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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진의 ‘에스파냐 이야기’] (23) 그라나다 (1) : 알람브라 궁전과 무어인의 한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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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4-03-26 09:58:25 수정 : 2024-03-26 13: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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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고도 가까운 나라 스페인

스페인은 우리나라와 수교한 지 올해 73주년을 맞은 유럽의 전통우호국이다. 과거에는 투우와 축구의 나라로만 알려졌으나 최근 들어 우리나라 사람들이 즐겨 찾는 주요한 유럽 관광지다. 관광뿐 아니라 양국의 경제· 문화 교류도 활발해지는 등 주요한 관심국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은진의 ‘에스파냐 이야기’ 연재를 통해 켈트, 로마, 이슬람 등이 융합된 스페인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소개한다.

 

보압딜왕의 그라나다와의 작별.  알프레드 데호덴크 1869년 作 ⓒ 오르세미술관 소장

“여인이여, 그에게 자선을 베풀어 주십시오. 그라나다에서 눈이 먼 것보다 인생에서 더 고통스러운 것은 없기 때문입니다.”

시인 프란시스코 데 이카사가 그의 아내인 베아트리체에게 그라나다의 아름다움을 묘사하면서 쓴 구절이다. 알람브라 궁전 아다르베스 정원 벽에 새겨져 있다. 그만큼 알람브라의 아름다움은 매혹적이다.

 

알람브라는 그라나다를 지배한 이슬람 왕국인 나스리드 왕국의 술탄 무함마드 1세가 왕궁이자 요새로 정한 곳이다. 만년설이 덮여있는 시에라 네바다 산맥을 등지고 높은 곳에 지었다.

 

이베리아반도를 지배한 마지막 이슬람 왕국은 이곳에 많은 돈을 들여 250년간 화려하게 꾸며놓았다. 1492년 스페인의 이사벨 여왕에게 빼앗기면서 남긴 일화는 역사적 사실로 남았다. 마지막 왕인 보압딜은 눈 덮인 시에라 네바다 산맥을 넘으며 그라나다 땅을 떠나면서 알람브라 궁전을 바라보며 긴 한숨을 쉬었다고 한다. 아름다운 궁전과 영토를 기독교 세력에게 빼앗기고 쫓겨나는 비참한 심경을 담았다. 그들이 넘던 그 고개를 ‘무어인의 한숨 고개(Puerto del Suspiro del Moro)’라고 부른다. 이 장면은 알프레도 데호덴크의 유화에 잘 표현되어 있다. 무어인들의 한탄과 비통함이 느껴진다.

 

나사리에스 궁전(Palacio Nazaries) 필자 제공

얼마나 아름답기에 떠나면서 눈물까지 흘렸을까? 필자는 스페인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 중 하나를 고르라면 주저하지 않고 그라나다의 알람브라 궁전을 꼽는다. 이곳은 스페인 영토에서 가장 완벽하게 남아 있는 이슬람 건축이다. 화려함과 절제미가 느껴진다. 이 궁전을 걷다 보면 왜 무어인들이 이 궁전을 떠나며 눈물지었는지 느낄 수 있다. 스페인을 방문할 때마다 알람브라를 찾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나사리에스 궁전은 알함브라의 백미이다. 스페인 정부에서 문화유산을 보호하기 위해서 하루에 입장객 수를 엄격히 제한하는 곳이다. 궁전에 들어가면 아라야네스 중정을 만날 수 있다. 긴 장방형의 연못과 여기에 반사되는 왕궁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무슬림들은 궁전 안으로 생명을 상징하는 물을 끌어들여 정원을 장식했다. 고개를 들어 정면을 보면 반듯한 장방형의 연못 및 궁전 배치와 대조되는 반원형 아치가 눈에 띈다.

 

사자들의 궁(Palacio de los Leones). 필자 제공

궁전 안팎을 자세히 뜯어보면 벽돌, 세라믹, 석회, 목재 등의 재료로 정교한 격자형 무늬와 코란의 구절을 표현한 칼리그라피로 궁전의 안팎을 장식해놓았다. 전형적인 무어인들의 건축양식이다. 알람브라의 건축양식은 무어인들이 이베리아반도를 지배할 때 그들 건축양식의 원류를 보여 주는 것이다. 이 건축양식은 스페인에서 기독교와 이슬람의 건축양식이 혼합되어 나타나는 무데하르 양식의 근원이 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두 자매의 방(Sala de Dos Hermanas). 필자 제공
두 자매의 방(Sala de Dos Hermanas)의 천정은 수천 개의 화려하고 환상적인 별장식을 이루고 있다. 필자 제공

발걸음을 옮겨 사자들의 궁으로 가보았다. 중정에는 12마리의 사자상으로 만들어진 대리석 분수가 설치되어 있다. 매시간 정각마다 사자의 입에서 물이 나오도록 설계된 이 사자상들은 진품을 복원한 제품이다.

 

궁전에서 내려다본 알바이신과 마을풍경. 필자 제공

사자들의 궁 북쪽으로 가면 두 자매의 방이다. 고개를 들면 알람브라 궁전 전체에서 가장 정교하게 지어진 모카라베 양식의 천정이 나온다. 이곳은 술탄의 후궁들이 함께 기거하던 곳이다. 후궁들이 같이 모여 살아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 술탄을 두고 후궁들이 애정의 암투를 벌이는 것이 정상 아닌가? 그런데, 이는 이슬람의 일부다처제에 대한 잘못된 시각 때문일 수도 있다. 이슬람의 일부다처제는 빈번한 전쟁 때문에 생긴 미망인과 고아들을 부유한 남성 한 명이 여러 명의 여성과 결혼하여 부양하는 제도였다. 빈약했던 사회복지제도를 보완하여 공동체를 유지하는 역할을 했을 수도 있다. 이처럼 어떠한 문화를 접할 때 경도된 시각을 갖지 않고 보는 것이 중요하다.

 

 

이은진 스페인전문가·문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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