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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일호의미술여행] 당당하고 위엄 있는 지도자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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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4-03-22 22:54:54 수정 : 2024-03-22 22:5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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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에 가면 많은 사람이 한 번쯤 들르는 곳, 바티칸 미술관이다. 그 안에 태양의 신이며 이성의 신인 아폴론 조각상이 있다. 아폴론상 중에서 가장 유명한 작품인데, 바티칸 궁 벨베데레 광장에 놓여 있었기에 ‘벨베데레의 아폴론’으로 불린다. 기원전 4세기 그리스 시대 조각가인 레오카레스가 청동으로 만든 것을 로마 시대에 대리석으로 모작한 것이 전해 온다.

당당한 자세와 자신감 넘치는 얼굴 표정이 대리석을 깎아서 만든 것으로 믿기지 않을 정도로 무척 사실적이다. 무슨 동작일까. 아폴론은 궁술의 신이기도 했는데, 대지의 여신 가이아가 남성 없이 낳은 구렁이 아들인 피톤이 사람들을 괴롭히자 피톤을 향해 활을 쏜 후 날아가는 화살을 바라보는 모습이다. 악을 물리치는 정의의 투사로서 아폴론이라는 설명이다. 이런 내용이 아니어도, 대중을 향해 호령하는 군주의 당당한 자세와 위엄 있는 풍채라는 해석만으로도 손색없는 사실감이 느껴진다.

레오카레스 '벨베데레의 아폴론' 로마시대 복제품 (기원전 2세기)

작품 앞에서 많은 사람이 감탄하는 것은 이런 사실적 묘사 때문만은 아니다. 아폴론의 자세 안에 치밀하게 계산된 수학적 비례도 담겼기 때문이다. 인체 전체 길이가 머리 길이의 8배가 되는 8등신의 인체 비례가 적용됐다. 인체 중심을 배꼽이라 할 때 정수리부터 배꼽까지 길이인 상체와 배꼽부터 발끝까지 길이인 하체의 비례가 0.382대 0.618 인 황금분할 비례를 이루도록 균형도 맞췄다. 그뿐 아니라, 한쪽 다리에 중심을 두고 다른 쪽 다리를 굽혀서 뒤로 빼는 콘트라포스토 자세로 제작해서 한 동작에서 다른 동작으로 움직임을 기하학적인 자연스러움으로 나타냈다.

사실적인 묘사가 수학적, 기하학적 규범과 조화를 이루면서 동작의 역동성이 살아났고, 군주의 모습이 더욱 위엄 있고 기품 있는 모습으로 탄생했다. 그래서겠지! 고대의 부활을 꿈꾼 르네상스 시대, 고전주의 시대, 그리고 그 후 많은 조각가가 남성 조각상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여기고 모방했다. 사실감과 기하학적 균형 위로 배어나는 지도자의 위엄과 권위까지도 추구한 작품이었기에.


박일호 이화여대 교수·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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