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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년 12월7일 일본은 미국 하와이 진주만 해군기지를 선전포고 없이 기습공격했다. 미 전함 8척이 침몰하거나 심각한 손상을 입었다. 미 해군의 간판이던 전함 애리조나(3만2000t급)도 침몰했다. 다음날 미국은 곧바로 일본에 선전포고했고, 제2차 세계대전의 불길은 태평양으로 옮겨 붙었다. 이후 미군은 미드웨이 해전에서 일본 항공모함 3척을 파괴하며 태평양전쟁의 판세를 바꿨다.

전쟁의 승패에 영향을 미치는 전차와 함정, 항공기 등 무기는 모두 철강으로 만들어진다. 무기 성능은 철강 제조 기술력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US스틸은 1901년에 설립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철강 회사 중 하나다. 그동안 다양한 미군 군사장비를 만드는 데 수억t의 강철을 공급했다. 제2차 세계대전을 전후해서는 매년 3600만t의 강철을 생산할 정도였다. 2022년 기준 연간 생산능력 1450만t의 배가 넘는다. 일본이 한반도와 만주 등에 전시동원령 등을 내렸지만 미국의 물량공세와 비교가 되지 않는 수준이었다. US스틸이 오랫동안 미 철강산업의 아이콘으로 불려온 이유다.

미군에 항복한 일본은 재기했다. 지난해 12월18일 조강 생산량 세계 4위인 일본제철은 세계 27위에 랭크된 US스틸 인수를 발표했다. 인수 총액은 149억달러(약 19조6000억원). 세계 철강산업의 지각변동을 예고했다. 글로벌 철강시장은 중국을 중심으로 한 생산량 증가와 환경규제 강화 등으로 경쟁이 심화하는 상태다. 일본제철의 US스틸 인수는 이러한 경쟁구도를 한층 더 치열하게 만들 게 분명하다. 총성 없는 전쟁과 다름없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4일 성명을 내고 일본제철의 US스틸 인수 계획을 공개적으로 반대했다. 이 거래는 미국 외국인 투자심의위원회(CFIUS)가 심의 중이다. 물론 안보 우려가 있다고 판단하면 대통령에게 거래 불허를 권고할 수 있다. 하지만 인수 심의 결론이 난 뒤의 얘기다. 바이든 대통령의 반대의사 표명은 접전 양상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대선 경쟁을 앞두고 노동계를 의식한 조치다. 표를 얻기 위해선 핵심동맹국과의 불화도 감내할 수 있다는 얘기다. 우리에게도 그러지 말란 법이 있겠나.


박병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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