다. 직접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소재나 제재로 쓰되, 체험의 세계가 육화돼 있는 제재를 찾았다. 허공에 있는 상상력이 아닌, 체험에 의한 상상력에 의해 시를 써왔다. 그것이 원칙이었다. 체험으로 육화되지 않는 세계에서 시는 생동감을 잃는다. 아마 제 시가 다른 시하고 변별되는 지점이 아닌가 생각한다.”

 

―앞으로 어떤 시인, 작품으로 기억되고 싶은지.

 

“인터넷 웹진 「시광장」 등에선 언어의 마술사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지만, 언어의 마술사라는 별명을 듣기 이전에 시 한 편을 쓰기 위해서 애쓰고 조탁하고 갈무리하는 매 순간이 너무 소중했다. 열한 권의 시집을 발표하는 지난 30여 년 동안 하루라도 책상 앞에 앉아있지 않는 날이 없었다. 시를 쓰던 안 쓰던 책상 앞에 앉았다. 책상에 앉아 있는 순간이 저에겐 너무나도 귀한 시간이었다. 살아있음을 느끼는 순간이었고, 그 시간이 없었으면 살아있지 못했을 것이다. 가난한 떠돌이 시인이 있었구나, 라고 기억해준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젊은 시절 쪽방에 엎드려 글을 썼던 시인은 결혼해 서울 쌍문동 시절부터 책상 위에서 글을 쓰고 있다. 전날 밤 9시쯤 취침에 든 그는 30년 넘도록 새벽 3시면 어김없이 철제 책상 앞에 앉는다. 그리하여 발견하고 대면하고 사유한다,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자들을, 몸속에 차오르는 새로운 생의 의지를, 우주의 암흑물질 같은 당신을⋯.

 

“제발, 그 끈질긴 생의 마지막이 끓이는 무념만이라도 따뜻하기를/ 생의 천변에 고인, 지나간 시간의 한순간만이라도 아름답기를”(「적滴-천변」 부문)


충주=글∙사진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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