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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수진의시네마포커스] 건국전쟁, 다큐라는 이름의 픽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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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4-03-22 22:54:35 수정 : 2024-03-22 22:5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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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전쟁’을 보았다. 한쪽에서는 관람 인증샷 릴레이를 펼치며 영화 보기 캠페인을 벌이고 다른 쪽에서는 왜곡과 변명, 날조와 감추기로 일관한 영화를 아예 보지 말자고 비난하는 영화. 한마디로 역사전쟁의 한가운데 있는 영화이다. 관객 100만명을 돌파해 역대 한국 다큐멘터리 흥행 4위에 오른 영화는 그 자체로 사회학적 현상이라고 판단한 나는 영화를 보았다. 그리고 뭐라 표현하기 힘든 당혹감 속에서 영화에 대해 분명한 태도를 취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것은 영화의 특정 장면이나 주장에 대한 논의가 아니라 이 영화를 끌어안을 것인가 아니면 버릴 것인가에 대한 존재론적이고 윤리적인 판단에 관한 것이다. 결론은, 영화 비평의 대상으로서 나는 이 영화를 끌어안지 못하겠다.

세계적인 영화 비평지 ‘카예 뒤 시네마’의 편집장 세르주 다네는 이탈리아 좌파 감독 질로 폰테코르보의 1960년작 ‘카포’에 대해 “보지 않았지만 본 영화. 보지 않고서도 결코 잊을 수 없는 영화”라고 말한 바 있다. 그것은 프랑스 누벨바그 감독이자 평론가였던 자크 리베트의 ‘천함에 대하여’라는 짧은 글에 깊이 영향 받은 것이었는데, 리베트는 이 글에서 홀로코스트 피해자가 죽어 가는 순간 어떻게든 시신을 프레임에 담아내기 위해 안간힘을 쓴 카메라의 트래블링숏을 ‘천함(abjection)’이라 규정한다. 다네는 ‘카포’의 트래블링은 이후 모든 토론의 한계 지점이자 공리가 되었고 트래블링의 천함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과 나눌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단언한다. 카메라의 움직임 하나에 대해서도 이토록 단호한 태도를 취했던 이들에게 ‘건국전쟁’을 보여 주었다면 아마 기절해 쓰러졌을지도 모르겠다.

‘건국전쟁’은 너무 많은 것들을, 너무도 명백한 것들을 감춘다. 공식화한 역사, 공식 기억 속의 사건들을 감추고 부정하고 변명하면서 영화는 한 가지 목표를 향해 질주한다. 그것은 이승만의 영웅화, 신화화이다. 지극히 감성적인 음악과 은유의 작동을 통해 그러한 신화를 완성하는데 하이라이트는 링컨 동상 앞에 선 이승만의 이미지이다. 미국인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았던 공화주의자 링컨 옆에 이승만을 세움으로써 “이승만은 곧 링컨”이라는 은유가 완성된다. 은유가 단순한 수사학을 넘어선 개념화의 유용한 방식이라는 것을 이해하는 자의 고약한 오용이다.

맹수진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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