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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론자 최재천 교수의 저출산 해법 [편집인의 원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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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4-03-24 11:00:00 수정 : 2024-03-24 09:5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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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에 깔린 많은 종이들 가운데 하나를 탁 집어 책상 위에 올려놓는 일. 흔히 언론의 역할로 불리는 어젠다 세팅(Agenda Setting·의제 설정)이 그와 같다. 지금 이 순간에도 세상에는 수 많은 이야기들이 쏟아진다. 그 중에 뉴스 소비자들에게 의미 있는 이야기가 뭘까. 고민과 취재를 거쳐 우리가 내놓는 기사(어젠다)는 독자에 말을 거는 일이다. 뉴스 수명이 갈수록 빨라지는 요즘, 조금이라도 더 많은 독자들과 나누고 싶은 세계일보만의 기사를 소개한다.
최재천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석좌교수가 지난 15일 이화여대 종합과학관 내 연구실에서 세계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최상수 기자

10여년전 최재천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석좌교수를 인터뷰한 적이 있다. 최 교수는 당시 ‘통섭’ 전문가로 유명했다. 학문간 교류·통합을 의미하는 말인데 그의 하버드대 스승 에드워드 윌슨의 저서 ‘Consilience : The Unity of Knowledge’를 ‘통섭’이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간하면서 국내 처음 알려졌다. 진화생물학자인 그는 호주제 폐지에 기여한 공로로 남성 최초로 ‘올해의 여성운동상’을 받기도 했다. 양성평등에 관한 그 날 인터뷰에서 그가 “양성평등이야말로 남성 해방”이라고 했던 말이 아직도 기억난다. “(양성평등 사회가 이뤄진다면) 남성들도 아이들 도시락 싸고 자식 기르는 재미를 느끼고, 친구들과 찜질방에도 가는 자유를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1954년생인 최 교수는 유튜브 채널, 강연 등을 통해 젊은 세대와도 왕성한 소통을 즐긴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애를 낳는 사람은 바보”라는 내용의 동영상은 올린 지 몇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화제다. 그가 진화생물학적인 관점에서 호주제 폐지, 양성평등에 관심을 가졌던 것처럼 저출산 문제에 대한 그의 의견도 지극히 진화생물학적인 접근이다. “한국서 애 낳으면 바보라고 이야기해도 20년째 허송세월”(3월20일자·이강은 선임기자) 기사에서 그는 매년 합계출산율 최저 기록을 경신하는 상황에 “역대 정부마다 헛발질하면서 우리가 20년을 완벽하게 허송세월한 셈”이라고 했다. 

최재천 석좌교수가 지난 2023년 8월 29일 모교인 서울대 후기 학위수여식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최 교수는 이 자리에서 “평생 관찰한 자연에도 손잡지 않고 살아남은 생명은 없다. 혼자만 잘 살지 말고 모두 함께 잘 사는 세상을 이끌어달라”고 당부했다. 서울대총동창회보 제공

◆‘한국서 애 낳으면 바보’인 이유

 

최 교수가 “애 낳으면 바보”라고 얘기하는 건 지금 대한민국 현실이 애를 낳아서 키울만한 환경이냐는 문제 의식에서 출발한 것이다. ‘바보’라는 자극적인 단어를 쓴 것은 역설적으로 아이를 낳기에 열악한 한국 사회를 도드라지게 만든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 가운데 합계출산율이 1명을 밑도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그는 인터뷰에서 “합계출산율이 이 수준이면 만회하기 어렵다는게 전문가들의 견해”라면서 “이를 인정하고 덴마크와 스웨덴처럼 적은 수의 국민으로 삶의 질이 높은 사회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도 고민해야할 때”라고 했다. 물론 이런 환경 속에서도 애를 낳는 ‘애국자’들을 위한 지원 노력은 계속돼야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지난 2007년 본지 인터뷰에서도 저출생 문제의 심각성을 강조했다. 최 교수는 “‘출산 파업을 한다면서 여성을 마치 죄인인 양 몰아가는 흐름이 있는데 그건 말이 안된다”면서 “해결할 방법은 애를 낳고 싶다고 느끼게끔 만드는 일밖에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저출산·고령화 문제를 고민하는 위원회에 생물학자, 인구학자, 주부, 어린아이 등이 같이 앉아서 논의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찔끔찔끔 예산을 써서 이런 중요한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당시 대한민국 미래를 좌우할 저출생 문제 해결에 절박감을 가져야한다고 했지만 상황은 더 악화했다. 이번 인터뷰에서 “정부가 완벽하게 허송세월했다”고 비난할 만하다. 

최재천 석좌교수는 침팬지 연구로 유명한 제인 구달 박사와 인연이 깊다. 최 교수는 제인 구달의 환경운동 프로그램인 ‘뿌리와 새싹’의 국내 활동을 펼쳐왔는데 이 같은 공감대가 비영리 공익재단 ‘생명다양성재단’ 출범으로 이어졌다. 생명다양성재단 제공

◆‘소통, 소통, 소통’

 

최 교수는 인터뷰에서 공생과 소통을 강조했다. 그는 인류에 요구되는 시대정신으로 ‘호모 심비우스’(공생하는 인간) 개념을 꼽았다. 최 교수는 “ ‘호모 사피엔스(현명한 인간)’를 넘어 ‘호모 심비우스’로 거듭나야 한다”며 “인간은 물론 다른 생물종과도 공생해야 한다. 공생하지 않고 지금까지 살아남은 생명은 없었다”고 했다. 청년 세대에 대해서도 “‘살아보니까  인생 참 길더라. 지금 상황에 연연하거나 기죽지 말고, 새 시대를 대비해 준비하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 세상 변화 속도가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라며 “기후변화와 생물다양성 감소 문제도 기성 세대 잘못으로 미래 세대가 뒤집어 쓰게 됐는데 해결도 결국 젊은 세대의 몫이다. 기후 재앙에 벗어나려면 산업구조가 바뀌게 될 텐데 지금부터 그쪽 분야에 기울이면 잘 나가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조언했다.

 

그는 유튜브와 특강, 저서를 통해 꾸준히 젊은이들과 소통한다. 최 교수는 “과학은 참 얄궂은 운명을 가진 학문이다. 과학 없이는 인간이 살 수 없을 만큼 너무 소중한 분야인데, 과학자 스스로 ‘중요합니다’라고 계속 얘기하지 않으면 아무도 몰라준다”고 했다. 그가 과학의 대중화를 위해 애쓰는 이유다. 최 교수는 스티븐 핑거, 리처드 도킨스 등 다윈주의를 계승하는 세계적 석학들을 만나 ‘다윈의 사도들’이라는 책을 펴냈다. 그는 “다윈이 한국 사회를 보면 뭐라고 했을 것 같으냐”는 기자 질문에 “다윈은 굉장한 소통가였다. (우리나라가)너무 불통에다 갈등만 분출하는 사회라 제발 소통 좀 잘하라고 하지않았을까”라고 답했다. 

다윈주의자인 최재천 교수는 전세계 다윈의 진화론을 계승하는 석학들을 만나 인터뷰집을 출간했다. 사진은 영국의 진화생물학자로 ‘이기적 유전자’를 쓴 리처드 도킨스와 대담하는 장면. 사이언스북스 제공

P.S. 취재한 이강은 선임기자에 물었습니다.

 

-최 교수를 인터뷰한 계기는. 

 

“최근 ‘최재천의 곤충사회’라는 신간이 나와서 봤는데 여러 다양한 주제에 대한 글이 무척 흥미로웠다. 자연스럽게 최 교수의 유튜브 채널 ‘최재천의 아마존’도 찾게 됐고 화제가 됐던 ‘한국에서 애 낳으면 바보죠’라는 제목의 동영상도 봤다. 지금도 시의성 있는 얘기인데 전반적인 우리 사회 문제에 대한 최 교수 의견을 듣고 싶었다.”

 

-최 교수를 인터뷰하면서 가장 인상깊에 느낀 점이 있다면. 

 

“3∼4시간 정도 대화를 나눴다. 세계적인 석학답게 다양한 사회 현상에 대해 깊은 통찰력을 느낄 수 있었다. 작게는 우리 사회, 넓게는 인류가 공생하면서 살아야한다는 메시지를 자신의 전문 분야를 활용해서 꾸준히 밝히고 있다. 연세가 있으시지만 열려있는 자세로 젊은 세대와 소통하는 것도 인상깊었다.”

 

-현안인 의료 대란 관련해서도 “의사들은 제자리로 돌아와야한다”고 언급했던데.

 

“지인이 암 판정을 받아 소위 ‘빅5’ 병원에 알아봤는데 새 환자 받을 형편이 안 된다고 거절당한 경험을 얘기하시더라. 의료대란이 끝나야 치료가 가능할 것 같다고 했더니 지인 분이 ‘아휴 그럼 난 죽으란 얘기네’ 라고 해서 마음이 아팠다고 한다. 정부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지말고, 의사도 환자와 국민을 볼모 삼아 이기적으로 대응하지말고 앉아서 대화를 해야한다는 게 최 교수 주장이다.”

 

황정미 편집인

 

<관련기사>

 

“한국서 애 낳으면 바보라고 이야기해도 20년째 허송세월” [나의 삶 나의 길]

https://www.segye.com/newsView/20240319514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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